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늘어나 선박 블록 쌓아둘
야적장 모자라 도로까지 할애
올해 수주목표 152% 달성
정기선, 미래 먹거리 발굴나서
"울산 조선소에 있는 10개 도크(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 중 해양플랜트용 1개를 제외한 선박용 9개는 현재 비어 있는 곳 하나 없이 선박을 제작 중입니다."
지난 26일 방문한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회사 정문을 통과하자 1290t급 골리앗 크레인 등 초대형 중장비가 움직이면서 내는 묵직한 소리와 망치 소리가 조선소 야드 곳곳에서 바쁘게 들려왔다. 연말연시도 잊은 채 모든 도크에서 선박을 건조 중이라는 HD현대중공업 관계자의 설명처럼 조선소 사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야드는 도로가 아닌 곳 대부분이 선박 건조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1도크에서는 컨테이너선 2척, 2도크에서는 컨테이너선 2척을 건조 중이다. 축구장 6개 넓이로 HD현대중공업에서 규모가 가장 큰 3도크에서는 액화천연가스(LNG)선 2척, 액화석유가스(LPG)선 1척, 에탄올 운반선 1척 등 총 4척을 동시에 만들고 있다.
선박 인도를 앞두고 마무리 후속 작업을 하는 안벽도 LNG선 등 선박으로 가득 찼다. 안벽은 조선소에서 선박을 계류시켜 의장·전기 배선 등 선박 건조의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는 시설을 말한다. 평소 선박을 건조하는 4·5도크 역시 안벽으로 사용돼 내년 인도를 앞둔 선박의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다.
조선소 내부에서도 대형 선박 블록을 실은 트랜스포터 등 물류 차량도 느리지만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조선소의 한 현장 직원은 "조선소 안 차량 제한속도는 시속 30㎞인데 요즘엔 물류 차량이 늘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제한속도를 지키게 된다"며 "그만큼 내부 일감이 많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감이 늘어나면서 선박 블록을 쌓아둘 곳조차 부족해지자 조선소는 도로 한쪽 차선을 막고 이곳을 임시 야적장으로 쓰고 있었다. 회사 정문에서 사내 전망대로 가는 양방향 도로는 이 때문에 일방통행으로 바뀌었을 정도다.
최근 인력도 20% 이상 늘었다. 울산 조선소에 투입된 작업 근로자는 5~6년 전 불황 때보다 7000명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울산 조선소 관계자는 "조선소 현장 근무자는 3만3000명으로 집계되는데, 갑작스러운 인력 수요를 채우려 외국인 근로자 수도 5000명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K조선업이 호황기를 맞으면서 HD현대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HD현대삼호)은 신바람을 내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는 수주 성과를 올렸다. 올해 들어 205억6000만달러를 수주해 연간 수주 목표치인 135억달러의 152.2%를 달성했다. 2024년 11월 말 기준 수주잔량은 496척으로 집계됐다. 선종별로는 LNG 운반선 8척, LNG 벙커링선 7척, 석유화학제품 운반선(PC선) 62척, LPG·암모니아 운반선 50척, 컨테이너선 28척, 에탄 운반선 3척,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 2척, 대형 원유 운반선(VLCC) 6척, 탱커 7척, 자동차 운반선(PCTC) 2척,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 설비(FSRU) 1척, 해양 설비 1기, 특수선 4척 등이다.
올해는 특히 LNG 운반선과 LPG·암모니아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증가가 뚜렷했다. LNG 운반선은 기술 측면에서 한국이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HD한국조선해양은 내년 미 해군의 최정예 함대인 제7함대의 인도·태평양 지역 전속 배치 함정에 대한 유지 보수·수리·운영(MRO) 수주에 나서 특수선 분야 경쟁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 예정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특수선 부문에서 2030년까지 연 매출 3조원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실제 미국 트럼프 정권과 인도까지 한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주요 국가들과의 협력도 기대된다. 지난 11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발굴과 친환경 및 디지털 기술 혁신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내 조선업에 손을 내민 만큼 미국 해군 함정 MRO 사업에 힘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울산 서대현 기자 / 조윤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