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 찬성 의원들을
배신자 몰며 민심과 괴리
지역당 전락한 결과 아닌가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는 4월 총선에서 참패했다. 독단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이었다. 탈레브가 맞는다면, 윤 대통령은 총선 성적표라는 냉혹한 현실에 설득당해야 했다. 자신의 국정운영이 잘못됐다고 반성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정반대로 갔다. 선거가 조작됐다는 망상에 빠졌다. 부정선거를 입증하겠다며 군대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보냈다. 망상에 빠지면 현실로도 절대 설득할 수 없는 법이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 상당수도 역시 ‘현실’에 설득당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의원들 다수가 영남과 서울 강남권에서 당선됐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수도권 122개 의석 중 19곳에서만 승리했다. 영남은 65개 의석 중 59곳을 가져갔다. 서울 강남 3구에서도 8곳 중 7곳을 승리했다. 보수 지지세가 매우 강해 국민의힘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된다고 하는 곳들이 태반이다. 이 지역 의원들은 ‘총선 참패’라는 현실을 맞닥뜨렸지만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현실’에서는 참패했지만, 그들이 서 있는 영남과 강남이라는 ‘좁은 현실’에서는 승리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그들은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한 자신들이 옳다고 믿어도 손해 볼 일이 없다. 총선 참패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탄핵 정국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역시나 그들은 ‘넓은 현실’에서 배울 생각이 없어 보인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헌법 77조가 정한 계엄 요건(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을 충족하지 못한다. 국회에 군대까지 진입시켰으니 위헌이며 위법한 계엄이었다. 헌법 65조(대통령이 헌법·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에 따라 국회의원이 탄핵에 찬성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국민 여론도 찬성이 압도적이다. 13일 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75%가 탄핵 찬성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다수 의원들은 정반대로 갔다. 물론 자기 양심이 탄핵 반대라면 반대표를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고 왕따를 시키는 행태는 납득할 수 없다. 헌법 65조와 전체 민심이라는 ‘넓은 현실’은 무시하고 영남과 강남 중심의 강경 보수층이라는 ‘좁은 현실’에 갇힌 탓이 아닌가 싶다. 이 지역 의원들 머릿속에는 그렇게 하더라도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는 ‘여당이 계엄을 비호한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수도권과 중도층 표를 얻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향후 선거에서 또 수도권에서 참패할 위험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힘은 계속 영남이 주류가 될 것이다. ‘영남 지역당’으로 가는 ‘죽음의 나선’에 빠져드는 셈이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 참패라는 성적표를 인정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 역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쇄신이라는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한다. 반면 ‘좁은 현실’의 승리에 갇혀 편안히 안주하는 건 너무나 쉽다. 국민의힘이 진정 대한민국 보수를 대변하고자 한다면 그래서는 안 된다. 지역당에 안주하면서, 윤 대통령이 그랬듯이 선거 패배를 부정 선거 탓으로 돌린다면 재집권은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