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마이너스’ 던졌다…‘이자있는 삶’ 선택한 이유는 [뉴스 쉽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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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이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결정한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금융 정책이 지난 19일 세계 각국 언론의 메인 뉴스를 장식했어요.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약 17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렸기 때문이에요. 미국과 유럽 주요국, 한국 등 대부분 나라가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동안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태도가 드디어 바뀐 거예요.

일본은 기준금리(단기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금리(-0.1%)’로 유지하는 정책을 오랫동안 펼쳤어요.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건 통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에요. 일본의 경우는 경제를 활성화하려고 극단적으로 낮은 금리를 택한 거고요. 워낙 오랫동안 경기 침체를 겪은 탓에 최근 몇 년간 다른 나라들이 높은 물가 상승률을 낮추려고 금리를 올릴 때도 ‘경제 활성화가 먼저’라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어요.

금리가 마이너스였다고?
일본의 기준금리는 8년 넘게 -0.1%였어요. 2010년부터 쭉 0%였던 것을 2016년에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해서 더 내렸죠. 원래 은행에다 돈을 맡기면 이자가 붙어야 하지만, 이렇게 마이너스 금리일 땐 오히려 원금이 줄어들게 돼요.

다만 일반 은행에선 마이너스 금리가 거의 적용되지 않아요. 내 돈이 점점 줄어드는 은행에 돈을 맡기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사실상 일반 금융 소비자 입장에선 0%(제로금리)라고 이해하면 쉬워요.

하지만 ‘은행들의 은행’인 중앙은행(ex. 한국은행)과 시중은행(ex. 국민·신한·우리·하나) 사이에선 실제로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돼요. 시중은행들이 여유 자금을 중앙은행에 맡기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거죠. 결국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들에게 ‘여유 자금을 중앙은행에 쌓아두지 말고, 여러 개인이나 기업들에게 대출 해주는 데 쓰라’고 유도하는 정책인 거예요. 그래야 유동성(돈)이 쌓여있는 대신 여기저기에 풀리며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마이너스 금리 끝! YCC도 그만!
어제(19일) 일본은행은 –0.1%였던 기준금리를 0%로 조정했어요. 일본 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 건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에요. 8년 넘게 이어졌던 이례적 ‘마이너스 금리’ 시대도 끝나게 됐어요.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종료와 함께 중요한 정책 변화를 하나 더 예고했어요. 바로 ‘수익률곡선 제어(YCC·Yield Curve Control)’ 폐지예요.

‘장단기 금리조작’으로 불리기도 하는 일본의 금융 정책 ‘YCC’는 일본 국채 금리의 변동 폭을 미리 정해놓고, 금리가 이 범위를 벗어나면 일본은행이 개입하는 방식이에요. 지난 2016년 9월에 도입해서 계속 활용해 왔죠.

수익률 곡선 제어(YCC)란?
지난 19일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 앞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수익률곡선 제어(YCC)라는 이름이 조금 어렵게 보이긴 하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단기 정책금리)만 낮게 정한 게 아니라 ‘장기 국채 금리’도 낮게 유지하려고 추가로 손을 써왔다는 거예요. 기준금리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아무리 중앙은행이라도 모든 금리를 정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미국의 기준금리는 정할 수 있어도, 전 세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국채 금리까지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어요.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는 채권은 사고 팔리며 가격과 금리가 정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연준이 정한 기준금리가 영향은 미쳐도 여러 금리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일본은행은 아예 일본 국채를 대규모로 사들이면서 원하는 만큼 국채 금리를 낮게 유지해 왔어요. 보통 중앙은행이 정한 기준금리를 시장의 여러 금리가 따라간다고는 하지만, 미국 등 주요국들이 금리를 빠르게 올릴 땐 일본 국채 금리도 이런 시장 흐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정리하자면, 일본 국채 금리가 올라가려 할 때마다 일본은행이 국채 금리가 다시 낮아지도록 엄청난 돈을 써왔다는 거예요. 다른 나라들은 쓰지 않는 방식이에요. 일본이 그만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인위적인 개입을 많이 했다는 뜻이에요.

일본이 국채 금리에 개입해 온 방식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아요.

① 장기 국채의 금리 기준을 0%로 정해둔다.

② 시장에서 변하는 금리를 완전히 고정할 순 없으니 변동 폭 ±1% 정도는 허용한다. (허용 변동 폭은 ±0.25%였다가 최근 들어 ±1% 정도까지 확대)

③ 정해둔 변동 폭을 넘어가면 일본은행이 직접 돈을 써서 국채를 사들이거나 판다.

④ 금리가 목표한 범위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일본은행은 앞으로 이런 개입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앞으로는 인위적 조작을 포기하고, 금리의 자유로운 변동을 허용하겠다는 거예요.

일본은 왜 정책을 바꾼 거야?
일본은행이 그동안 마이너스 금리·YCC 등을 유지했던 건 일본이 오랜 경기 침체를 겪었기 때문이에요. 경기 활력이 너무 떨어져서, 다른 나라들이 물가 상승을 걱정할 때 오히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였죠. 경기 침체로 근로자 임금은 잘 오르지 않고, 그 여파로 다시 소비 침체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어요.

그래서 일본 은행은 ‘근로자 임금이 오르고, 그 영향으로 소비가 늘어나 경제도 활성화되는(물가가 오르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마이너스 금리를 끝내겠다고 밝혀 왔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실제로 이 목표가 이뤄지기 시작했어요. 엔저 현상에 힘입어 좋은 실적을 기록한 수출 기업들을 중심으로 큰 폭의 임금 인상이 이뤄진 거예요.

지난 15일 일본 최대 노동조합인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올해 첫 임금협상에서 정규직 평균 임금 인상률이 5.28%로 집계됐다고 발표했어요. 일본은행이 원했던 평균 인상률인 4%를 가뿐히 넘어섰고, 1991년 이후 33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었어요.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임금이 오르는 동안 물가 상승률도 높아졌어요. 경기 침체로 워낙 물가 상승률이 낮았던 일본은 목표치를 2%로 잡고 있어요. 일본의 2020·2021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마이너스였죠. 그런데 2022년 갑자기 목표치와 비슷한 2.3%로 급등하더니, 작년(2023년)엔 3.1%까지 높아졌어요. 1982년 이후 41년 만에 최고치라고 해요.

일본은행은 이런 변화들을 고려해 오랫동안 고집하던 정책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했어요. 물가 급등이나 엔화 가치의 지속적 하락 같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부작용을 걱정할 시기가 된 거죠. 일본 주요 언론매체인 교도통신은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이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았다”고 평가했어요. 좀처럼 방향을 바꾸지 않던 일본이 확실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커요.

다만 방향이 바뀐 일본은행의 걸음은 아주 느릴 것으로 예상돼요. 최근 일본의 경제 상황이 좋은 만큼, 당분간은 추가로 금리를 올리지 않고 상황을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고 해요. 미국과 유럽 주요국, 한국 등 대부분 국가와 반대의 길을 가던 일본 경제가 드디어 전환점을 맞았는데요. 과연 세계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겠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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