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합법 위장한 플랫폼 사채(上)
현재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은 서민이 이용하는 대부 시장의 표준이다. 플랫폼에 접속하면 정식 대부업체라고 써 붙인 광고 수백 개가 “전화 한 통 OK” “이율 준수” 등 문구로 유혹한다. 하지만 ‘상담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며 전화하는 순간, 불법사채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이 학원비 등 40만 원을 대려다 딸까지 불법사채의 늪으로 빠진 강선주(가명·48)도, 빚을 탕감해준다는 유혹에 조직에 합류했던 김민우(가명·37)도 그렇게 ‘플랫폼 사채’의 덫에 걸렸다.
실제로 취재팀이 접촉한 36곳은 많게는 연 4000%가 넘는 고리를 요구하거나 미등록 업체라고 당당히 밝혔다. 명백한 불법이다. 주소에 가보니 태반이 사무실도 없는 유령업체였다. 나머지 23곳은 이자나 등록번호를 묻자 답을 피하거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대부중개 플랫폼은 어쩌다 불법사채 조직의 소굴이 됐을까.
2시 41분. 2분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 번호는 010-5722-××××. 처음 보는 번호였다.
“안녕하세요. 대출 문의 주셨죠? 몇 가지만 빠르게 여쭤볼게요.”
상담원은 이름과 나이, 사는 지역, 직업, 재직기간, 월급, 급여일, 기존 대출 유무, 그리고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물었다. 50만 원이 필요하다고 하자 상담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대출 조건을 알려줬다.
“50만 원 빌리시면 1주일 뒤에 90만 원으로 갚으시면 돼요.”
1주일 이자 40만 원은 연이율로 따지면 4171%였다. 법정 상한(연 20%)의 200배가 넘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취재팀이 서울 강서구로 적힌 이 업체의 주소로 가보니 3.3㎡(1평)도 안 되는 빈 사무실이 나왔다. 정식 대부업체의 가면을 쓴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하기 위해 위장 취재를 시작한 지 이틀째인 4월 16일이었다.
“웬만하면 1주일에 (원금) 50(만 원)에 (상환액) 70이나 80은 생각하셔야 돼요. FM(공식)이에요.”
“60에 90이에요. 원래 60에 95인데 좋은 조건으로 해드리는 거예요.”
“지금 처음 써봐서 모르는 것 같은데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대출 이용자의 신용이 낮은 약점을 노리고 엉뚱한 명목으로 돈을 더 뜯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수고비, 착수금, 거마비, 공증비…. 이름은 다양했지만 전부 이자로 계산해야 한다.
“첫 대출엔 공증비라는 게 있어요. 50만 원에서 5만 원 떼고 45만 원을 드려요.”
전부 광고에선 적법한 이자를 내세웠다. 취재팀이 비싼 이자를 요구하는 이유를 묻자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못생긴 사람이 미용실에 가서 차은우처럼 머리를 해달라고 하면, 일단 ‘해드리겠다‘고 하잖아요? 저희도 똑같아요. 손님도 은행에서 대출 안 되고 주변에서 빌리기 민망하니까 저희를 찾으신 거잖아요. 저희도 말씀 잘 드려서 (사채) 쓰게 하는 게 일인 거죠.”
그러나 62곳 중 24곳은 “대부업 등록번호가 없다”고 하거나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일부 업체는 대놓고 불법을 인정했다.
“저희는 따로 등록된 게 없어요. 어느 업체를 다 전화해보셔도 등록된 데는 없어요.”
취재팀이 “등록하지 않고 영업해도 되냐”고 묻자 질문의 의도를 의심했다.
“지금 대부업 하려고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렇게 걱정이 많으시면 다른 데 알아보세요.”
말을 빙빙 돌리며 등록번호를 알려주지 않다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업체도 있었다. 등록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업체도 있었다.
“제가 이 바닥에서 오래 일했는데 그런 말 처음 들어보고요. 누구한테 그런 소릴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거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주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
플랫폼에 광고 중인 정식 대부업체에 전화했는데 불법 조직으로 연결된 이유가 뭘까.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에 따르면 그 연결고리는 2가지로 요약됐다.
하나는 불법사채 조직이 정식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둔 경우다. 대다수는 바지사장을 내세운다. 조직원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거나, 돈이 궁한 사람에게 200만 원 안팎을 주고 등록 명의를 사 온다. 등록증은 통장 잔액 1000만 원을 증명하고 사무실 계약서, 18시간짜리 한국대부금융협회 교육 이수증 등만 내면 2주 안에 나온다.
“저희 DB가 재구매율이 좋은 편이에요. 한번 쓰면 계속 써요. 전날 대출 물어본 사람 정보를 오늘 팔거든요.”
“거기(광고 업체)는 등록증만 있지 대부업하는 곳이 아니에요. 거기서 번호를 뿌려주고 그걸 제가 받은 거예요.”
“다 그런 식이예요. 그 사람들(광고 업체)은 ‘번호 장사’하는 거고 저희는 받아서 영업하는 거고요. 그게 나쁜 건가요?”
취재팀은 대출을 문의한 휴대전화 번호를 불법사채 조직에 넘긴 것으로 의심되는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대표에게 연락해서 해명을 요청했다. 그중 11명은 “그럴 리 없다”거나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3명은 문의해온 연락처를 다른 대부업체에 넘겼다고 시인했다. 나머지 22명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이번 취재를 위해 개통한 휴대전화 번호 수다. 취재팀이 검증 대상으로 정한 정식 대부업체는 62곳이었다. 25개 플랫폼에 등록된 업체 818곳 중에서 광고를 4개 이상 사이트에 게재한, 활발히 영업하는 업체였다. 이들 뒤에 숨어 있는 불법사채 조직을 특정하려면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새 번호가 필요했다.
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에 한 번만 전화해도 그 번호는 여러 경로를 거쳐 조직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 경로를 역추적해 최초 유포자를 찾는 건 수사기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취재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 번호는 오직 업체 1곳을 검증하는 데에만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원칙을 세웠다.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되는 정식 대부업체를 특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불법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돈을 빌리려는 이용자를 가장해 대출 조건과 대부업 등록번호, 업체명을 물었다. 취재팀이 만난 피해자들은 정식 대부업체에 대출을 문의했지만 연락이 온 건 불법사채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은 이런 피해 유형이 있다는 것만 알 뿐, 어느 업체를 통해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되는지까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 연결고리를 확인하려면 위장 취재가 불가피했다. 불법적인 제안을 한 곳엔 재차 연락해 기자 신분을 밝히고 해명을 요청했다.
취재팀은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를 제안하면 불법사채 조직으로 판단했다. 또 대부업 등록번호가 없거나, 밝히기 거부한 업체도 불법으로 봤다. 이런 기준은 금감원과 법률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정했다.
새 휴대전화는 모두 동아일보 편집국 소속 기자의 명의로 정식 개통했다. 명의자의 개별 동의를 받았고, 휴대전화 개통 절차도 준수했다.
노희정 경기복지재단 불법사금융피해지원팀장, 박정만 경기도 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장(변호사),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 안민석 법률사무소 강물 대표변호사, 윤정원 변호사
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1)
‘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2)
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GKw-RO8lUHo)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김호경 기자 [email protected]
▽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
▽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
▽영상: 송유라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