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 달러 대비 원화 절상률 4.27%…G20 주요국 통화 중 3위
수출 대형株 환차손 탓 실적에 악재…韓 증시 ‘실적 모멘텀’ 악화 우려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한국 코스피, 코스닥 지수가 또다시 글로벌 금융투자시장에서 소외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피벗(pivot, 금리 인하)이 기정사실로 여겨지며 글로벌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서도 국내 증시 주요 지수들만 가장 멀리 뒷걸음질 치면서다.
금리 인하 사이클에 접어들며 강해지고 있는 약(弱) 달러화(貨)·강(强) 원화 현상이 대(對)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증시 대형주의 펀더멘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커지는 가운데, 원화 절상 속도가 주요 20개국(G20) 통화 중 가장 빠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향후 국내 증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28일 헤럴드경제는 한국거래소, 인베스팅닷컴을 통해 지난 23일(현지시간) 열린 미 잭슨홀 회의에서 9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발언이 글로벌 주요 선진국(DM), 신흥국(EM) 증시 주요 지수의 향방에 미친 영향에 대해 분석했다.
총 17개국, 21개 주가 지수 중 지난 22일 종가 대비 27일 종가까지 낙폭이 가장 컸던 지수는 1.10%나 하락한 한국의 코스닥 지수다. 한국 코스피 지수의 등락률도 -0.68%로 꼴찌에서 두 번째에 그쳤다.
같은 기간 대표적인 선진국 증시는 오랜 시간 기다려 온 고금리 사이클 종료에 따른 유동성 증가 기대감을 그대로 증시에서 소화한 모습이다. 기준금리 인하 당사국인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나스닥 지수는 이 기간 각각 0.99%, 0.77% 상승했다. 여기에 독일 DAX30( 1.02%), 영국 FTSE100( 0.69%), 프랑스 CAC40( 0.55%), 범유럽 유로스톡스50( 0.25%) 지수 모두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급격한 엔화 강세의 여파로 증시 약세가 우려됐던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와 토픽스 지수도 각각 0.32%, 0.35%씩 올랐다.
인도(니프티50·센섹스30), 대만(가권), 브라질(보베스파), 인도네시아(IDX), 태국(SET50) 등 대부분의 신흥국 증시들도 금리 인하 신호를 호재로 받아들이고 오름세를 보였다. 베트남(VNI) 정도가 0.17% 하락했지만, 코스닥 지수 낙폭에 비하면 7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국내 증권가에선 한국 증시만 피벗에 따른 호재에서 소외되는 현실의 주요 요인으로 빠른 원화 가치 절상 속도를 꼽는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최근 1개월간(7월 26일~8월 26일) G20 국가에서 사용 중인 통화의 미 달러화 대비 절상률에서 원화는 4.27%로 인도네시아 루피아( 6.56%), 일본 엔( 6.36%)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재운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대외 수요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경기 둔화에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면서 “미국의 금리 인하는 원화의 강세를 유도해 최근 들어 국내 증시 상승을 견인해 온 수출 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통상적으로 원화 가치가 오르고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이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 투자 매력도를 높여 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기본적인 공식이 이번 국면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증권가에서 이어지고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국내 경기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일부 수출 대형 기업에 의해 좌우되는 현상이 강화되는 등 국내 수출 경기 전 산업에서 동반 호조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원화 강세 현상은 현재 수출 구조상 악재일 수 있는 동시에 내수에도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국 증시가 이전과 달리 힘을 못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서 주요 수출 기업들의 실적 전망까지도 하향 조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관련 매출 확대에 집중 중인 반도체주(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미국 완성차 판매량 호조를 통해 본격적인 대당 순이익 확장세에 들어선 자동차주(현대차·기아)를 비롯해 조선, 전력·인프라주 등의 올해 3·4분기 예상 실적은 당초 기대했던 수준을 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글로벌 경기 불안정성과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도 국내 증시를 떠받치던 실적 모멘텀까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은 리스크”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국내 증시가 대내외적인 딜레마에 갇혀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박상현 연구원은 “부동산 가격 급등세 등으로 인한 금융불안 리스크 탓에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될 것임을 시사했고, 이는 미 연준의 9월 피벗 이후에도 국내 금리 수준은 한국은행 차기 금융통화위원회가 예정된 10월까지 유지될 수밖에 없음을 예견하는 것”이라며 “한미 금리정책의 단기적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은 글로벌 유동성 확대 기대가 국내 증시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9월에 미 고용지표가 안정되고 ‘빅컷(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기대감이 커진다면 연내 환율이 1200원대까지 하락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증시 중 국내 증시가 외국인 큰손 투자자에겐 덜 매력적인 투자처로 평가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위험 자산을 선호하는 상황에서도 미중 갈등 심화, 경제 성장률 전망 (하향)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한국은행은 지난 22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5월 전망보다 0.1%포인트 낮은 2.4%로 제시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23~27일 3거래일 간 코스피 시장에서만 1조1525억원 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관망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뚜렷한 순매수 주체나 수급 흐름이 부재한 상황으로 120일 이동평균선이 저항선으로 작용하며 지수 상단이 막혀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원달러 환율의 점진적 하락이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다음 달 중 일시적인 반등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리포트를 통해 “9월 원달러 환율은 1320~1370원으로 예상한다”면서 “최근 환율이 급락했으나 수출 업체의 추격 매도와 패닉셀이 부재한 만큼 수급적으로 실수요 저가매수가 우위를 보이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금리 인하 기대감 덕분에 올가을 코스피·코스닥 주도주가 바이오 섹터로 옮겨갈 수 있다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전날 코스닥 시장에선 알테오젠이 에코프로비엠을 제치고 시총 1위에 등극했고, 코스피 시장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장중 ‘황제주(주당 100만원 이상 주식)’에 등극했다.
김혜민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반등세가 제약·바이오 업종의 활황 초입기라고 가정한다면 아직은 실적과 연구개발(R&D) 역량이 갖춰진 기업 위주로 관심이 쏠릴 것”이라며 “안정적인 실적 성장을 보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3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짐펜트라 효과가 기대되는 셀트리온을 긍정적으로 보고, 바이오텍 내에서는 리가켐바이오와 에이비엘바이오를 최선호주로 꼽는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