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지난 4월 방위사업청이 밝힌 SM-3 함대공미사일 도입 결정은 논란의 강도가 훨씬 높았다.
SM-3는 고도 100∼1000㎞에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파괴하는 무기로 ‘바다의 사드’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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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에서 SM-3 함대공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그렇다면 왜 한국군은 SM-3를 도입하려 할까. 군사력을 확충하는 방식에 대한 시각과 한국군의 국방획득체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위협’과 ‘능력’이 전력증강 판가름
한 국가의 군사력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위협 기반과 능력 기반이다.
위협 기반 방식은 해당 국가의 안보에 가장 큰 위협에 맞서는데 필요한 군사력을 건설한다.
국가안보전략과 국방정책, 군사전략, 무기 소요 등 군사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특정 위협에 대응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군비 증강 과정에 쓰이는 예산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국가안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위협에 맞설 군사력을 빠르게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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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3 함대공미사일이 비행 시험을 위해 최종 생산라인에서 시험장으로 운반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한국군은 어떤 방식으로 군사력을 확보할까. 육군은 북한 위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규모 전면전 상황에서 북한보다 열세라는 인식에 기반, 이에 대응하는 전력을 구성한다. 북한군 갱도포병을 제압하고자 개발된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 등이 대표적이다.
해군과 공군은 사정이 다소 다르다. 북한 해·공군 전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 아래 비대칭 위협과 주변국 위협 등에 대한 고려가 더해진다. 해상·공중에서의 다양한 위협에 대응하는 능력 기반 방식에 가까운 군사력 건설 정책이 이뤄진다.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다양한 위협에 맞설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이상적인 정책처럼 보인다.
문제는 전면전부터 회색지대 전술에 이르는 수많은 위협에 대처할 능력을 갖춘 군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전력소요 및 요구성능(ROC)이 과도해진다는 점이다. 이는 예산 지출 규모를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한다.
문재인정부 당시 추진됐던 3만t급 경항공모함 사업이 대표적이다. 당시 해군과 정부는 ‘초국가·비군사적 위협을 포함한 전방위 위협에 주도적으로 대응한다’는 목표로 경항모 사업을 추진했다.
선체 건조, 수직이착륙 전투기 도입 등에 수조원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된다는 지적과 한반도에서의 효용성 등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경항모 사업이 자취를 감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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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7일 부산에서 열린 국제해양방산전시회(MADEX)에서 HD현대중공업 부스에 전시된 경항공모함 모형을 관람객들이 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결국 SM-3와 SM-6를 함께 도입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면서 글로벌 차원의 군사작전을 벌이는 미국 해군과 같은 구조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를 개선하려면 안보전략과 국방정책, 군사전략, 작전개념이 서로 일치해야 한다. 그래야 군사력 건설 방향이 일관성을 지니게 되고, 과도한 전력소요를 통제해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국방부와 합참의 역할이 중요하다.
육·해·공군 입장에선 첨단 무기가 많을수록 좋다. 다만 국가 차원의 안보전략이나 국방정책, 군사전략을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실질적인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국방부와 합참은 정부와 각 군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각 군의 소요를 정부의 안보전략과 군사전략에 맞게 조정·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같은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면, 한국군의 군사력 건설에 필요한 동력이 분산되지 않은 채 정부의 안보정책을 뒷받침하는데 집중될 수 있다.
국방정책과 군사전략 기조, 군사력 건설 방향을 상호 연결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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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3 함대공미사일이 표적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미 MDA 제공 |
◆유연성 강화한 국방획득체계 필요
국방부도 무기 도입 절차에 대한 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일 신원식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따르면, 올해 최초 통합소요검토 회의를 통해 대상전력을 선정, 기존 3단계(소요결정-선행연구-소요검증)였던 소요기획을 1단계로 단축한다.
작전운용성능, 시험평가, 사업타당성조사 등에 대해서도 융통성을 부여해 무기 획득 기간을 기존 대비 절반 수준인 약 7년으로 단축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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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이지스구축함에서 SM-6 함대공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미 결정된 사업도 전장환경과 기술발전 추세에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취소 또는 조정해야 한다. 요구성능 조정도 유연하게 이뤄져야 한다. 국방과학기술과 전술 발전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최근에는 더욱 중요한 부분이다.
미 육군의 경우 20억 달러(2조6000여억원)가 투자된 차세대 미래 공격 정찰헬기(FARA) 사업을 올해 상반기에 취소해버렸다. 대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약하는 무인기에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은 어떨까. K11 복합소총은 지난 2010년 첫 배치 이후 숱한 결함에 시달렸다. 미군도 이와 유사한 무기개발을 취소했음에도 사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K11 사업이 최종적으로 중단된 시점은 2020년. 실전배치 이후 10년이 지나서였다.
SM-3의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10여년 전에는 해상 탄도미사일 요격능력이 검증된 무기가 SM-3 정도였다. 북한의 탄도미사일도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고, 노동 등의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고각발사 위험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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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관계자가 K11 복합소총을 들어보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지난 2015~2016년 SM-6도 단·중거리 탄도미사일 요격시험에 성공했다. 최근 예멘 후티 반군 탄도미사일 공격도 저지했다. SM-3 도입의 근거였던 북한 IRBM 고각발사도 SM-6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전장환경과 위협의 변화, 기술발전을 빠르게 반영하지 못하면 통합소요기획을 적용해도 효율성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같은 문제를 방지하려면 국방과학연구소(ADD)나 국방기술진흥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한국국방연구원(KIDA), 각 군 교육사령부처럼 군사기술과 전술을 연구하는 기관도 전력소요 논의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나 합동참모회의 기능을 보강하고 전력소요와 요구성능 조정이 보다 용이해지도록 정책적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군사력 건설에서 ‘선택과 집중’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그림자를 드리울 모든 종류의 위협에 맞설 능력을 갖추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군사력 건설 방향이다. 하지만 예산과 인력의 제약을 감안하면, 이는 불가능한 구상이다.
한정된 예산과 인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군사력을 확충하려면 최상위 안보개념부터 일선 부대 작전 개념에 이르는 모든 국방정책, 무기도입체계가 상호 연결된 채로 일관성 있게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경항모나 SM-3 사업처럼 효용성 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