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도 울었다…“어제가 우리 딸 생일, 최원종은 왜 살아있나” 유족 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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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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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흉기난동’ 최원종, 항소심도 사형 구형
유족 “한순간 집 풍비박산…인생 허무” 오열
최원종 “국정원서 도·감청하는 듯” 최후 진술


최원종(왼쪽)이 벌인 분당 흉기난동 사건의 피해자 고(故) 김혜빈씨. 연합뉴스·뉴시스
 
14명의 사상자를 낸 ‘분당 흉기 난동범’ 최원종(23)의 항소심 마지막 재판에서 피해자 유가족들은 재판부에 사형 선고를 요청했다. 최원종은 이날도 “14명 사상자 전부 스토킹 조직원이라고 생각했다”며 상식적이지 않은 진술을 이어갔다.
 
수원고법 형사 2-1부(재판장 김민기)는 10일 최원종의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혐의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서는 피해 유족들의 의견 진술 절차가 진행됐다.
 
최원종의 범행으로 숨진 이희남(당시 65세)씨의 남편 A씨는 미리 준비해 온 A4용지 4장 분량의 의견서를 들고 증인석에 앉았다. 그는 “65세 노부부가 저녁 식사를 하려고 집을 나서 맨날 다니던 동네 길을 걷던 중 차가 뒤에서 돌진했다”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 손을 잡고 걷던 내 아내는 한순간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저만 살아남았다”고 운을 뗐다.
 
두 손을 떨던 A씨는 목멘 소리로 “아내는 대학교 때 만난 첫사랑이다. 아내가 세상에 없어 말할 수 없는 만큼 힘들고 슬프다”며 “아내를 지켜주지 못해 한이 된다. 충격으로 귀가 잘 안 들린다. 우리 참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이 허무하다. 행복한 우리 집은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났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돼도 흉악 살인자는 살아있는 세상이 참 원망스럽다”며 “이런 계획 살인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사형을 선고해 엄중한 메시지를 전달해달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 백화점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에 앞서 최원종이 경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사진은 최원종이 이용한 차량. 연합뉴스
 
또 다른 사망자인 김혜빈(당시 20세)씨의 어머니도 “어제(7월9일)가 혜빈이 스물한번째 생일이었다. 지난해 8월3일 이후로 우리와 함께 살지 못했으니 혜빈이는 여전히 스무살”이라며 “혜빈이는 최원종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최원종은 살아있고, 혜빈이는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산다는 게 조각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거처럼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살인자 최원종이 사형받길 원한다”며 “형벌을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최원종의 조현병으로 인한 심신미약이 아니라, 14명의 피해자가 돼야 한다”며 오열했다.
 
유족들이 진술하는 내내 방청석은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판사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판사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잘 들었다. 재판부에서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어려운 걸음하셔서 재판부에 심경을 다시 이야기하기 힘드셨을 텐데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울먹였다.
 
피고인석에 있던 최원종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만지는 등 태연한 모습이었다. 또 손목시계를 만지거나 안경을 위로 쓸어올리기도 했다.
 
이어진 최원종에 대한 피고인 신문에서 최원종은 “스토킹 조직에게 집단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찰은 “나도 스토커로 보이느냐”고 했고, 최원종은 “네”라고 답했다.
 
이에 검찰은 “스토커를 구별도 못 하면서 무작위로 차를 몰고 칼을 휘둘렀다”며 “무고한 사람들 죽여놓고 조직 스토커라고 하는데, 사람 두 번 죽이는 거다. 정신병이 있는 거처럼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흉기난동범 최원종이 지난해 8월10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경찰서에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검찰은 1심 구형과 동일한 사형을 구형하며 “검찰 최종 의견은 오늘 두 유족의 말씀을 한 토시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원용한다”며 “1심 재판장도 많이 고민했고,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검사와 유족, 사회여론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직접 판결문에 적었다. 우리 재판부에서는 그런 유족의 마음을 이해만 하지 말고 결단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최원종의 변호인은 최후 변론에서 “피고인과 피고인 가족분들 모두 깊이 반성하고 있다. 사형을 원하는 마음도 이해한다”며 “다만 형사상 처벌은 법률에 따른다는 죄형법정주의는 지켜져야 한다. 법조인이라면 법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현병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건 명백하다. 살인 예비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해달라”며 “피고인 스스로 밝힌 바처럼 처벌을 받고자 하지만 법에 정해진 것처럼 형평을 위해 감경해달라”고 했다. 또 “검찰이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는다는 건 정신병 환자를 유기하는 것”이라며 치료감호 청구를 요청하기도 했다.
 
최원종은 최후 진술에서 “국정원과 신천지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도·감청하고 있는 거 같다”며 “피해자 유가족분들께 용서를 구하고 싶다. 죄송하다”고 짧게 말한 뒤 방청석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최원종은 지난해 8월3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AK플라자 분당점 부근에서 모친의 승용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해 행인들을 들이받고, 이후 차에서 내려 백화점으로 들어가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씨 범행으로 차에 치인 김씨와 이씨 등 2명은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숨졌으며, 1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심은 최원종에게 무기징역 및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선고했다. 항소심 선고는 내달 20일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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