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라던 홍명보, 생각 바꾼 이유 묻자…“내 안의 무언가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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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1. 오전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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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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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
‘다시 도전’ 강한 승리욕 생겨
10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울산 HD 홍명보 감독이 광주FC와의 경기 후 팬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저는 저를 버렸습니다."

차기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홍명보 울산 HD 감독은 10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광주FC와의 정규리그 홈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홍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쥐게 된 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섰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7일 홍 감독에게 지휘봉을 건넨다고 발표했다.

앞서 홍 감독은 감독으로 내정되기 전 정규리그 경기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우리 협회에서 나보다 더 경험 많고, 경력과 성과가 뛰어난 분들을 데리고 오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내 입장은 항상 같으니 팬들께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한 바 있다.

10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 프레스센터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울산 HD 홍명보 감독이 광주FC와의 경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홍 감독은 그의 생각이 바뀐 데 대해 7분 넘게 대답을 이어갔다.

홍 감독은 먼저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주도하는 한국형 축구 모델 'MIK'(Made In Korea)가 현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고 했다.

이 기술이사는 지난달 20일 각급 연령별 대표팀부터 A대표팀까지 하나의 축구 철학으로 아우르는 것을 골자로 한 MIK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축구협회 전무 시절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을 전술적으로 한 체계 안에 묶는 작업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고, 관심도 많았다는 홍 감독은 "정책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실행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A대표팀 감독이 이를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 "이 기술이사가 (MIK와)관련해 굉장히 강하게 부탁했다"며 "그 부분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고 했다.

홍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두 번째이자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로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려서"라고 했다.

10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 프레스센터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울산 HD 홍명보 감독이 광주FC와의 경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이 기술이사가 돌아간 뒤 밤새 고민했다는 홍 감독은 10년 전 브라질 월드컵 때 기억을 떠올렸다고 한다.

홍 감독은 "예전에 실패했던 과정과 그 후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실패 기억 때문에)도전하는 게 두려웠다. 그 안으로 또 들어가는 일에 답을 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내 안의 무언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강한 승리욕이 생겼다. 새 팀을 정말로 새롭게 만들어서, 정말 강한 팀으로 만들어서 도전해보고픈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홍 감독은 "10년 만에 간신히, 재미있는 축구도 하고 선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나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나는 나를 버렸다"며 '필사즉생' 각오를 보였다.

'10년 전 홍명보와 지금 홍명보의 다른 점을 말해달라'는 말에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그는 "그때는 경험이 많이 부족했고, 축구 지도자로 시작하는 입장이었다는 생각이었다"며 "K리그 경험을 많이 했다. 지도자로서 굉장히 좋았던 시간을 보냈다.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울산 팬들을 향해선 "죄송하고 드릴 말씀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하고)온전히 나 개인만을 위해 울산을 이끌었다. 울산에 있으며 선수들, 팬들, 축구만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너무도 좋았다"며 "여러 생각이 든다. 얼마 전까지는 응원 구호였는데 오늘은 야유가 됐다.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날 울산은 광주에 0-1로 졌다.

10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 프레스센터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울산 HD 홍명보 감독이 광주FC와의 경기 후 기자회견 도중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


앞서 홍 감독은 광주와의 정규리그 홈 경기에 앞서 "충분히 이해한다"며 "그분들(팬분들)의 어떤 감정이, 저는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시 홍 감독은 '대표팀 감독 자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30분 있다가 킥오프다. 경기 끝나고 심경을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질문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수들과는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홍 감독은 "그냥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한편 울산 김광국 대표는 구단 SNS를 통해 "홍 감독 후임 감독에 대한 작업을 열심히 진지하게 하고 있다. 구단을 믿고 기다려달라"며 "우리 목표인 리그 3연패도 흔들림 없이 달성하겠다. 내년 클럽월드컵도 멋지고 치열한 경기력으로 세계 최고 클럽팀들 사이에서 팬들이 움츠러들지 않고 자랑스러워할 빛나는 시간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한편 축협이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홍 감독을 선택하자 불기 시작한 후폭풍은 좀처럼 잦아들 낌새를 보이질 않고 있다.

외국인 감독을 원했던 다수 팬들은 실제 외국인을 뽑는 방향으로 가는 듯했던 흐름이 막판에 뒤바뀌자 충격을 받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협회를 향한 날 선 비판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론의 중심에는 전력강화위 위원으로 참여한 박주호 해설위원이 서기도 했다.

박 위원의 '폭로'와 축협의 '법적 대응 방침' 등의 분위기도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JTBC와 KBS에 잇달아 출연해 축구협회를 비판했다.

이 위원은 홍 감독 선임에 대해 "K리그 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를 포함한 축구인들은 행정을 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자아비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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