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째 롯데월드 빙판 보살핀 얼음맨 … 내게 폭염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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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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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아이스링크 정빙사 정민 씨
20년전 빙판 타임캡슐 아이디어도 내
"아이스링크 빙판은 나의 세번째 아들"
아들놈과 빙판놈 자라는 것만 봐도 행복
롯데월드의 '차가운 심장'이나 다름없어
"심장처럼 영원히 쿵쾅쿵쾅 뛰었으면 …"




참으로, 기연이다. 아니, 질긴 인연이다. 18년 전인 2006년 인터뷰. 그리고 2024년 한여름 다시 만나 인터뷰라니. 롯데월드 어드벤처 아이스링크 정빙사(얼음 관리사) 정민 씨. 그는 단단히 언 '얼음'처럼 변한 게 없다. 여전히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위를 누비고 있고, 무려 30여 년 이상 얼음 관리 총책을 맡고 있다. 아, 물론 바뀐 건 있다. 그 사이 정년퇴직을 했고, 지금은 '촉탁직'이다. 18년 전 '계장'에서 '팀원'으로 살짝 직함(?)이 내려앉은 것 외엔 모든 게 그대로다. 사실 기자로서도 한 인물을, 그것도 같은 직종에 있는 이를 두 번 연속 인터뷰하는 건 드문 일이다. 정씨를 다시 만난 건 순전히 '타임캡슐' 덕이다. 때는 2004년. 당시 개원 15주년을 맞은 롯데월드는 생일 기념 이벤트를 기획했는데, 마침 얼음 정빙을 맡았던 정씨가 낸 타임캡슐 아이디어가 덜컥 채택된 것이다. 1989년 개원 때부터 롯데월드의 '차가운 심장'이나 다름없었던 아이스링크에 타임캡슐을 묻자는 것이었고, 바로 실행이 된다. 전 세계 최초, 대한민국 유일무이의 '빙판 타임캡슐'이 탄생한 순간이었던 셈. 정씨는 타임캡슐 제작 꿀팁까지 제공한다. 그렇게 나온 게, 빙판 속 -20도를 견딜 황동 재질에, 13㎝ 원통형 타임캡슐이었고, 결국 완성된다. 최근 타임캡슐 봉인 20주년을 맞아, 오픈식이 열리면서, 정씨와 기자의 인연도 다시 열린 셈이다.

20년전 타임캡슐 오픈식 사진.


"지난 6월 29일이었죠. 봉인 20주년을 맞아 마침내 개봉식이 열렸죠. (제가 직접) 얼렸던 얼음 일부를 녹이고, 20년 전 추억을 끄집어내는데, (와) 가슴 한편이 뭉클했죠."

롯데월드는 20년 전 타임캡슐을 함께 묻었던 50여 명의 '그 사람'들을 찾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의 추억이 담긴 타임캡슐을 돌려주고 소정의 선물도 함께 증정한다는 계획이다.

문득 궁금했다. 20년 전, 그는 무엇을 묻었을까. 그가 출력한 종이 한 장을 꺼낸다. '20년 후의 (그와 가족에게 보내는) 메시지'. 그가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바람과 희망이 끄적여 있었다.

"(캡슐 묻을 때는) 살아생전 못 볼 줄 알았죠. 20년 뒤에 살아있을까 했는데. 지금 보니 그때 메시지에 적었던 모든 게 다 이뤄졌어요. 사랑하는 가족들 다 건강하죠, 롯데월드 얼음과 함께 청춘을 다 보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했는데, 진짜 정년 채우고, 또 이 얼음을 관리하고 있네요. 이젠 (정말이지) 여한이 없습니다."



'얼음과 청춘을 함께 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정씨의 삶은 '롯데월드의 차가운 심장' 얼음과 함께 뛰고 있다. 1989년 입사. 첫 빙판을 만든 이래 무려 30여 년째 8㎝ 얼음판만 보고 살고 있다. 정년 퇴임과 동시에 '차가운 얼음 심장'과도 작별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촉탁직원으로 그 심장과 또 함께 뛰고 있다.

그에겐 세 명의 자식이 있다. 첫째는 처음 빙판을 얼렸던 1989년 태어난 아들이다. 얼음과 함께 키운 그 아들은 무역업을 하고 있고, 이후 태어난 둘째는 미술을 전공한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두 아들과 달리, 유독 셋째는 차가운 심장을 가졌다. 세 번째 아들, 그게 롯데월드 아이스링크다. 18년 전 인터뷰 때도, 지금도 그는 말한다. '아들놈과 빙판놈' 잘 자라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고.

아이스링크 얼음과 함께 30여 년. 얼음과 함께라면 그렇게 행복한 그지만 여전히 불안한 게 있다. 빙판이 싹 녹아버리는 악몽이다. 18년 전에도 악몽에 시달렸는데, 여전히 그는 이 꿈을 꾼다. 찝찝한 날이면 새벽녘이라도 어김없이 아이스링크를 찾는다.



"아직도 악몽을 꾸죠. 30년째예요. 그런데 횟수가 많이 줄었어요. 사랑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결혼생활처럼, (얼음에 대한)애정이 이젠 믿음의 단계로 접어드나 봐요.(웃음)"

한평생 함께한 얼음과의 기연. 아닌 게 아니라, 묘하게 그는 '물'과의 인연이 각별했다. 군생활도 물이 있는 해군에서 했고, 유일한 그의 취미도 루어낚시다.

"어제도, 태안으로 낚시를 다녀왔죠. 낚시라면 바다·민물 안 가리고 뛰어가죠. 직장에선 얼음과 씨름, 휴일에는 낚싯대와 씨름. 그러고 보니 진짜 물하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그가 애지중지 하는 보물 1호도 '얼음'이다. 2005년, 빙질 향상을 위해 일부 상판의 얼음을 새로 업그레이드했는데, 당시 15년간 키워 왔던 얼음을 녹이는 데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라는 것. 상판 얼음 업그레이드 작업 때 하도 아쉬운 마음에 8㎝ 크기로 잘라낸 조각을 아직도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다.

"두 아들의 살점을 떼 내는 느낌이랄까. 그걸 녹이는 데 정말 살덩어리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죠.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던 게죠."

얼음과 평생을 붙어 산 기구한 팔자의 사나이. 그래서, '얼음맨'이라 불리는 사나이. 18년 만에 인터뷰로 재회를 했지만, '따뜻'하고 '뜨거운' 속마음만큼은, 굳건히 얼어 있는 아이스링크 표면 마냥 정말이지 그대로다.

18년 전 매일경제신문에 나갔던 인터뷰는 이런 리드로 시작했다. '평생 얼음을 보살핀, 정민 씨. 그의 전생은 불(火)이 아니었을까'로. 100여 년쯤 뒤, 다음 생에 기자로서, 정씨와 다시 만난다면, (나는)이런 리드를 쓰고 있을 것 같다. '불을 평생 가꿔온 불의 사나이 정민 씨. 그는 전생에 얼음을 자유자재로 다루지 않았을까'라고.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기자 프로필

매일경제신문 여행레저 전문기자입니다. 간얍알(간편 얍실 알뜰)여행 철학을 기반으로 세상에 없던 여행만 콕 집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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