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재가받은 인사 취소 처음
김규현 원장 측근, 인사전횡 의혹
與관계자 “자기사람만 요직 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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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은 2주 전 국·처장에 해당하는 1급 간부 7명에 대해 새 보직 인사 공지를 했다가 돌연 지난주 후반 발령을 취소했다. 복수의 국정원 관계자는 “발표까지 된 임명 공지가 갑자기 취소된 건 초유의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7명 모두 직무 대기발령으로 붕 떠 있는 상태라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고도 했다. 앞서 국정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4개월여 만인 지난해 9월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1급 간부가 전원 퇴직한 뒤 주로 내부 승진자로 1급 간부 20여 명을 새로 임명했다. 이때도 임명 과정에서 인사를 물린 뒤 다시 단행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임명 공지 후 인사를 거둔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김규현 국정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A 씨의 인사 전횡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지난해 9월 1급, 11월경 2·3급 간부 100여 명의 인사 때도 깊이 관여한 국정원 실세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A 씨는 이번에 번복된 1급 인사 명단에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A 씨가 인사를 쥐락펴락한다는 투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들어간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은 잠정적으로 (투서 내용이) 맞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A 씨가 김 원장과 1, 2, 3차장·김남우 기획조정실장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자기 사람만 요직에 앉혔다는 말도 나오는 걸로 안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은) 지금 A 씨가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같은 사람인지 등도 판단하는 중”이라고도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실세로 알려진 추 전 국장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등을 불법 사찰한 혐의(국정원법상 정치관여 및 직권남용)로 기소돼 올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정보기관 내분 우려에 진화 서둘러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1급 간부 7명에 대한 보직 인사를 재가했다가 1주일 만인 지난주 돌연 뒤집은 것은 국정원 간부 A 씨가 권한을 남용해 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일각의 문제 제기를 파악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13일 “윤 대통령은 A 씨가 인사 전횡을 한다는 투서에 대해 잠정적으로 사실관계가 맞는 것으로 판단했고 이에 따라 인사 대상자들이 직무 대기 발령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1급 인사 대상의 절반 정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했다. 이번에 번복된 1급 인사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A 씨 외에 다른 인사 대상자들에 대해서도 임명 부적격 사유가 될 수 있는 문제를 대통령의 인사 재가 뒤에 뒤늦게 발견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복수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A 씨는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고위 간부 인사들이 물러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지난해 1급 간부 27명을 교체하고 100여 명의 2, 3급 인사들을 정리했을 때도 A 씨가 문재인 정부 색채를 지우기 위해 인사에 적극 관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다만 국정원 내부에선 김규현 국정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A 씨가 무리하게 인사에 관여했다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일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공개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기획조정실장 및 차장들과 김 원장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았다는 여권 관계자의 전언도 나왔다.
국정원에선 지난해 10월 조상준 기획조정실장이 임명 4개월 만에 사직하면서 수뇌부 간 갈등설이 퍼진 바 있다. 대통령실은 정보 당국 내부에 잡음이 생기는 상황을 경계해 온 만큼 인사 전횡 의혹이 불거진 이번 상황을 더욱 엄중하게 본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 등 이슈가 산적한 상황에서 정보기관이 내부 인사 시비 등에 휩싸이면 문제라는 인식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앞서 2월 국정원을 비공개로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국정원 운영과 관련해 “유연하고 민첩한 의사결정 체계와 인사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재가한 뒤 인사 전횡 의혹이 제기돼 인사가 철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만큼 국정원 지휘 계통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