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위기란 말이 지겨울때도 됐다”...너도나도 쓴소리에 남은 건 이재용의 결단 [방영덕의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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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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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동행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지난 11일 필리핀·싱가포르 경제사절단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그야말로 입을 꾹 닫은 채였습니다.

보통 출국, 귀국 자리에 나온 취재진에게 ‘고생이 많으시다’ 등의 인사를 건네곤 했던 이 회장이었습니다만, 이날 만큼은 무거운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합니다.

지난 8월 유럽 출장과 파리올림픽 참관을 마치고 귀국한 자리에서 “우리 플립6(갤럭시 Z플립6 올림픽 에디션)로 셀피 찍는 마케팅이 잘된 것 같아 보람 있었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던 것과는 대조를 이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몇달 새 삼성 위기론이 무슨 바이러스 퍼지듯 우리 사회 곳곳에 퍼지고 있습니다. 올해 3분기 잠정실적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주가가 5만원선으로 주저앉기도 했죠.

역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들부터, 외부 법조인, 경제 전문가는 물론 삼성전자 전직 사장까지 삼성의 위기론을 말하지 않는 이들을 찾기가 좀처럼 어려울 정도입니다(아, 또 있네요. 썰 좀 푼다는 유튜버들과 ‘5만전자도 아니고 4만전자 가면 사겠다’는 주식 투자자들까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명실상부 세계 1등 기업이었던 삼성이, 어쩌다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론에 휩싸이게 된 것일까요.

“조직 문화가 문제야”...삼성 전현직 반도체 수장들도 인정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 혐의 관련 2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우리나라 반도체 신화의 주인공이자 ‘미스터 반도체’라 불리는 진대제 삼성전자 전 사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의 위기를 야기한 원인으로 관료화된 조직 문화를 꼽았습니다.

진 전 사장은 “치열한 회의문화와 정보 공유 분위기, 추진력이 없어졌다”며 “한마디로 관료화 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1993년 반도체 세계 1위가 된 뒤에도 사장부터 과장까지 100여명이 한데 모여 치열하게 토론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같은 조직 문화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겁니다.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수장인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 역시 이를 인정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취임 이후 줄곧 삼성전자 반도체 경쟁력이 약화한 근본 원인이 조직문화에 있다고 지적해왔습니다. 부서간, 리더와 구성원간의 소통에 벽이 생기고, 현재를 모면하기 위한 비현실적 계획을 보고하는 조직문화가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는 게 전 부회장의 분석입니다.

전 부회장은 마침 실망스러운 3분기 실적까지 나오자 이례적으로 고객, 투자자, 임직원들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냈습니다. “많은 분들이 삼성의 위기를 말한다. 이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저희에게 있다”라고요.

그러면서 기술 경쟁력 복원과 함께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을 다시 들여다보고 바로 고치겠다고 또 한번 강조했습니다.

부족한 동업자 정신, 넘치는 자만심...역대 산업부 장관들도 우려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역대 산업부 장관 반도체 패권 탈환을 위한 초청 특별대담’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 이창양 전 산업부 장관, 윤상직 전 산업부 장관,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 이윤호 전 지경부 장관, 성윤모 전 산업부 장관, 이종호 전 과기부 장관. [사진출처 = 연합뉴스]
윤상직 전 산업부 장관은 또 다른 측면에서 삼성의 조직문화를 바꿔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14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주최한 ‘반도체 패권 탈환을 위한 한국의 과제’를 주제로 한 특별 대담 자리에서였습니다.

윤 전 장관은 “(삼성은) 갑을문화, 원가절감 등과 같은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며 “모든 제조업·서비스업이 앞으로 AI 기반으로 나아갈텐데, 거기에선 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동업자 정신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환부로 지적되는 조직 문화에는 자만심도 놓여 있습니다. 이윤호 전 장관은 “삼성이 D램 성공에 오랫동안 의존해 조직 긴장도가 많이 떨어져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고요.

이창양 전 장관 역시 자만에 빠져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 부족함을 지적했습니다.

이 전 장관은 “고도로 발달된 소위 ‘기술 안테나’가 필요하다”며 “안테나를 높게 세우고 주위에 어떤 기술이 자라나고 있는지, 경쟁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서치하면서 그 중에 좋은 기술은 받아들이고 또 인수합병(M&A)을 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1인자 삼성전자와 후발주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구도란 말은 옛말이 됐습니다. 삼성이 실기한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개발에서 SK하이닉스가 먼저 치고 나가면서부터 말입니다.

“삼성이 하면 뭘해도 됐던 그 시절, 지금 딱 SK하이닉스가 그런 것 같다”며 삼성 내부 직원들조차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조 반도체 기업들의 몰락...JY 결단력 필요해
어느 기업이든 위기가 아닌 때를 찾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삼성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지금 대두된 삼성 위기론은 그 위기를 기회로 삼지 못하면 어떡하나 우려하는 측면이 더 커보입니다.

위기 원인인 조직 문화를 바꾸는 일은 인적 쇄신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적 쇄신 결정권은 결국 삼성전자를 이끄는 이재용 회장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침묵이 길어지니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요.

‘뉴삼성’에 대한 뚜렷한 메시지가 이 회장으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아직입니다. 시장의 우려 속 위기 돌파를 위한 해법이 삼성 내부에서 나와야 하는데, 정작 외부에서 더 급한 모습입니다.

그러는 사이 원조 반도체 기업들은 몰락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미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인 인텔은 배당중단에 파운드리 분사 등 강도높은 자구책을 실행 중인 가운데 최근엔 전세계 임직원을 대상으로 해고 통지를 했습니다. 한때 낸드 플래시업계 세계 1위에 올랐던 일본 도시바는 증시에서조차 퇴출당했구요.

수십년간 원가 절감에만 치중하면서 첨단 기술 개발 기회를 놓친 결과라는 분석에 아찔해집니다. 삼성의 위기 원인과 맞닿아 있어섭니다.

오는 25일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4주기 기일입니다. 27일은 이 회장이 취임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내달 1일은 삼성전자 창립 55주년이지요.

회장님 말 한마디에 기업 경영이 확 바뀔 순 없겠지만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란 말 한마디와 결합된 결단력이 그야말로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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