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활동 고스란히 노출’ 왜?
“전문성-자질 부족 코드인사 잦아
美 핵심 정보원 확보 실패하자… 보수성향 학자에 목매다 참사”
美싱크탱크 전문가 교류 위축 조짐
국가정보원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1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보 수집의 ABC를 망각한 행위를 정보요원들이 수년 동안 반복해온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연방검찰이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한국계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한 공소장에는 국정원의 부족한 정보 역량과 허술한 보안 의식이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정보 소식통은 “카드 내역을 남기고 면세 혜택까지 받는 등 기본도 안 된 요원들이 미 연방수사국(FBI)의 24시간 감시에 노출된 정보 최전선에 배치돼 있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상황”이라고 했다.
국정원의 이런 현저한 정보 역량 저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위급을 포함해 직원 수백 명이 정치적 이유 등으로 물갈이되는 국정원의 관행 때문이라는 지적이 국정원 내부에서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정권 입맛에 맞는 ‘코드 인사’가 많다 보니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치거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보요원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소식통은 “정보 수집 역량이 떨어지면서 핵심 정보원 확보에 실패하다 보니 수미 테리 수준 정보원에게도 무리하게 목맨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핵심 정보원 확보 못 해 학자에 목매다 참사”
아마추어 수준의 허술함을 드러낸 정보 활동은 “전문성과 역량보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 미국 등 핵심 지역 정보 라인을 교체하는 국정원의 고질적인 인사 병폐가 초래한 상징적인 장면”이란 게 전현직 국정원 관계자들의 평가다.
미 연방 검찰 공소장에는 북-미 정상회담 한 달 전인 2019년 1월 테리가 국정원 관계자 요청을 받고 서훈 당시 국정원장과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 등 미국의 전현직 안보 관계자들 간 비공개 회의를 주선한 사실도 적시됐다. 또 당시 서 원장과 만난 미 당국자들이 훗날 FBI 진술에서 “(회의가) 굉장히 비정상적(highly abnormal)이었다”고 말한 내용도 담겼다. 전 국정원 간부는 “한미 간 정책적 공감대가 없고 제대로 된 핵심 정보원이 없다 보니 테리 같은 학자에게 의존한 한국 정부의 이런 로비 행태가 미 정부 입장에선 굉장히 거슬렸을 것”이라고 했다.
현 정부 들어서는 국정원 정상화를 내세워 고위직까지 대거 물갈이했다. 2022~2023년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3급 이상 간부 250여 명을 직무에서 배제하거나 한직으로 배치했다. 지난해 일어난 1급 인사 파동 과정에서 임명이 철회된 보직에는 미국과 일본 내 정보거점장인 정무2공사 등이 포함됐다. 전직 국정원 간부는 “현 정부 물갈이 과정에서도 전문성 없는 인사들이 해외 정보 업무에 배치돼 논란이 됐다”고 전했다.
● “물갈이 반복에 전문성-자질 부족 요원 배치”
이런 과정에서 정보 업무의 기본마저 무너진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게 국정원 안팎의 지적이다. 통상 미국에 나가는 요원들은 국정원 내부에서도 엘리트로 꼽히지만 교육 및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대미 요원 정도 되면 활동의 99%가 워치(감시)될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받는다”며 “(이번에 드러난 행태는) 요원 양성 교육 부족이나 자질 부족”이라고 했다. 미국 근무 경험이 있는 다른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주미 대사관에서 숙직하던 우리 행정 직원이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을 때 현지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미 정부 기관들이 우리를 사실상 24시간 주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기소 여파로 우리 정부와 미 싱크탱크 소속 전문가들 간 교류가 위축될 조짐도 확인됐다. 미국 내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가 테리 기소 소식이 알려진 뒤 우리 정부 산하 연구기관 세미나 불참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