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안 보인다"…'업무과중' 호소 30대 경찰수사관의 마지막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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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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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부서 배치되자마자 40건 떠맡아
전문가 "수사 부서 근무 환경 개선해야"
서울 관악경찰서 앞에 놓인 근조화환에 ‘그곳에선 편안하시길’, ‘지휘부는 책임져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서울경제]

지난 18일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근무하던 30대 A 경위가 숨진 채 발견됐다. 2016년 순경으로 입직한 A 경위는 3번이나 계급 승진을 할 만큼 촉망받는 인재였으며, 2019년에는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쓰러진 70대 남성을 응급처치해 살려 언론과 인터뷰도 했던 성실한 경찰관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난 2월 수사 부서에 배치된 후 ‘업무 과중’을 호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 조직이 술렁이고 있다.

A 경위가 생전 동료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 중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24일 KBS에 따르면 A 경위는 수사 부서에 처음 배치되자마자 40건의 사건을 넘겨 받았다고 한다. 이에 A 경위는 동료들에게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보낸 메시지에는 “죽을 것 같아", "나가야 되는 데 미치겠다 진짜로", "길이 안 보인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KBS에 “내가 수사를 15년 정도 했는데, 수사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50건(을 받았다니). 이건 길이 없다, 길이”라고 전했다.

관악경찰서 측은 “(A 경위의) 유서에 업무 과중 관련 이야기는 없었다”며 “통합수사팀 수사관으로서 보유 사건이 특히 많거나 하는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A 경위의 동료 경찰관이라고 밝힌 B씨는 A 경위가 과중 업무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B씨는 지난 23일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수사에 뜻을 품고 수사관이 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며 “지휘부에서는 ‘개인의 우울증’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없던 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수사경찰 인력은 제자리 걸음인데 고소·고발 건수는 증가해 업무량이 늘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경찰청과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접수된 고소·고발 건수는 18만941건으로 2022년 같은 기간(15만2125건)에 비해 17% 증가했다. 그러나 수사인력은 3만4679명에서 3만5917명으로 3.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수사 부서의 근무 환경을 개선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수사 부서에 배치되자마자 40여 건을 배당 받았다면 큰 부담이 됐을 것”이라며 “수사 부서 배치 1년차까지는 개인이 맡고 있는 사건이 20건이 넘지 않도록 하는 등의 규제를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고소·고발 건수가 많아 수사 부서 경찰관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승진 기회 확대나 조사실 환경 개선 등 수사 부서의 업무 환경을 전반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9년 7월 A 경위가 쓰러진 70대 남성에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 KBS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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