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여기서 유래됐다고? 프랑스 와인에 영국 장군 이름이 붙은 이유 [김기정의 와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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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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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보’는 백년전쟁에서 싸운 영국군 장군의 이름이다. 히딩크의 와인이라 불리는 샤토 탈보는 프랑스 보르도 와인으로 탈보 장군의 용맹을 기리는 마음에서 이름이 지어졌다.
김기정의 와인클럽 48 - 프랑스 보르도와 백년전쟁 (2)


지난주 와인클럽에서는 프랑스의 왕비였다가 영국의 왕비가 된 엘레오노르에 관해 이야기했는데요. 엘레오노르가 프랑스 왕과 이혼 후 재혼하며 영국에 보르도 땅을 결혼지참금으로 가져왔고, 보르도 지역이 와인산지로 명성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동시에 보르도가 영국땅이 되면서 프랑스와 영국간 백년전쟁이 벌어지는 불씨를 제공합니다. 백년전쟁에는 우리가 잘 아는 로빈 후드도 등장하고(십자군 전쟁 배경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백년전쟁을 배경으로 한 로빈 후드 이야기 버전도 있습니다) 잔 다르크도 등장합니다. 전쟁사에서는 최종병기로 ‘활’과 ‘대포’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어떻게 프랑스 보르도 와인에 영국의 탈보 장군이름이 붙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아울러 귄위주의적인 사람을 뜻하는 ‘꼰대’의 유래도 알아봅니다. 이번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백년전쟁에 등장하는 로빈 후드, 잔 다르크, 탈보 장군, 캔달 백작의 이야기입니다.

로빈 후드의 활약과 최종병기 ‘장궁’
길이 2m 가까이 되는 장궁(Longbow)를 들고 있는 로빈 후드 동상. 백년전쟁 초반 영국군은 장궁으로 프랑스 기사단을 무력화시키며 승기를 잡는다.
백년전쟁 초반 프랑스의 필리프 6세의 군대는 영국군(잉글랜드군)에 연전연패했습니다. 프랑스 군대는 용맹한 ‘기사’들이 말을 타고 적진을 향해 돌격해 진영을 흩트려 놓는 전술을 구사했었는데 갑자기 영국군의 ‘활’이 절대 살상 무기로 위력을 발휘한 겁니다.

영국군이 사용한 활은 그냥 활이 아니고 길이가 2미터에 달하는 장궁(longbow)이었는데요. 화살의 파괴력이 어마어마해 갑옷을 뚫고 들어가 프랑스 기사들의 전력이 무력화됩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활쏘기 시합을 통해 평민들도 장궁을 잘 다뤘다고 합니다. 이런 활쏘기 시합에는 과녁의 정중앙을 명중시킨 상대방의 화살을 반으로 쪼개며 우승한 명궁수가 전설의 ‘로빈 후드’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도 왕위 계승과 함께 내란이 계속되고, 전쟁은 휴전과 개전을 반복합니다.

잔 다르크의 활약과 최종병기 ‘대포’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군을 지휘하는 잔 다르크.
프랑스에서도 귀족들이 부르고뉴파와 아르마냐크파로 나뉘어 내란 상태에 빠집니다. 이 틈을 타서 영국군은 부르고뉴파와 결탁, 프랑스군을 대파하고 북프랑스 도시들을 점령합니다. 영국군은 프랑스 샤를 7세의 거점인 오를레앙을 포위하면서 전쟁의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이때 오를레앙의 처녀 ‘잔 다르크’가 나와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합니다.

이후 전세는 프랑스쪽으로 기우는데요. 백년전쟁 막바지에는 프랑스군의 ‘대포’가 게임체인저로 등장합니다. 초기에는 대포가 ‘쾅’소리를 내며 주로 적군의 사기를 죽이는 데 사용됐지만 백년동안 전쟁을 거치며 파괴력 개량을 거듭한 끝에 대포는 대량 살상이 가능한 ‘최종병기’가 됩니다. 군사학자들은 백년전쟁을 끝낸 것은 잔 다르크가 아니고 프랑스군의 포병과 대포라고 주장합니다. 이때부터 전쟁의 승패가 군인들의 근육과 용맹함이 아닌 ‘과학기술’로 결정 나게 됩니다.

영국군 노장 존 탈보와 샤토 탈보
백년전쟁에서 위기에 처한 영국군 사령관 탈보 장군.
영국이 보르도를 지배하는 동안 세금혜택을 받은 보르도 와인산업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보르도의 와인생산자들은 프랑스가 보르도를 점령할 경우 자신의 최대 시장인 영국을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보르도 지역 유지들은 영국에 다시 ’SOS’를 칩니다. “우리를 버리지 말라, 군대를 보내면 우리도 영국을 도와 프랑스와 싸우겠다.”

노장 ‘존 탈보’가 영국군 총사령관으로 프랑스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참전하게 됩니다. ‘잉글랜드의 아킬래스’라 불린 명장이었지만 전세는 이미 프랑스로 기울었습니다.

존 탈보 장군은 1453년 7월17일 보르도 인근 카스티용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합니다. 카스티용 전투로 백년전쟁은 사실상 막을 내립니다. 이후 보르도는 다시 프랑스의 영토가 됩니다.

프랑스에선 비록 적장이었지만 용맹했던 영국의 탈보 장군을 기리는 마음에서 샤토 탈보(Chateau Talbot)라는 이름의 와이너리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존 탈보는 보르도 지방 기옌의 영주이기도 했습니다.

샤토 탈보는 보르도 메도크 지역 생 줄리앙 마을의 와인으로 1855년 와인등급 분류 때 그랑 크뤼 4등급을 받은 훌륭한 와인입니다. 샤토 탈보 와인은 히딩크 감독이 좋아한다고 해서 ‘히딩크 와인’으로 불리우는데요. 대한항공에서 1980년대 퍼스트 클래스에서 제공하던 와인이기도 합니다.

◇캔달 백작이 된 장 드 푸아 백작과 샤토 드 캔달
보르도 우안 생테밀리옹에 위치한 샤토 드 캔달 와이너리. 백년전쟁에서 싸웠던 캔달 백작의 이름을 따왔다.
보르도의 와인 산지는 지롱드 강을 경계로 왼쪽을 좌안(Left Bank), 오른쪽을 우안(Right Bank)이라고 부릅니다.

보르도 좌안 와인은 5대 샤토라 불리는 ‘라투르, 라피트, 무통 로칠드, 마고, 오브리옹’이 유명합니다. 보르도 우안 생테밀리옹 지역에선 세계 최고의 와인인 샤토 슈발 블랑, 샤토 오존, 샤토 파비, 샤토 앤젤뤼스, 샤토 피작 등이 생산됩니다. 보르도 우안의 또 다른 지역인 포므롤 와인으로는 페트루스와 르팽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생테밀리옹은 8세기께 성인(saint) 에밀리옹이 정착했던 동굴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탄생한 곳으로, 유네스코의 ‘문화경관’에 선정된 최초의 포도원입니다.

백년전쟁과 관련한 와인 스토리로 보르도 좌안 메도크에 샤토 탈보가 있다면 보르도 우안 생테밀리옹에는 샤토 드 캔달(Chateau de Candale)이 있습니다.

존 드 푸아(John de Foix)백작은 존 탈보 장군과 함께 1453년 보르도 수복 전투에 참전합니다. 하지만 존 탈보 장군은 카스티용 전투에서 전사하고 존 드 푸아 백작은 포로가 됩니다. 보상금을 지불하기로하고 7년만에 풀려난 존 드 푸아 백작은 영국으로 귀국하지만 패전의 책임을 지고 다시 런던탑에 갇힙니다. 이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프랑스의 새로운 국왕 루이 11세의 도움으로 보르도 지역에서 정착합니다.

존 드 푸아 백작은 앞서 1446년 마르그리트 커데스턴(Margaret Kerdeston)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켄달(Kendal) 백작부인으로 불렸습니다. 마르그리트 커데스턴은 영국왕 에드워드 3세의 후손입니다. 부부는 프랑스식으로 캔달 백작과 캔달 백작부인(Comte de Candale and Comtesse de Candale) 으로 불렸는데 캔달의 ‘K’가 ’C’로 바뀌었습니다.

참고로 프랑스어 ‘콩테’(Comte)는 백작을 지칭하는 말인데요. 콩테에서 ‘꼰대’라는 말이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권위적 사고를 지닌 사람을 꼰대라고 부릅니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이 자신을 ‘백작’이라 칭했는데 일본어 발음 ‘콘테’에서 꼰대가 시작됐다는 주장입니다. 콩테(불어)-콘테(일본어 발음)-꼰대로 변했다는 겁니다.

캔달 백작 부부의 이름을 딴 와인이 샤토 드 캔달(Chateau de Candale)입니다. 샤토 드 캔달은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와인입니다.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는 부르고뉴 ‘그랑 크뤼’와는 의미가 조금 다르지만 오는 2032년 생테밀리옹 와인등급심사에서 그랑 크뤼 클라세(Grand Cru Classe)에 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와인입니다.

김기정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가 와인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풀어드립니다. 김 기자는 매일경제신문 유통팀장, 식품팀장을 역임했고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RWA), 아시아와인트로피 , 한국와인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기자페이지에서 ‘구독’을 누르면 쉽고 빠르게 와인과 관련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email protected]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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