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자영업자들이 금융권에 진 빚이 역대 최대인 1064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갚지 못하고 연체된 금액도 18조1000억원으로 역시 역대 최대를 나타냈다. 계엄 사태,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이 길어져 소비 위축 현상이 심해질 경우 빚 갚기를 포기하는 자영업자들이 더 불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29일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의원(더불어민주당), 기획재정위원회 박성훈 의원(국민의힘)에 제출한 '자영업자 대출 현황'에 따르면 올해 3·4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잔액은 1064조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자영업자 대출 현황은 한은이 자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약 100만 대출자 패널데이터)를 활용해 개인사업자대출 보유자를 자영업자로 간주하고, 이들의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더해 분석한 결과다.
이는 지난 2012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다. 2·4분기 말(1060조1000억원)과 비교하면 3개월 사이 4조3000억원이 늘었다. 대출종류별로는 사업자대출이 711조8000억원, 가계대출이 352조6000억원이었다. 사업자대출 잔액 역시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자영업자의 연체액(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 역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3·4분기 말 자영업자 연채액은 18조1000억원으로 전분기 말(15조9500억원)보다 2조2000억원 증가했다. 증가 폭은 올해 1·4분기 2조5000억원에서 2·4분기 5000억원까지 줄었다가 다시 확대됐다.
연체율 오름세도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3·4분기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연체율은 1.70%로 전분기(1.50%)보다 0.20%p 높아졌다. 2015년 1·4분기(2.05%) 이후 9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은이 지난 10~11월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이 실제로 얼마나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국내외 금리인하 사이클이 예상보다 일찍 끝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7∼18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4.50∼4.75%에서 연 4.25∼4.50%로 0.25%p 낮췄지만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는 기존 3.4%에서 3.9%로 높였다. 내년에 당초 전망한 4회가 아니라 2회 정도만 내리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한은의 내년 기준금리 인하 폭도 0.50%p(3.00%→2.50%)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기에 탄핵 정국에 따른 소비 위축까지 겹치면 자영업자들의 대출 상환은 한층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0일부터 사흘 동안 소상공인 16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8%가 계엄 사태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올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88.4)도 전월보다 12.3p 급락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첫해인 2020년 3월(-18.3p)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한은은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최근 저소득·저신용 자영업 대출자가 늘어난 데 유의해 채무 상환능력을 면밀히 분석하고, 선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높은 금리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은 자영업자에 대한 자금 지원을 이어가되, 회생 가능성이 낮은 일부 취약 자영업자의 경우 적극적 채무 조정과 재취업 교육으로 재기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