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군·경 교육자료에도 ‘집게 손가락’…군장병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까지 [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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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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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34] 지난 3일 육군 제37사단 소속 모 대대에서 성인지교육 시간 중 성희롱·성폭력 예방 시간에 나눠준 교육 자료를 본 병사 A씨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성인지교육 자료에 그려진 삽화. 한 병사의 손가락이 다른 병사의 성기 위치에 ‘ㄷ’자를 그리고 있다.
장병들을 그린 삽화에 한 병사의 손가락 모양이 정확히 ‘ㄷ’자 집게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해당 손가락은 다른 병사의 성기 위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여성 강사였던 성고충전문상담관(국방부에서 채용)은 병사들에게 “임신과 출산을 제외한 모든 일은 남녀가 가능하다. 하지만 남자만이 가능한 일은 없다”, “성희롱·성폭력 관련 범죄는 성별 쪽에서 강자인 남자만 가능하다”, “현재 18개월 군복무는 너무 짧아서 늘려야 한다”, “여러분들은 여군과 같은 층에만 있어도 성희롱이고, 군사징계 외에도 형사처벌을 받은 이력이 있으면 사회에서도 불이익이 있다” 등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여군 간부를 상대로 병사가 “상사님, 몸매도 좋고 매력적이십니다. 제가 사회에서 만났으면 꼬셨을텐데” 등 성희롱을 하는 영상을 시청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A씨는 “PPT 자료에서도 뜬금없이 ‘ㄷ’자 손가락 모양의 삽화가 나와서 7차례나 보게 됐다”며 “영상을 시청할 때는 성인지교육을 받을 때는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단의 한 간부도 “비슷한 내용으로 성인지교육을 받았다”며 “이렇게 남성 장병들을 전부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성인지교육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성고충전문상담관은 국방부에서 각 군 및 지역별로 채용해 해당 지역에 있는 부대 교육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경찰 교육자료에도 그려진 ‘ㄷ’자 손가락
경찰에서도 교육 자료에서 ‘ㄷ’자 손가락이 나타나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인천경찰청에서 제작해 배포한 ‘청문감사 인권문 유쾌한 과장의 청렴일기(부제: 부정청탁은 3go를 기억하세요)’라는 제목의 청렴 교육 자료에 ‘ㄷ’자 손가락 모양의 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인천경찰청 청렴 교육 자료. 남성의 손가락 모양이 ‘ㄷ’자를 그리고 있다.
매일경제가 입수한 자료에는 “채용은 공정하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말하는 남성과 “부정청탁을 받으면 3GO(알리고, 거절하고, 신고) 꼭! 기억하세요”라고 말하는 여성의 한 쪽 손가락이 ‘ㄷ’자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말하는 내용과 제스처에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습니다.

인천경찰청 청렴 교육 자료. 여성의 손가락 모양이 ‘ㄷ’자를 그리고 있다.
한 경찰관은 “교육 자료에 이런 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이같은 그림이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연의 일치이거나 작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그려진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죠. 그렇다하더라도, 최근 지속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특정 성 대상 혐오표현을 연상시킬 수 있는 모습이 들어간 자료를 걸러내지 못한 관계기관은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ㄷ’자 손가락, 집게 손가락이 대체 뭐기에 이렇게 논란이 되는 걸까요?

‘ㄷ’자 손가락 때문에 곤욕 치른 르노코리아
엄지·검지손가락을 ‘ㄷ’모양으로 만드는 집게손 동작은 남성 혐오 표현으로, 2017년까지 운영됐던 남성혐오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로고를 닮았습니다.

여초 커뮤니티 ‘메갈리아’ 상징 ‘ㄷ’자 손가락
이는 지금까지 한국 남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조롱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르노코리아 신차 홍보영상 속에 등장하면서 논란에 불이 지펴졌습니다.

르노코리아는 중형 하이브리드 SUV ‘뉴 그랑 콜레오스’로 침체된 회사 분위기 반등을 노리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르노코리아 홍보 영상에서 리포터로 등장한 한 여성이 여러 번 ‘ㄷ’자 손가락 모양을 반복해서 나타내자, 이를 본 남성들은 큰 불쾌감을 표출했습니다.

맥락과 맞지 않는 직원의 ‘ㄷ’자 손가락 모양은 ‘의도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자료=르노코리아 홈페이지]
이에 르노코리아 측은 “해당 영상이 더 이상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했으며 영상 제작 과정에서 세심하게 검토하지 못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며 “르노코리아는 어떠한 형태의 차별이나 혐오 없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사과문을 올리고 즉각 해당 매니저를 직무 정지시켰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1만 개가 넘는 항의 댓글은 계속 이어지고 사태는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르노 프랑스 본사에도 항의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군대 등에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된다”며 “이처럼 왜곡된 정서를 퍼뜨리는 게 바로 군기 문란이고 이적행위”라고 일침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해 엄정한 처벌과 퇴출은 물론, 이를 주도하고 방치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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