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처분 철회에도 심드렁한 전공의… ‘사직서 수리 시점’ 쟁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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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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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사자 간 퇴직 시점 합의 가능"
대학병원들은 "정부가 공 떠넘겨" 불만
'수도권·인기과 쏠림 현상' 심화 우려도
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비상경영 중단을 촉구하는 인쇄물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정부가 ‘면죄부 논란’을 감수하며 모든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전공의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특히 전공의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직서 수리 시점’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개별 병원에 공을 떠넘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을 포함한 주요 수련병원은 보건복지부 요청에 따라 전공의들의 사직 또는 복귀 의사를 확인하고 추후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정부는 각 수련병원에 이달 15일까지 전공의들의 사직을 처리해 결원을 확정하고 17일까지 복지부 장관 직속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을 신청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병원 입장에선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 시점이 고민거리다. 정부가 전날 모든 전공의에 대해 행정처분을 철회하겠다고 밝힌 직후 전공의 커뮤니티에서는 “2월 사직서나 수리해달라”, “제일 중요한 2월 사직서 수리가 빠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사직서 수리 시점에 따른 정부의 행정처분 가능성은 사라졌다 해도 퇴직금 등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을 기준으로 사직을 처리하면 3개월간의 공백이 ‘무단 결근’으로 처리돼 전공의들이 퇴직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조규홍 장관은 전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6월 4일 이전으로 소급해 (사직서를) 수리할 수는 없다”면서도 “수련병원과 전공의 간 법률 관계가 복잡한 만큼 당사자들의 협의로 시점이 결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퇴직금이나 4대보험 정산 등을 위해 전공의와 병원 간 합의에 따라 사직 시점을 2월로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병원들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사직서를 수리하더라도 전공의들의 향후 수련에 불이익이 없도록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사직서 수리 시점과 같은 예민한 문제를 결국 복지부가 개별 병원에 다 떠넘겼다”고 지적했다.

전공의 이탈 이후 대학병원들이 경영 위기에 빠졌다는 점도 퇴직금 정산 등에 어려움을 더하는 요인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대학병원의 74.5%가 전공의 진료거부 사태로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빅5’ 병원에서는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하루 10억~15억원 규모의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조치에 전반적인 의료계 반응은 회의적이지만 ‘빅5’ 등 수도권 병원과 인기 과목등을 중심으로 전공의 복귀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직 후 하반기 수련에 재응시하는 전공의들에게는 특례를 적용해 다른 병원으로 옮길 수 있게 한다는 정부의 조치로 ‘빅5’ 병원의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에는 지원자가 몰릴 수 있다는 예상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내세운 ‘필수·지역 의료 강화’라는 명분은 쇠퇴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가뜩이나 소송 위험에 비해 적은 보상으로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인기과 쏠림 현상이 심화할 수 있어서다. 가톨릭의대 등 전국 34개 의대 교수들은 이날 “정부 조치가 지방병원 전공의들을 수도권으로 유인해 지역 필수의료 위기가 뒤따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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