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배당할 돈도 없다…한진해운, 8년만에 파산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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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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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23일 채권자집회…파산폐지 의견청취
물류대란 손배 우선변제에 일반채권 배당 '無'
채권변제 사실상 불가능…"절차 의미 없어"
'한때 세계 7위 해운사' 파산절차 8년 소요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지난 2017년 2월 법원의 파산 선고를 받은 한진해운이 무려 8년 만에 파산 절차를 마무리 짓는다. 오는 23일 서울회생법원에서 열리는 채권자 집회를 끝으로 한국 해운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 사태가 막을 내리게 된다.

한진해운 선박이 부산항에 정박해 있다. (사진=뉴시스)
파산 ‘종결’ 아닌 ‘폐지’ 수순…“절차 진행 무의미”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 제15부(재판장 나상훈 부장판사)는 오는 23일 오후 2시 15분 서울회생법원 제1호 법정에서 주식회사 한진해운 채권자 집회를 소집한다. 이번 채권자 집회에서는 한진해운의 파산 폐지에 대한 채권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파산관재인의 임무 종료에 따른 계산 보고를 받는다.

파산 폐지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이유는 현재 한진해운 자산으로는 일반채권자에게 배당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회생·파산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A변호사는 “한진해운은 현재 남아 있는 자산으로는 파산 채권자들에게 배당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이번 채권자 집회를 통해 파산 폐지 절차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산 폐지란 파산 절차 비용 등 우선순위가 높은 재단채권도 변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파산 절차를 종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단채권은 일반 파산 채권자에 앞서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재단채권이 변제가 어렵다면 그보다 후순위인 일반 파산 채권자들에게 배당할 재산은 더더욱 없다는 뜻으로 더이상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때 파산 종결이 아닌 파산 폐지가 이뤄진다.

한진해운의 경우 법정관리 당시 발생한 물류대란으로 인한 손해배상 채권이 파산 채권보다 우선순위가 높은 재단채권으로 분류되면서 일반 파산 채권자들에 대한 배당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A변호사는 “회생절차 개시 이후 발생한 물류대란으로 인한 각종 손해배상 채권이 재단채권이 되면서 우선권이 있는 채권이 됐다”며 “이러한 채권들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회생절차는 더이상 의미가 없게 됐고 파산절차에서도 배당을 해야 하는 채권자들보다 재단채권자들이 훨씬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한진해운이 회생 시작 5개월여 만에 파산 절차에 돌입하게 됐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진입 후 1300명에 달하던 직원을 50여명으로 줄이고 자산을 매각하는 등 회생에 힘썼으나 역부족이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는 “한진해운이 주요 영업을 양도함에 따라 계속기업가치의 산정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게 인정된다”며 2017년 2월 17일 오전 9시 40분 한진해운의 파산을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모든 채권자에게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최대한의 채무변제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8년간 파산관재인을 중심으로 해외 자산을 회수하고 권리관계를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A변호사는 “현재 상황에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환가 매각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마쳤을 것”이라며 “권리 관계가 너무 복잡해 더이상 회수가 어려운 부분은 통상적으로 법원 허가를 받아 환가 포기하는 등의 방식으로 정리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무리한 선박 투자가 발단…부산항 경쟁력 약화 등 상처

한진해운 몰락의 시작 시점은 2000년대 중반 호황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운업계는 호황기를 맞아 적극적인 선박 확충에 나섰고, 한진해운 역시 이 흐름에 동참했다. 하지만 고가의 용선료 계약을 무리하게 체결한 것이 이후 나타난 해운 침체기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경영진의 잘못된 의사결정과 리스크 관리 실패를 한진해운 몰락의 주원인으로 지적했다. 여기에 정부의 늑장 대응도 한몫 했다. 한진해운은 2016년 자율협약을 신청하며 정부 지원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선뜻 지원에 나서지 못했다. 해운업계 전반의 구조조정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지원 시기와 규모를 놓고 우왕좌왕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평가다.

한진해운 파산은 한국 해운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파산 당시 전 세계 주요 항만에서 한진해운 선박들이 압류되면서 물류대란이 발생했고 한국 해운업의 국제 신인도가 크게 추락했다. 특히 글로벌 해운사들은 한진해운 파산 이후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리고, 주요 항로를 장악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

부산항의 환적 물동량도 큰 타격을 입었다. 한진해운은 부산항을 주요 환적 거점으로 활용해왔는데 파산 이후 환적 물동량이 감소하면서 부산항의 경쟁력이 약화됐다. 정부는 한진해운 파산 이후 HMM(011200)(옛 현대상선)을 지원하고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는 등 해운강국 재도약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과거의 위상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 파산은 해운업의 특성을 고려한 리스크 관리와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웠다”며 “해운업은 호황과 불황의 주기가 반복되는 산업인 만큼 불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경기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이 이사회를 열고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로 확정한 지난 2016년 8월 31일 서울 여의도 본사 모습.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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