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에 인질잡힌 1400만 개미...“부의 사다리 걷어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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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9. 오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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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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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 금융투자 활성화방안 설문조사
국민 68% “금투세 시행시 투자 줄이겠다”
시총 6% 금투세 대상 이탈, 증시동력 상실
“단기매매, 전체 거래액의 80%까지 늘 것”
업계 “준비 어려운 현실, 도입 시기 늦춰야”


전면 시행까지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두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증권 시장에서 1400만명에 이를 정도로 늘어난 개인 투자자의 이해와 직결되는 데다, 연말 ‘세금 폭탄’을 피하려는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대량 매도세가 나타날 경우 증시 급락에 따른 자본시장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은 금투세가 내년 1월부터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투자를 줄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민 1375명을 대상으로 ‘금융투자현황과 활성화방안 대국민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8%가 이렇게 답하면서다. 이번 응답자의 88.1%는 현재 국내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투세는 금융투자 수익이 5000만원을 초과하면 투자자가 수익 중 22%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과세 제도다. 금융투자 수익이 3억원을 초과할 경우엔 세율이 27.5%로 늘어난다. 당초 지난해 1월부터 금투세가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시스템 미비 등을 이유로 여야가 합의해 내년 1월로 시행 시점을 한 차례 연기한 바 있다.

정부·여당은 금투세 완전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은 이를 ‘부자 감세’라고 비판하며 차질 없이 시행하겠단 입장이다. 국회에서 주요 쟁점 사안으로 금투세가 다뤄질 것으론 보이지만, 하반기 중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금투세는 내년 1월부터 자동 시행되게 된다.

금투세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학계와 증권업계 등에선 정부와 정치권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마다 커지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5월 “정부와 정치권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한 번 좌절한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금융소득의 사다리마저 걷어찰 심산인가”라며 금투세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금투세 폐지에 대한 ‘부자 감세’ 프레임을 정면 반박했다. 금투세 대상자가 전체 투자자의 1%에 불과한 15만명이라지만, 지난 10년간 연평균 5%에 지나지 않는 한국증시 총주주수익률(TSR)을 대입하면 이들의 투자금이 최소 150조원에 이른다는 게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분석이다. 이들은 “금투세 대상자의 국내 증시 투자액은 최소 150조원이며, 이는 전체 시총의 6%가 넘는 것”이라며 “포트폴리오 조정 과정에서 상당한 돈이 (미국, 일본, 등) 해외 시장으로 빠져나가고 한국 주식 가격은 상승 동력을 그만큼 잃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투세가 도입될 경우 국내 증시에선 장투(장기 투자) 비중이 기존보다 더 낮아지고, 투자자들의 단타(단기 투자) 성향이 더 강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투세가 도입될 경우 이익이 5000만원에 이르지 않을 때 주식을 팔고 또 다시 매수하는 단기매매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며 “전체 거래액의 80%가 단기매매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13일까지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데이트레이딩(당일매매)’ 거래량은 총 1020억9774만주로 전체 거래량(1752억3760만주)의 58%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투세 시행 전에도 국내 주식시장 거래의 절반 이상이 단타매매인 상황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뜻이다. 금투세가 개인 투자자의 ‘독박 과세’란 의견도 나온다. 외국인·기관 투자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오직 한국인 개인 투자자에게만 부가된다는 이유에서다.

증권사들도 지난 3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간담회에서 “투자자·자본시장·증권업계 등 각각의 측면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면서 금투세 도입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금투세 관련 세부 징수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전산개발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당장 내년 시행에 맞춰 준비하기 어려운 현실을 강조했다. 세금 관련 편의성 측면에서 대형증권사로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중소형 증권사의 고객이탈도 예상된다는 점도 토로했다.

주식 뿐만 아니라 채권 시장에서도 금투세에 따른 개인 이탈로 기업 자금 경색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걱정 섞인 시선도 있다. 금투세 시행 시 채권은 250만원을 넘어서는 매매 차익에도 최대 27.5%의 세금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개인 투자자는 장외시장에서 23조1000억원어치 채권을 순매수했다. 개인의 채권 보유 총액도 올 상반기 54조9500억원으로 급증했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금투세 부과 전 보유한 채권을 매도해 차익에 대한 비과세를 누리려는 개인 투자자의 움직임이 현실화되고 있다”면서 “향후 신규 채권 매수 여력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잠재적 영향”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금투세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제도란 주장도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자본이득세’, ‘주식양도세’란 이름으로 주식, 채권 등의 양도소득을 과세하는데 비해 한국은 과세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금투세 시행이 2년간 이미 수조원의 세수가 감소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년간(2023~2024년) 금투세 유예로 연평균 9808억원에 달하는 세수가 감소했다고 추정했다. 지난해 56조4000억원 수준의 역대급 세수결손이 발생한 상황에 금투세마저 폐지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미칠 악영향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동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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