|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
20일 방심위와 국회 등에 따르면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은 방심위원장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경우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게 핵심이다.
한 의원은 “류희림 위원장 체제 방심위는 언론에 대한 만행에 가까운 폭거를 보여주고 있다”며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자체 검열을 종용하는 ‘입틀막’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 법을 ‘개악’이라 칭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5일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정도면 탄핵중독 수준이다. 탄핵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탄핵좀비 정당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라며 “방심위는 엄연히 민간기구다. 마음에 안 드는 기업이나 시민단체도 죄다 정무직 공무원으로 간주한 후 탄핵소추해서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핵심은 방심위의 법적 지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정연주 전 방심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해촉 집행정지 신청 당시 법원의 판단을 보면 방심위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당시 대통령실은 “방심위가 민간기구이기 때문에 행정절차법상 이유 제시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정 전 위원장 측은 “방심위는 행정기구인데, 대통령실이 해촉 과정에서 행정절차법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윤 대통령의 해촉 통지는 행정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방심위원 지위가 국가공무원의 지위와 유사한 면은 있지만 이는 방송·통신에 대한 직무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며 “위촉이나 해촉이 행정청의 공권력 행사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방심위는 국가행정기관’이라고 판단한 헌재의 결정은 ‘방심위의 국민에 대한 대외적 행정작용 관계’에 국한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방심위는 ‘민간독립기구’라고 판시했다.
법원이 당시 방심위를 민간독립기구로 판시한 또 한가지 이유는 방심위원의 구성 방식이었다. 즉 위원을 임명하는 방통위와 달리 방심위는 위원을 위촉하기 때문에 행정기구가 아닌 민간기구라는 것이다. 임명은 특정인에게 공무원의 신분을 부여하는 행위로 공무원 관계를 발생시키는 행정행위지만, 방심위원에게 적용되는 위촉은 타인에게 일을 맡기는 일반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방심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법원의 판단을 종합하면 민원인을 대상으로 방송 심의를 한다는 측면에선 행정 기구적인 성격을, 정부와 국회와의 관계에선 민간독립기구적인 성격을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를 무시하고 국회가 방심위원장에 대한 탄핵을 위해 법을 개정할 경우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20년 11월 방통위가 정책브리핑을 통해 내놓은 자료에는 두 기관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했다.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이고 방심위는 민간독립기구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방통위 설치법 제18조에서는 방심위의 독립성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고, 제19조에서는 공무원 신분을 심의위원의 결격사유로 명문화해 민간기구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감사에 국한하는 행정권, 방심위 독립기구 된 이유는?
방심위는 예산 전액을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부터 국고보조금 형태로 지원받고 있다. 이에 보조금 집행의 적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방통위의 감사를 받고 있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야당은 국고보조금이 방심위 운영에 투입되고 있다는 점과 감사를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방심위의 행정기관적 성격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통위 설치법 입법 청문회에서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방심위는 민간독립기구이기에 방통위가 개입할 수 없다”는 김홍일 당시 방통위원장의 답변에 방통위가 회계감사를 통해 정 전 위원장의 근태 문제를 들여다본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방통위는 방심위에 대한 감사결과보고서를 내놓으며 방심위 상임위원들에 대한 복무관리권한을 강조한 바 있다. 방통위는 “방심위 상임위원이 국가공무원법 등에 따른 공무원이나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방심위가 국고보조금 등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고 있어 높은 수준의 공공성과 도덕성이 요구된다”고 설명하고 했다.
다만 이런 방통위의 요구는 감사권에 국한되고, 일반 사무에 대해서 민간독립기구로 방통위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게 방심위의 일관된 입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정 사업에서 국가 예산을 지원받는 일반 기업의 경우 정부가 예산이 제대로 사용되었는지 감사는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정부나 국회가 기업 대표의 사임을 요구할 수 없는 것처럼 민간 독립기구인 방심위의 탄핵을 국회에서 법으로 만드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방심위가 민간독립기구로 설계된 이유는 뭘까. 지난 2008년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는 ‘방송통신융합 추진 백서’를 통해 “방심위원들에게 공무원 신분이 부여될 경우 정부가 직접 기사의 내용을 심의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방송의 독립성 확보가 어렵고, 민간독립기구로 설계해 방심위원이 직무상 외부의 부당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도록 명문화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방심위원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하고 탄핵의 대상으로 하자는 논의 자체가 언론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정치적 중립은 언론자유의 핵심 요소인데 방심위원을 정무직 공무원화하고 탄핵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방심위원이 정부의 정책과 입장을 반영하거나, 탄핵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치권의 입장을 반영해 심의할 가능성이 높다.
방심위의 한 관계자는 “군사정권에 의한 언론 통제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이 직접 심의를 하는 것은 권력에 의한 방송 내용 통제로 비칠 가능성이 크고 사후 심의라도 언론자유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에 방심위는 민간 독립기구의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