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슬링’ 포도품종으로 유명한 독일 모젤지역의 베른카스텔((Bernkastel)마을에는 독토르(Doktor)라는 이름의 포도밭이 있습니다. 모젤지역에서 가장 비싼 포도밭으로 유명한데요. 독토르, 즉 의사(Doctor)라는 이름을 갖게 된 유래가 흥미롭습니다.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약’으로 사용됐던 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대주교님 이 와인을 마셔 보세요. 만병통치약입니다.”
신기하게도 농부가 가져 온 와인을 마시고 대주교는 건강을 회복합니다. 기운을 차린 대주교가 외칩니다.
“네가 의사다!”
대주교는 감사의 표시로 와인이 생산된 포도밭의 이름을 베른카스텔의 의사란 의미인 ‘베른카스텔러 독토르’라고 부를수 있게 해줍니다. 지금도 이 독토르 포도밭은 모젤 최고의 포도밭으로 통합니다.
참고로 독일 와인중에는 유독 닥터(Doctor)라는 이름이 들어간 와인이 많은데요. 독일 와인제조자 중에 농업이나 양조학 박사학위가 있을 경우 닥터(Dr)를 사용합니다. 미국에선 통상 의학박사(Medical Doctor)인 의사만 닥터(Dr)를 이름 앞에 쓰고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이언 테터솔과 롭 디셀이 쓴 ‘와인의 역사’에 따르면 와인은 기원전 1850년부터 이집트에서 복통, 호흡곤란, 변비를 치료할 때 사용됐습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무기력증과 설사에 와인을 처방했다고 합니다. 또 검투사들이 다쳤을 때 상처를 소독하는 소독약으로도 와인이 사용됐습니다.
로드 필립스가 쓴 ‘와인의 역사’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같은 제목이지만 책의 저자가 다릅니다. 와인은 오늘날의 ‘신경안정제’ 역할도 했는데 그리스의 시인 에우리피데스는 “와인은 가련한 인간을 고뇌로부터 해방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중세시대 전쟁터에서 와인은 ‘약’으로 통했습니다. 각종 전투에서 와인은 군인들에게 보급됐습니다. 전쟁터에선 서로가 상대방의 식수에 독을 타는 전략을 사용해 식수는 오염되기 쉬웠습니다. 와인은 식수를 대체했고 오염된 식수의 유해균을 죽인다고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와인은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있었고, 영양분이 풍부한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14세기 활동한 프랑스 외과의사 앙리 드 몽드빌은 와인이 피를 맑게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와인이 혈관으로 흡수돼 피로 변하기 때문에 깨끗한 피를 만드는데 가장 좋은 음식이란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살이 찢어지고 피가 나는 외상 환자에게도 와인을 처방했습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건강과 관련한 흥미로운 음주 방법도 많이 나오는데요. 프랑수아 1세의 주치의 샹피에르는 차가운 와인을 마시는 게 몸에 안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6세기 프랑스에서는 와인을 따듯하게 데워 마셨다고 합니다.
병원에선 상당량의 와인을 치료제와 회복제로 사용한 기록이 있습니다.
로드 필립스가 지은 와인의 역사에 따르면 1870~71년 사이 독일의 한 병원에서는 화이트 와인 4633병, 레드 와인 6332병, 샴페인 60병을 소비했다고 합니다. 루이 14세는 부상병을 위한 간호시설로 지은 앵발리드에서 사용하는 와인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주었는데 그 이유 역시 와인을 의약품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맏아들 에드워드 7세의 내연녀들입니다. 레이디 랜돌프 처칠은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였고, 에드워드 7세의 사실상 정부였던 앨리스 케펠의 종손녀는 현 영국왕 찰스 3세의 왕비 카밀라 파커 볼스입니다.
에드워드 7세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레이디 랜돌프 처칠은 남편 사망 후 더욱 자유로운 삶을 삽니다. 연하남 조지 콘윌리스-웨스트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데 조지는 장남 윈스 처칠과 동갑이었습니다. 더구나 조지의 어머니는 에드워드 7세의 내연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카밀라 파커 볼스의 스토리는 더욱 유명하죠.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1995년 BBC 인터뷰를 통해 ‘우리 결혼은 복잡했다. 세 사람이 있었으니까’라고 카밀라의 존재를 폭로합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1997년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습니다.
카밀라가 찰스를 처음 만났을때 찰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저의 증조할머니(앨리스 케펠)가 당신의 고조할아버지(에드워드 7세) 애인이었다는 거 알고계신가요?”
1910년 5월 심장의 통증을 느끼고 쓰러져 결국 일어나지 못했는데요. 에드워드 7세의 처방기록에는 베른카스텔의 닥터 와인도 들어 있었습니다. 불과 100년 전에도 영국 왕실에서 와인을 ‘약’으로 사용했던 겁니디.
물론 지금은 과거처럼 소화가 안 된다고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지는 않습니다. 상처가 난 곳에서 와인을 바르지도 않지요.
다만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해석하거나 판단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타민을 매일 먹어야 한다거나, 단백질 보충제를 먹어야 한다거나, 또는 탄수화물은 먹지 말아야 한다거나하는 조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제목처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어쩌면 100년 뒤 우리의 후손이 2024년의 우리를 보고 왜 그런식으로 와인을 마셨냐고 물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