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발언 쏟아낸 트럼프 비롯해
정치인·언론 극단 정치 조장 한몫
美 언론 “터질 게 터졌다” 평가
NYT “총기·과격 인터넷도 문제”
X 통해 ‘좌파 소행’ 음모론 판쳐
‘슈퍼선거의 해’ 각국서 정치 테러
덴마크·슬로바키아 총리 등 피해
이재명 피습 범인도 ‘정치적 동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유세 중 피격된 것은 오늘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만연한 극단주의 정치가 불러온 참사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치적 완충지대와 타협의 사고 없이 분열과 증오를 조장하는 양극화 정치가 만연하고, 이것이 사람들의 극단주의적 사고를 고착화시켰다는 것이다. 모순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 스스로가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조장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며 선거국면에서만 수많은 혐오 발언을 일삼아왔다. 이번 사태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 정치에서 극단주의와 양극화 정치에 대한 경고등이 다시 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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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집회 도중 암살 시도로 오른쪽 귀에 총을 맞아 피를 흘리며 대피하고 있다. AP뉴시스 |
13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총에 맞은 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판적인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곧바로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공격은 미국이 아니다’라는 사설을 싣고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이번 총격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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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선거 유세 현장에서 피격을 당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원들이 몸으로 감싸안고 있다. 버틀러=AFP연합뉴 |
문제는 트럼프 전 대통령 스스로가 이 같은 정치 양극화를 키운 장본인으로 지적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민자가 미국 혈통을 파괴한다”, “무슬림과 공산주의자는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 등 이번 선거 기간 동안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민자에 대한 혐오 발언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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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은 이번 총격 이후 더 판을 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친트럼프 성향 엑스(X·옛 트위터) 계정 섀도오브에즈라는 “비밀 권력이 도널드 트럼프를 라이브로 암살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the older millenial.1이라는 계정을 쓰는 틱톡 사용자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소송이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시도하기로 한 것 같다”며 “이것이 좌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썼다. 이 같은 음모론은 제도권 정치의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팀 스콧 상원의원은 이번 사태가 “급진 좌파와 미디어에 의해 방조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워싱턴의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는 지난 4월 ‘2024년 미국 대선을 둘러싸고 극단주의적 범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으며, 당시 보고서는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자 등 공직자에 대한 암살 위협, 대규모 집회를 겨냥한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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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극단주의로 인한 참사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둘러싸고 비슷한 범죄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굵직한 선거가 많은 올해엔 비슷한 사고가 연초부터 연달아 발생했다.
앞서 유럽의회 선거가 진행되던 중인 지난 6월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코펜하겐 중심부에서 한 남성으로부터 ‘채찍 공격’을 받았다. 덴마크 당국에 따르면 당시 용의자는 마약에 취해 있었는데 혐오 범죄 가능성이 제기됐다. 5월 독일에서는 중도좌파 사민당 후보가 선거 운동 중 구타를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슬로바키아에서도 로베르토 피초 총리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 한국에선 4월 총선 약 3개월 전인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부산 방문 도중 50대 남성에게 흉기로 목 부위를 찔렸다. 사법부는 1심 재판에서 정치적 동기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용의자가 정치 유튜브를 자주 시청하는 등 극단적인 정치 콘텐츠에 노출돼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미국 대선에서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총격은 다른 국가에서 모방 범죄를 불러올 우려도 제기된다. 올해 주요 7개국(G7) 의장국인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이날 “남은 몇 달간의 선거 캠페인 기간 증오와 폭력보다 대화와 책임이 우선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