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목숨 앗아간 '1분'… 그날 시청역에 무슨 일이 [사사건건]

입력
기사원문
이정한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사망자 9명을 포함해 사상자 16명이 나온 시청역 ‘차량 돌진 참사’는 1일 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순식간에 벌어졌다. 역주행을 시작한 차량이 인도를 덮쳐 사람들을 들이받은 뒤 멈추기까지 걸린 시간은 1분가량이다.
 
찰나에 9명이 스러졌다.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아들이었을 이들은 평범한 하루를 마치고 길을 지나던 중 참사에 휘말렸다.
 
희생자 9명의 발인식이 4일 모두 엄수됐다. 참사 원인 규명은 진행 중이다. 가해 차량을 운전한 차모(68)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됐고 희생자 7명의 발인식이 치러진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같은 날 첫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차씨는 사고 직후 줄곧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일 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경찰이 역주행 후 인도를 덮친 제네시스 차량 주변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경찰은 사고 직전 5초간 가속페달(액셀)과 감속페달(브레이크) 작동 상황이 기록되는 사고기록장치(EDR)와 블랙박스, 폐쇄회로(CC)TV 영상 6점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분석 의뢰했다. 경찰이 앞서 관련 영상들을 분석한 결과 급발진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차량 결함일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경찰이 살펴보고 국과수에 분석 의뢰한 CCTV와 블랙박스 영상은 급발진 여부를 밝힐 주요 근거가 될 수 있다. 영상들을 종합해 사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오후 9시25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지하주차장에서 검은색 제네시스 G80 차량이 천천히 올라왔다. 차씨가 몰던 차량이다. 차씨 부부는 호텔에서 열린 처남의 칠순 잔치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호텔 앞 교차로는 주차장 출입로를 포함해 오거리다. 여기선 서울시청 쪽으로 우회전만 가능하다. 맞은편 세종대로18길은 4차선 일방통행 도로다. ‘진입 금지(일방통행)’ 표지판이 있고 주차장 진입로에는 좌회전 금시 표시가 있다. 신호등이나 직진 금시 표시는 따로 없다.
 
#오후 9시26분
 
차씨 차량은 급가속하며 일방통행 도로로 진입했고 역주행을 시작했다. 일방통행 도로에는 신호등 앞 신호를 기다리던 차들이 있어 차씨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모르긴 어려웠던 상황이다. 실제로 차씨 차량은 서울시청 방향으로 좌회전하는 차량 옆을 지나가면서 해당 도로에 빠르게 진입했다.
 
이후 차량은 우측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렸다.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사람들 왼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하던 차량은 도로가 오른쪽으로 꺾이는 지점에서 왼쪽 인도로 돌진했다.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며 붕 뜬 차량은 인도를 쓸듯이 지나가면서 시민들을 덮쳤다. 이후 시청역 교차로에서 BMW와 쏘나타 차량을 추돌했고, 교차로 끝부분인 시청역 12번 출구 근처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정지했다.
 
사고 직후 취재진이 현장에서 만난 목격자들은 “벼락이 치는 듯한 커다란 소리가 났는데, 소리가 너무 커서 큰 사고가 났구나 싶었다”, “거리에서 폭발하는 듯한 큰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오후 9시27분
 
“시청역 사거리인데요. 자동차 사고가 크게 났어요. 승용차끼리 박은 거 같은데 운전자 튀어나와서 도로 한복판에 있어요”, 27분20초 첫 119 신고가 접수됐다. 42분31초까지 119 신고가 14개 접수됐는데 녹취록에는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에 당황한 신고자들과 현장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을 통해 받은 녹취록을 보면 9시27분 들어온 신고에선 “지금 5명 이상 쓰러져 계신다”, “사람이 여러 명 누워있다…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등 피해자 수가 점점 늘었다. 사고가 심상찮다는 걸 인지한 119상황실은 신고자에 ‘환자한테 응급처치할 수 있겠느냐’며 “전화 끊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신고자는 “제가 할게요”라며 응급조치에 나섰다.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와보니 길바닥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 현장에 추모객들이 남긴 꽃들이 놓여 있다. 김경호 기자
#오후 9시33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과 경찰이 도착해 사고 현장을 수습했다. 4분 뒤 소방은 대응 1단계를 발령했고 9시45분 현장에 임시응급의료소를 설치했다. 중구 보건소장은 현장응급의료소장을 맡아 환자 분류 등 응급의료지원을 맡았고 소방은 긴급구조통제단을 총괄했다.
 
시청역 일대 도로에서는 심정지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을 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고, 사망자와 부상자들은 인근의 국립중앙의료원과 강북삼성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순천향대병원, 고대안암병원, 적십자병원 등으로 옮겨졌다.
 
#2일 오전 00시25분
 
경찰과 소방, 지방자치단체가 사고 관련 상황판단회의를 마치고 현장에서 최종 언론브리핑을 진행했다. 사고로 현장에서 6명이 사망했고, 3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가 사망 판정을 받았다. 대응 1단계는 00시7분 해제됐고, “희생자들의 신원을 확인해 구청에서 유족 연락처를 확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긴박했던 시간이 지나고 참사 이튿날부터 마련된 희생자 빈소엔 조문객들 방문이 잇따랐다. 시청역 인근 사고 현장에는 임시 추모 공간이 마련됐고, 추모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동료들 마지막 인사 4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서울 시청역 ‘차량 돌진 참사’ 희생자 서울시청 청사운영1팀장 고 김인병씨의 영정이 서울시청을 순회하고 있다. 이번 참사로 9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한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차씨 주장대로 급발진으로 발생한 참사인지, 운전대를 돌려 사람들을 피할 순 없었는지 등을 밝히는 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전망이다.
 
지금까지 나온 정황을 보면 급발진보단 운전 부주의에 의한 사고에 무게가 실린다. 역주행 당시 차씨의 차량 보조브레이크등이 꺼져 있었고, 경찰은 EDR 자체 분석 결과 차씨가 사고 직전 액셀을 강하게 밟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스키드마크가 발견되지 않은 것도 차씨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을 가능성을 더한다.
 
다만 차씨가 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제동장치가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차량에 이상이 있을 경우, 브레이크를 밟았더라도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