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익산 토성', 61년 만에 '익산 오금산성' 명칭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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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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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토성 입구. 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은 전북 오금산에 자리한 '익산 토성' 명칭을 사적 지정 61년 만에 변경한다고 19일 밝혔다.

앞서 최근 문화유산위원회 산하 사적 분과는 관련 회의에서 명칭 변경 검토 안건을 가결했다.

이 안건에 따르면 1980년부터 진행된 발굴조사로 익산산성이 백제시대 말 처음 지어져 통일신라 말 고려 초까지 사용됐음이 확인됐고 2017∼2023년 성벽에 대한 발굴결과 토축보다는 석축으로 조성됐음이 확인돼 명칭 변경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된 '익산 토성'은 무왕이 금 다섯 덩어리를 얻은 곳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금마 오금산 정상부와 남쪽 작은 골짜기를 에워싼 산성이다.

오금산성(五金山城), 보덕성(報德城)으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 남문이 있던 자리, 성문 밑으로 개울물이 흐르도록 했던 수구자리, 건물이 있던 자리가 남아있다.

조선총독부 고적자료에 '토축성으로 그 둘레가 육정반(六町半)' 이라는 기록이 있다. 북쪽 성벽에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표석에 ‘고적 제127 익산토성 (古蹟 第一二七 益山土城)’이란 문구가 기록되어 있어 일제강점기부터 '익산 토성'으로도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익산 토성은 흙과 돌을 사용해 쌓았다. 조성 시기는 발견된 유물들을 볼 때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유산위원회 측은 "유적이 위치한 산의 지명이 예부터 오금산으로 불리워왔던 것이 고지도에서 확인되고 있다"며 "사적 지정 명칭 부여 원칙에 따라 지명을 차용해 ‘익산 오금산성’으로 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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