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악성민원에 ‘학폭’ 손놓는 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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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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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개입했더니 “편파적이다” 민원
‘문제없음’으로 학습하는 가해 학생
지친 교사들, 교육청 넘기거나 휴직
“왜 이렇게 편파적으로 보세요? 중심을 못 잡으시네요.” 10년차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지난해, 같은 학급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욕설을 한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을 지도했다 학부모로부터 이 같은 민원을 들었다. 이로부터 한 달 뒤, A씨는 이 학생이 “나를 비웃는 것 같다”며 다른 학생을 발로 걷어찼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이번엔 개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A씨는 “교사가 개입하는 걸 학부모가 바라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며 “교사들 사이에선 이런 학부모가 있을 경우 ‘웬만하면 건드리지 말라’는 조언을 공유하고, 오히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다독이는 쪽으로 해결하곤 한다”고 털어놨다.

학부모 ‘악성민원’을 우려해 ‘학교폭력’에 손을 놓는 학교가 늘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자녀를 가르치던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해 최근 논란을 빚은 주호민 웹툰 작가 사례 역시 교사들은 놀랍지 않다는 분위기다. 교실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지도하려다 오히려 민원을 받거나 고소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31일 교육계 등에 따르면 학교 현장에선 오래 전부터 이미 학교폭력에 개입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교사 A씨는 “한 학급 아이들에게 학교폭력 설문조사를 돌렸을 때 90%가 한 학생을 (가해자로) 지목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불쾌해 하는 학부모 반응이 돌아왔다”고 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교사 B씨도 학폭 지도를 했다 가해 학생 부모로부터 민원을 받았다. 지속적으로 같은 반 학생들을 괴롭히던 학생이 도서관에 간 사이, 다른 학생들에게 대응 방법을 교육했다 민원을 받았다. 해당 학생 부모는 “우리 아이만 빼놓고 무슨 이야기를 했냐”, “왜 (학교폭력을) 방치했냐”며 교사에게 화살을 돌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폭 가해 학생이 교사 개입을 어려운 상황을 악용하기도 한다. A씨 사례에선 학교폭력을 저질러도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가해 학생이 ‘학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A씨는 “물리적 폭력을 당한 학생이 울고 있어도, 가해 학생은 오히려 ‘성장통 때문에 우는 거예요’라고 맞받기도 했다”고 했다.

교사들 사이에선 문제적 상황이 발생하면 법적 절차를 밟도록 권유하거나 휴직 등으로 자리를 비우는 것이 해법으로 나온다. 학교폭력 사안을 주로 맡는 곽동석 변호사는 “담임 선생님들은 단순 접수 창구 역할만 맡고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로 넘기는데, 이럴 경우 당사자 학생들은 수 개월 간의 심의 기간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며 “이처럼 학생들 간 폭력 문제에 극단적으로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소위 ‘손을 놓은 학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혜숙 나로심리상담센터 소장도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병가나 휴직으로 한 학기 자리를 비우는 편이 낫다는 말이 해결책처럼 떠돌기도 한다”고 전했다.

학습부진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교육이 학부모 민원에 사라진 학교도 있다. 교사 D씨는 “‘왜 일부 학생들과만 공부를 따로 하느냐’는 항의를 받아 선택한 학생들이 모두 방과 후 지도를 받을 수 있게끔 바뀌었는데, 정작 부진 학생들은 교육을 신청하지 않아 지도 효과가 사라졌다”고 했다.

이해준 학교폭력연구소장은 “지금 학교 폭력 시스템에서 교사에겐 갈등을 중재할 책임만 있고, 더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은 없는 상황”이라며 “교사들이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해결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박혜원·정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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