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자산·밸류업·해외상장 등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힘 쏟아
업무효율화로 인사적체 해소도
[서울경제]
국내 대형 회계법인들이 딜 가뭄과 인사 적체 속에서 신사업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년째 이어지는 업황 악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거시환경에 발빠르게 적응해 신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미 대선 등 하반기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다 역대급 규모의 신규 회계사 선발도 예고돼 있어 대형 회계법인의 시름은 깊어가고 있다.
24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삼일·삼정·한영·안진 등 이른바 빅4는 올들어 조직개편을 통해 신규 조직을 속속 출범시켰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삼일회계법인으로 올들어서만 부동산헬스케어센터(2월), 밸류업지원센터(5월), 디지털 플랜트 센터(7월), 글로벌 기업공개(IPO) 전담팀 및 미국 상장기업 감사지원센터(7월) 등 6개 센터급 조직을 잇따라 내놨다.
다른 회계법인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영은 이번 조직개편에서 전략·재무자문부문 내 인수합병(M&A)솔루션 그룹을 만들었다. 딜 발굴부터 의사결정, 인수후통합(PMI) 과정까지 M&A 전후단계를 모두 관리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설명이다. 또한 지난해 하반기에는 ‘EY.ai’ 통합 플랫폼을 출시하고 감사, 세무, 재무자문 등 전 서비스 영역에 걸쳐서 AI 관련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삼정과 안진도 올들어 각각 밸류업지원센터, 디지털자산센터 등을 새롭게 구성했다.
이처럼 빅4는 정부가 새 정책을 발표하거나 인공지능(AI) 등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조직을 구성해 해당 분야를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예컨대 삼일회계법인의 IPO 전담팀은 국내 기업의 해외 상장 준비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한편 국내 IPO 수요가 있는 해외 기업을 찾아 나설 계획이다. 특히 PwC미국에서 파견된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미국상장기업 감사지원센터는 업계 최초로 해당 시장에 발을 들였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한정된 시장에서 저가수임으로 출혈 경쟁하기보다 신시장을 개척하는 게 더 낫다"고 설명했다.
신규 조직은 업황 악화와 인력 활용이라는 회계 업계의 공통된 고민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대형 회계법인들은 20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외감법 도입 이후 감사 수요가 늘고 M&A 호황을 맞아 인력을 대거 확충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 이후 딜 시장이 빠르게 식으면서 사정은 딴판이 됐다. 일감은 감소한 반면 주 52시간 도입·급여 인상 등으로 퇴사는 줄어 인사적체는 심각하다. 실제 삼일회계법인의 2023년 사업연도 기준 퇴사율은 8.8%로 과거 업계 평균 퇴사율(20%)의 절반도 안된다. 한 회계법인 파트너는 “일감은 점점 주는데 실적 압박은 심해지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짐을 싸는 파트너들이 적지 않다”며 “하반기 금리가 인하되면 숨통이 트일까 기대하지만 업황이 안좋은데다 고객사들도 관망하는 분위기라 그야말로 보릿고개를 넘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회계사 선발이 예정돼 있는 점도 부담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빅4의 신규 채용인원은 2021년 1140명, 2022년 1340명에서 지난해 887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올해 회계사 최소 선발 예정 인원은 1250명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빅4의 채용 올해 채용 규모가 750명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합격자 10명 중 6명만 빅4 입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