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 우위’ 3년 만에 흔들
TK·부울경外 전국 진보 우위
유권자 이념 지형 ‘지각변동’
“尹 탄핵 반대하는 與 모습에
합리적 보수층도 등 돌린 것”
윤석열 정부 출범의 디딤돌 역할을 했던 ‘보수 우위’ 정치 지형이 3년여 만에 흔들리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12·3 비상계엄 사태가 지목된다. 윤 정부 초반부터 불거진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거대 야당에 손발이 묶인 윤 정부의 부실한 성과, 여기에 지난해 초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당정 갈등이 더해지며 보수 지지층이 점점 이탈하는 와중에 터진 12·3 비상계엄 사태가 유권자 이념 지형을 진보 우위로 전환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2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주관적 정치 성향’ 조사 결과 자신의 이념 성향에 대해 응답자는 진보 32%, 중도 29%, 보수 27% 순으로 답했다. 진보 응답 비율이 보수보다 5%포인트 많다. 전달(11월)에는 보수와 진보가 27%로 같았고, 중도가 34%였다. 보수 우위 기반이 매우 약해진 상태에서 비상계엄 사태 충격이 가해지자 한 달 만에 중도 5%포인트가 고스란히 진보로 이동한 것이다.
한 달 새 여성은 더욱 강한 진보 색(‘진보 응답 비율-보수 응답 비율’·3→8%포인트)을 보였고, 남성은 보수(-3%포인트)에서 진보(3%포인트)로 이동했다. 전달까지만 해도 인천·경기, 광주·전라만 진보 우위였으나, 12월에는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진보가 앞섰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수 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민의힘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자 보수 성향에 가까운 중도층이나 합리적 보수층이 스스로 보수라고 말하기 부끄러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관적 정치 성향은 정치 상황과 사회 현안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세를 이룬 이념 지형은 진자의 추처럼 정치 국면에 따라 좌우를 오갔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이 불거지기 전까지 한국은 보수가 우위인 사회였다. 하지만 2016년 11월 진보 30%, 보수 26%로 진보 응답이 앞서기 시작했고 2021년 3월까지 4년 4개월 동안 진보 우위 기간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에 대한 분노가 커지며 2021년 8월부터 2024년 10월까지는 보수 우위(3년 2개월)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이힘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계엄령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윤 대통령 탄핵에는 반대한 논리적 부정합을 해소하는 것”이라며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막지 못해 당시 권력을 얻지 못했다고 하지만 탄핵에 일조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회복 후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중도 외연 확장 없이 자기 정체성을 결집해 이기는 선거는 역대 없었다”며 “대다수 국민의 눈높이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