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주식 16배 폭등에 피눈물"…20년 번 돈 다 날렸다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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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1.25. 오전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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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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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공매도’ 짐 차노스의 몰락

2001년 엔론 공매도로 초대박…전설로 불려
2008년 금융위기로 정점, 자산 10조원 굴려

“테슬라 한심한 거품, 머스크는 사기꾼” 저격
테슬라 공매도 5년 만에 폭등…“고통스럽다”
38년 헤지펀드 결국 폐쇄…남은 자산 2600억
2014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로이터 2014 차이나 서밋'에서 짐 차노스 키니코스 어소시에이츠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1 2015년 1월, CNBC 인터뷰
“테슬라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는 파나소닉이 제조한다. 테슬라는 세상을 바꿀 만큼 대단한 회사가 아니다. 그저 그런 ‘자동차 회사’란 얘기다. 강세장이 아니라면 몇 년 전에 사라졌을 기업이다”

#2 2020년 12월, 블룸버그 인터뷰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 테슬라가 선전한다고 믿고 싶어 한다. (주가 급등으로) 손실을 입었고 테슬라 공매도를 줄였다. 확실히 고통스러웠다. 머스크를 만나면 지금까진 잘 해냈다고 말하고 싶다”

#3 지난 17일, 펀드 고객에 보낸 서한
“사기꾼들의 황금시대다. 시장에서 ‘펀더멘털 주식’(실적·재무가 탄탄한 주식)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고 롱쇼트 투자(매수/공매도) 전략은 압박받고 있다. 이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지만 이젠 다른 방식을 추구해야 할 것 같다”

지난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의 대담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웃고 있다. /REUTERS


씁쓸한 퇴장이었습니다. 오랜 ‘테슬라의 적’이자 ‘공매도 제왕’으로 불린 짐 차노스 키니코스 어소시에이츠 회장 얘기입니다. 지난 17일(현시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차노스가 38년 만에 그의 대표 헤지펀드를 폐쇄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는 연말까지 펀드 투자자들에게 남은 현금 90%를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향후 개인 계좌 관리 및 자문 역할만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현역 은퇴 선언입니다.

올해 들어 키니코스 펀드의 수익률은 –4%입니다. 같은 기간 S&P500지수 18%, 나스닥지수가 36% 오른 걸 감안하면 초라한 실적입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08년 80억 달러(약 10조원)에 달했던 키니코스의 자산은 2억 달러(약 2600억원) 미만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15년 만에 운용자산 98%가량이 사라진 셈입니다. 한때 ‘공매도의 전설’로 명성을 떨쳤던 65세 노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투자업계의 냉소주의자
차노스는 그리스 이민자 출신의 세탁소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명문’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1980년대 시카고의 증권사 길포드에서 애널리스트로 금융업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는 숫자에 강했고 회사의 재무제표를 꿰뚫어 봤습니다. 기업의 과도한 부채, 잘못된 회계처리, 부정적 현금흐름 등을 파악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그는 공매도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공매도는 남의 주식을 빌려 파는 투자방식입니다. 부실한 기업의 주가가 과대평가 됐다면 향후 하락할 가능성이 높겠지요. 그런 기업을 찾아내 하락에 베팅하는 겁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하락을 부추긴다는 거지요. 반대로 예측과 달리 주가가 상승하면 공매도 투자자는 큰 손실을 보게 됩니다. 빌려서 판 주식이니 언젠가는 사서 갚아야 하기 때문이죠. 이를 ‘쇼트 커버링’이라고 합니다.

1985년 차노스는 공매도 전문 회사 ‘키니코스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합니다. 냉소적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키닉(cynic)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차노스의 ‘냉소적 회사’는 1990년대 초반 승승장구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진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의 은행과 금융기관을 공매도 해 큰돈을 벌었습니다. 당시 그의 펀드 수익률은 S&P500 지수 대비 두 배 높았습니다.

미국 휴스턴의 엔론 본사 전경. 1985년 창립한 엔론은 직원 2만명에 달하는 거대 에너지 기업이었다. 2001년 사상 최악의 고의 회계부정이 드러나면서 회사는 파산을 신청했다. 당시 짐 차노스 키니코스 어소시에이츠 회장은 엔론 파산을 예견하고 공매도를 해 큰 유명세를 얻었다. /한경DB

2001년 ‘엔론 공매도’로 명성
차노스가 ‘공매도의 제왕’으로 명성을 얻은 건 2001년입니다. 그는 거대 에너지 기업 엔론의 파산을 예견하고 하락에 베팅했습니다. 엔론은 겉보기엔 건실한 대기업이었습니다. 2000년 매출 1110억 달러(약 144조원), 직원은 2만명에 달했습니다. 당시 미 경제전문지 포춘은 엔론을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실상 경영진은 고의적 분식회계로 부실한 재정을 은폐하고 있었습니다.

‘공매도 선수’ 차노스는 엔론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뒤 이 대기업의 파산을 예감했습니다. 공매도와 함께 이를 언론에 알렸고 8개월 뒤 엔론은 파산 신청을 합니다. 미국 금융가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엔론의 주가는 2000년 평균 79달러에서 2001년 60센트까지 폭락합니다. 투자 전문매체 배런스는 차노스의 공매도를 가리켜 “지난 50년을 통틀어 최고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10년간 최고의 마켓콜(마켓 타이밍)”이라고 평가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차노스에게 최고의 시기였습니다. 기업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공매도 투자자들은 막대한 돈을 챙겼습니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인 마이클 버리도 이 시기에 유명해졌습니다. 언론은 차노스를 ‘파국의 자본가’, ‘공매도계의 르브론 제임스’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한때 그가 어떤 기업의 공매도에 관심 있다는 발표만 나와도 주가가 심하게 요동쳤습니다(팀 히긴스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

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에 주차된 차량들. /한경DB

“테슬라, 한 마디로 과대평가 기업”
차노스가 테슬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3년부터입니다. 2달러(주식분할 가격 기준) 선에서 횡보했던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입니다. 그해 1분기 첫 흑자를 발표한 게 방아쇠가 됐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자율주행과 ‘초고속 지하터널’ 하이퍼루프 사업을 잇달아 발표하며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주가는 몇 달 만에 6배 가까이 폭등합니다. 당시 테슬라가 기록한 흑자는 일회성이었습니다. 공매도 세력은 이 점을 파고들었습니다.

‘냉소주의자’ 차노스의 눈에 테슬라는 허세로 가득 찬 거품 덩어리였습니다. 소프트웨어 스타일의 기업 문화가 자동차 사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리더인 머스크가 가장 큰 문제라고 봤습니다.

“머스크가 자신의 비전 만으로 수십억달러를 모을 수 있는 건 강세장 덕분입니다. 머스크는 본인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믿기에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열광한 투자자들은 이런 기업에 돈을 던지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니더마이어 「루디크러스」)

2009년 1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 오토쇼'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 회사의 첫 번째 전기차인 '로드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경DB


2010년대 들어 공매도 투자자들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증시가 장기간 강세장에 돌입했던 겁니다. 차노스의 펀드 역시 자금이 점차 빠져나갔습니다. 그는 신뢰를 회복할 기업으로 테슬라를 찍었습니다. 2015년부터 테슬라 공매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언론에 ‘테슬라 저격수’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는 헤지펀드에 허용된 최대치(자본금의 5%) 자금을 동원할 만큼 테슬라 공매도에 열을 올립니다. 2019년까지 4년간 테슬라 공매도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BMW가 연간 200만대를 팝니다. 테슬라의 2015년 판매 목표는 5만5000대입니다. 그런데 테슬라 시가총액은 BMW의 절반에 달합니다. 한 마디로 과대 평가된 기업이죠. 전혀 가치가 없다고 보면 됩니다”
- 짐 차노스
2020년, 피바람이 닥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진 2020년. 글로벌 경제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각국 중앙은행은 너도나도 금리를 내리고 천문학적인 돈 풀기를 시작했습니다. 그해 3월 폭락한 테슬라 주가는 무서운 반등을 시작했습니다. 성장주에 유리한 금리 인하와 더불어 실적개선, 주식분할, S&P500지수 편입 등 호재가 쏟아진 덕분이었습니다.

테슬라 주가가 끝없이 오르자 공매도 세력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주식을 사들여야 합니다. 주가는 짧은 기간 더 가파르게 오릅니다. 공매도를 쥐어짠다는 ‘쇼트 스퀴즈’입니다. 피바람이 닥친 겁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테슬라 주가 추이. 이 기간 테슬라 주가는 1500% 상승했다. 2020년 말 CNN방송은 '테슬라 공매도 세력 대학살이 벌어졌다'고 했다. /야후파이낸스


2020년 초 20달러 선이었던 테슬라 주가는 그해 말 230달러를 돌파합니다. 1년 만에 상승률 900%가 넘는 폭등이었습니다. 2015년 이후 5년간 1500% 이상 올랐습니다.

금융정보 분석업체 S3 파트너스는 테슬라를 공매도한 투자업체들이 2020년 한해에만 350억달러(약 45.7조원) 손해를 봤다고 공개합니다. 이 업체는 “손실 규모가 전례 없는 수준”이라며 “헤지펀드들이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습니다. CNN 방송 역시 이를 ‘공매도 대학살’에 비유했습니다. 차노스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테슬라에 대한 공매도 규모를 줄였으며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패배를 인정합니다.

2022년 3월 독일 베를린 인근에 있는 테슬라 기가팩토리 개장식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CEO. /한경DB

머스크 “이미 경고했는데…”
차노스 은퇴의 직접적인 이유가 테슬라 때문인지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그의 펀드는 2020년 이후 테슬라 공매도 비중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차노스가 고객에게 밝힌 대로 본인의 투자 전략이 시장에서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한 것이겠지요. 다만 그는 최근까지도 테슬라에 대해 “어리석을 정도로 과대평가 됐다”며 비판적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공매도의 전설’은 물러났지만, 테슬라 공매도 규모는 여전히 큽니다. 주식대여 데이터 업체 헤이즐트리는 지난 9월까지 넉 달간 테슬라가 S&P500 기업 중 공매도가 가장 많은 주식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나스닥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테슬라 공매도 잔량은 8400만주입니다. 연초 대비 400만주가 늘었습니다. 그만큼 이 기업이 고평가됐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겁니다. 최근 월가의 테슬라 평균 목표주가는 205달러 선입니다. 테슬라와 공매도 세력의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10년간 그를 저격한 적장의 퇴장에 머스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지난 18일 그는 차노스 헤지펀드의 폐쇄 뉴스를 올린 X(옛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습니다. “공매도 세력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내 경고했는데…”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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