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압박 피하자" 자사주 교환사채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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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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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처리계획 공시 강화에
교환사채로 시간벌기 나서
금리 낮아 자금조달도 쉬워




최근 자사주를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EB) 발행이 늘고 있다. 자사주 처분에 대한 공시 강화 정책이 예고된 가운데 미리 자사주를 활용해 자금 조달에 나서는 모양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는 21건 발행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0건이 발행된 데 비해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발행된 교환사채 중 자사주를 기초로 하는 교환사채 비중은 올 1분기 70%, 2분기 60%에 달했다.

최근에도 호텔신라, 에프엔에스테크, 유니드, 선익시스템 등 다수의 기업이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교환사채 발행에 나선 호텔신라는 자사주 213만5000주를 대상으로 했다. 이는 총발행주식 수의 5.44% 수준이다.

교환사채는 일정 기간이 경과된 후 채권자의 청구에 의해 발행회사가 보유한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교환 대상이 되는 주식 가격이 오른다면 채권자는 높은 시세 차익을 얻는다. 발행회사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발행돼 있는 주식을 활용하기 때문에 대주주 지분율 희석에 대한 우려도 없다.

통상 교환사채 표면이자율은 0%로 발행된다. 호텔신라가 발행한 교환사채는 만기 이자율까지 0%로 채권자가 사채를 통해 얻는 이자 수익이 없다. 주가가 최소 교환 가격만큼 오를 거라는 기대로 투자하는 셈이다.

호텔신라 자사주 교환사채의 1주당 교환 가격은 6만2200원으로 발행 당시 주가에 비해 15% 높다. 발행 규모가 1328억원에 육박하는데, 호텔신라는 이자를 내지 않고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호텔신라는 이 자금으로 지난해 연 4.65%로 받았던 은행 대출 1500억원을 상환한다. 교환사채를 통해 비용을 대폭 아끼게 됐다.

최근 들어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가 늘어난 데에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밸류업 프로그램 정책의 일환으로 올해 3분기부터 자사주 보유 목적이나 처리 계획을 구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예고대로 자사주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 기업들이 원래 짜둔 자사주 활용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에 규제 강화 전 미리 움직이는 것 같다"며 "일단 이렇게 자사주 교환사채를 발행해두면 자사주 처분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고려하는 시간을 버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자사주 소각에 대한 압박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교환사채 발행은 그 자체로 문제시될 수는 없지만 밸류업과 연관돼 자사주 처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이목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며 "자사주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유의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주주환원을 강조한 나머지 무조건적인 자사주 소각이 강요되는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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