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캣맘’ 있었다…숙종 무덤까지 따라간 애묘 ‘금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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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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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대 양반 집안에 ‘묘마마(猫媽媽)’가 있었다. 길고양이를 여럿 키우면서 이들에 비단옷을 입히고 좋은 음식을 먹였다. 그가 죽었을 때 고양이 수백 마리가 고인의 집 주위에서 며칠동안 울부짖었다.

조선 후기 문인 이규경(1788~1856)이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고양이 항목에서 다룬 묘마마는 지금의 ‘캣맘’과 다를 바가 없다. 조선시대에도 보금자리 없는 길냥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 캣맘이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를 잘 그린다고 해서 ‘변 고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의 묘작도. 조선시대 고양이는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요물, 우리를 홀린 고양이’ 특별전에는 묘마마를 비롯해 고양이와 인간의 특별한 관계를 다룬 다양한 옛 문헌들이 소개돼 있다. 조선 숙종(1661~1720)도 고양이의 묘한 매력에 빠진 이들 중 하나였다. 조선 후기 문신 김시민(1681~1747)은 자신의 문집(동포집)에서 숙종의 고양이 사랑을 전하고 있다.

숙종은 부친의 묘소에서 우연히 발견해 궁으로 데려와 키우던 고양이 금덕(金德)이 새끼를 낳자 금손(金孫)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숙종은 수라상 고기를 남겨두었다가 금손이에게 던져주고, 잠자리에 들 때도 자기 곁에 두었다.

왕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금손이는 숙종이 세상을 떠난 직후 곡기를 끊는 등 주인에게 끝까지 충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왕을 뒤따르듯 20일 만에 죽은 금손이는 숙종의 무덤(명릉) 근처에 묻혔다.

사기장 신정희가 만든 항아리(1981년).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고양이 그림을 표면에 그렸다.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그런가 하면 딸의 지극한 고양이 사랑을 걱정하는 부정(父情)도 눈길을 끈다.
‘너는 시댁에 정성을 다한다고 하거니와 어찌 고양이는 품고 있느냐. 행여 감기에 걸렸거든 약이나 지어 먹어라.’

조선 효종(1619~1659)이 셋째 딸 숙명공주(1640~1699)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막 혼인한 어린 딸이 눈치 없이 고양이만 끼고 돌아 시댁 눈밖에 날까, 감기로 고생할까 염려하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읽힌다.

이번 전시에선 고양이를 그린 조선시대 그림들도 선보인다. 조선시대 고양이는 장수를 상징해 자주 그려졌다. 고양이를 뜻하는 한자인 묘(猫)와 70세 노인을 뜻하는 모(耄)의 중국어 발음이 같았기 때문. 이 중 조선시대 고양이를 특히 잘 그린 것으로 유명했던 변상벽의 해학적인 그림이 눈길을 끈다.

기자 프로필

문화재와 학술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단행본 ‘국보를 캐는 사람들’(글항아리)을 냈고, 고고학 유튜브 채널 ‘발굴왕’을 제작했습니다.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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