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 갭’ 16년만 역전 돼
AI 과열 우려에 증시 고점론
고금리 막바지 채권 매력 쑥
韓증시는 기업 저평가 여전
연이은 인공지능(AI) 주도주 중심의 상승세에 증시 기업가치(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진 반면, 고금리 환경 속 채권의 투자 매력은 높아진 탓이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서 주식과 채권 기대수익률 간 차이를 뜻하는 ‘일드 갭(Yield Gap)’은 최근 들어 마이너스권으로 진입했다.
통상 일드 갭이 낮거나, 마이너스를 보이는 건 주식과 비교해 채권이 저평가돼 있음을 보여준다. 주식 대비 채권의 기대수익률이 더 높아진 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이달 27일 기준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쉴러 주가수익비율(PER)을 적용한 기대수익률(어닝 일드)은 2.76%다.
쉴러 PER은 지수를 과거 10년 평균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경기 변동 요인을 고려해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고점일수록(쉴러 PER이 높을수록), 향후 기대수익률은 낮아진다.
일드 갭은 지난 금융위기 이후 줄곧 플러스 구간을 유지해왔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채권보다 주식의 투자 수익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S&P500지수는 522.84% 급등했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023년 이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 수준을 웃돌면서, 주식과 채권의 기대수익률이 역전됐다”며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채권이 주식의 경쟁자가 됐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주식 기대수익률이 낮아진 건 AI 모멘텀에 따른 증시 상승세가 장기간 지속됐기 때문이다. 고금리 고물가 지속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에도 S&P500지수, 나스닥100지수는 2023년 이후 각각 46.52%, 78.99% 상승했다.
주가 상승에 기업가치 부담은 커졌다. 현재 S&P500지수의 쉴러 PER은 36.28배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0년 닷컴버블(44배), 2021년 팬데믹(38배)에 근접한 수준이다.
월가에서도 경고의 메시지가 나온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는 AI 고점론을 제기한 바 있다.
반도체 기업의 매출증가율이 올해 3분기 고점을 찍은 후, 4분기부터 하락 전환할 것이란 지적이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판가 하락으로 수익성은 저하된다.
반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5.5%까지 빠르게 인상하면서, 채권 투자 매력은 높아졌다. 단기채는 고금리 이자 수익을, 장기채는 향후 금리 인하 시 자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증시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주식에만 집중하기보다 채권을 포트폴리오에 섞는 유연한 자산배분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실제 지난 1990년 이후 일드 갭이 -1%포인트대를 기록했을 때, 향후 1년간 S&P500지수의 평균 수익률은 -1.6%로 부진했다.
변준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채권 지수가 저점, 고점을 높이며 뚜렷한 상승 추세에 진입했다”며 “주식에서 채권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국면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 주식 시장은 여전히 기대수익률이 채권보다 높았다.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선행 PER을 적용한 기대수익률은 11% 수준이다. 이를 한국 10년물 국채금리(3.07%)와 뺀 일드 갭은 7.93%포인트다.
미국 증시와는 상반되는 수치로, 국내 상장사들의 주가가 이익 대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시장의 일드 갭이 8~9%대에 도달하면, 2000년대 이후 최대 저평가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 수출 모멘텀은 여전히 견고하다”며 “이는 선행 주당순이익 상승으로 이어져 왔다. 유동성 환경 회복 시 코스피의 기업가치 매력도 배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