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아바나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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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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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살상무기'의 시대다. 현재 진행형인 두 개의 전쟁터에는 자폭 드론이 날아다닌다는데, 이 무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한밤중 정체 모를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난 뒤 온갖 고통스러운 증상에 시달린다. 이명과 두통, 메스꺼움, 청력 손상 등은 가벼운 축에 속하고 인지 장애에 뇌 손상까지 오는 경우도 있단다.

이런 증상의 괴질을 '아바나증후군(Havana syndrome)'이라고 부른다. 2016년 쿠바 수도 아바나에 근무하던 미국 외교관과 정보요원들에게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후 국적을 가리지 않고 수백 명의 피해자가 나왔고, 지난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미국 국방부 고위 관리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아직 원인도 모르고 배후도 모른다. 그간 학계에서 꾸준히 연구해왔지만, 극초단파나 고주파에너지를 활용한 음파 무기일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 오죽하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알 수 없는 소리의 정체라는 주장까지 나왔을까. 게다가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뇌조직은 광범위하게 지속적인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마땅한 치료법도 없다는 이야기다.

CBS 탐사보도 프로그램 '60분'과 온라인 매체 디인사이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공동조사를 토대로 러시아 군 정보기관 총정찰국(GRU) 산하 특수부대(29155)가 개발하고 배치한 음파 무기가 아바나증후군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러시아는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일축했지만 부지불식간에 신경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인공지능(AI)이 빠르게 접목되고 있는 분야가 방산이다. 두 개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세계는 경쟁적으로 안보 예산을 늘리고 있다. 전 지구적 혼란을 틈타 AI가 어떤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어낼지 겁이 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흥미로운 시대구나 싶다가도, 이것이 꼭 축복만은 아닌 듯 느껴지는 이유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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