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딸 앞서 전남친에 살해…법정서 아이 이름 부른 그놈 [사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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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8. 오후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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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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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2심도 사형 구형…“계획 범행, 흉포·잔인”
30대男측 “피해자가 멸시해 범행” 선처 호소
유족 측 “어린 아이 계속 호명, 소름 끼친다”


스토킹 범죄로 살해당한 이모씨의 생전 모습(왼쪽)과 이씨를 살해한 전 남자친구 설모씨. 유족 제공·뉴시스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전 연인을 찾아가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남성이 지난 3일 항소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다. 피해 여성 이모(37)씨의 유족은 “아직도 직접적인 사과 한번 받지 못했다”며 가해 남성 설모(31)씨에 대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선고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7월17일 새벽 인천시 남동구 소재 이씨의 자택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사건 당일 이씨는 오전 6시쯤 출근을 위해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파트 복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전 남자친구 설씨와 마주쳤다. 설씨는 윗옷 소매 안에 흉기를 숨긴 채 계속 대화를 요구했다. 공포심에 사로잡힌 이씨가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느냐. 살려달라”고 소리쳤으나, 설씨는 숨겨둔 흉기를 꺼내 들고 이씨를 살해했다.
 
살해 현장에는 이씨의 어머니와 6살 딸도 있었다. “살려달라”는 외침에 뛰쳐나온 이씨의 모친은 설씨를 말리다 흉기에 양손을 크게 다쳤다. 이씨의 모친은 소란을 듣고 밖으로 나온 손녀가 혹여 다칠까 손녀를 보호하다 또다시 칼에 찔렸다. 설씨는 당시 자신이 입고 있던 양복을 옆에 접어둔 채 칼을 휘둘렀고, 이씨가 칼에 맞아 쓰러지자 자해를 한 뒤 옆에 나란히 누워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7월17일 오전 설씨가 출근하던 이씨를 찔러 숨지게 한 인천 남동구 논현동 한 아파트 복도 모습. 인천=뉴시스
 
설씨는 2021년 테니스 동호회에서 이씨를 처음 만난 뒤 이씨의 소개로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며 사귀던 중 집착이 심해졌고, 이별을 통보받자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살해 전에도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았으나 지속적으로 이씨를 스토킹했다. 설씨는 지난해 2월 이씨에게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같은 해 6월엔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이로부터 일주일 뒤 이씨의 주거지 인근을 배회하다가 현행범 체포됐다. 그는 법원으로부터 이씨에게 접근과 연락을 금지하는 내용의 잠정조치 처분을 받았지만, 이를 어기고 한달여 만에 이씨를 찾아가 가족이 보는 앞에서 살해했다.
 
설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씨가 헤어지자고 하면서 무시해 화가 났다”면서도 “스토킹 신고에 따른 보복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1심과 항소심에서도 ‘보복 살인’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항변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특가법)상 보복살인은 징역 10년 이상이 규정으로, 형법상 살인죄(최소 징역 5년)보다 형이 무겁다.
이씨가 생전 설씨의 폭행으로 멍이 든 모습. 유족 제공
 
1심 재판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설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지난 1월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류호중)는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찾아갔다고 하지만, 사망 전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도 재차 범행했다”면서도 “검찰이 제출한 특정범죄가중법상 보복살인 유사 사례와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 자녀가 범행 장면을 목격했다거나 피고인이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도 범행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어 형벌을 가중할 요소로 포함하지는 않았다”며 “자신의 죄를 처벌받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다른 보복 범죄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생명을 박탈하거나 영구 격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 앞선 결심 공판에서 설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한 바 있다.
 
이후 검찰과 설씨 측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지난 3일 서울고법 형사6-3부 심리로 열린 설씨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1심과 같이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어린 자녀가 자신의 어머니가 죽는 과정을 목격해 공포와 충격이 얼마나 클지 헤아리기 어렵다. 미리 흉기를 구입하거나 피해자의 동선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등 범행을 미리 계획한 것으로 보이고 범행 방식도 흉포하고 잔인하다”며 “진심으로 잘못을 사죄하거나 반성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을 번복하고 비극적 결말을 피해자 탓으로 돌린다”고 질책했다.
 
이에 설씨 측 변호인은 “오로지 피해자의 멸시와 부당한 대우 등으로 인한 실망과 분노의 감정으로 나아간 것이고 보복이 아니다”며 “피고인은 수사 단계부터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니 최대한 선처를 베풀어달라”고 반박했다.
설씨가 이씨와 헤어진 상태에서 보낸 메시지. 유족 제공
 
장발로 기른 머리로 얼굴을 가린 채 법정에 등장한 설씨는 최후진술에서 “저로 인해 세상을 떠난 분과 고인을 잃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생활할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고인과 함께 한 시간을 회상하며 많은 후회와 고통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훗날 고인에게 용서해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울먹였다.
 
이씨의 사촌언니인 A씨는 사형 구형 후 세계일보에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려놓고 재판부에만 수차례 반성문을 제출했을 뿐 아직까지 유족에겐 어떤 사과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설씨가 법정에서 재차 이씨의 딸 이름을 호명한 것을 두고 분노를 금치 못했다. A씨는 “설씨가 지난 1심에서도 감형을 위해 조카를 호명하며 ‘사형 선고를 해달라’고 연극을 했다. 판사가 이런 언행을 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음에도 이번 2심에서도 또다시 조카 언급을 했다”며 “아이 앞에서 엄마를 죽여놓고 조카가 자신을 아빠라고 불렀을 정도로 아이를 사랑했고 딸이라 생각했다는 식의 말을 하는데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이어 “법정에서 계속 아이 이름을 언급하는 행동이 출소 후 찾아가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동생을 살해했던 방법도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후 며칠을 숨어있다 느닷없이 죽이지 않았나.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찾아올까 너무나 걱정된다”며 “설씨가 사회와 영원히 격리될 수 있도록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선고를 간절히 원한다”고 호소했다.
 
설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는 오는 17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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