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런던베이글에 열광하는 한국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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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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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하이브 등 소위 '핫'한 직장의 구내식당에 런던베이글이 등장한 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새벽에 가서 몇 시간씩 줄을 서야 살 수 있다는 그 베이글. 매장이 들어선 것만으로도 그 주위 땅값이 들썩거린다는 그 베이글이었다. 늘 그랬듯 잠깐의 유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런던베이글의 인기는 너무나도 폭발적이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최근 식당 예약 앱 '캐치테이블'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웨이팅 건수가 가장 많았던 식당 1위가 '런던베이글뮤지엄'이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인기는 미스터리다. 우선 상표명에 왜 런던하고 베이글이 붙어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베이글은 동유럽에서 박해를 피해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온 유대인의 빵이다. 그래서 베이글 하면 뉴욕이 먼저 떠오른다. 런던과 베이글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뜬금없이 '도쿄김치박물관'을 만난 느낌이랄까. 영국인이 한국에서 런던베이글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한국 소비자는 '새비(savvy·실용적이고 해박)'하기로 유명하다. 쇼핑하면서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이 그런 한국 소비자의 취향을 저격했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베이글 맛을 한국 소비자 입맛에 맞췄다. 전통 베이글은 수분이 거의 없어 질긴데 런던베이글은 쫄깃하고 소프트하다. 다양한 크림치즈와 더하면 K베이글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포모(FOMO)증후군으로도 설명해볼 수 있다. 최신 트렌드를 자신만 놓치거나 소외당한 듯한 두려움(Fear Of Missing Out)을 말한다. 투자에서 포모증후군이 극명한 분야가 '가상화폐'다. 묻지 마 투자다. '소비'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국내에 베이글을 들여온 게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런던베이글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런던베이글은 '뮤지엄'이란 콘셉트의 힘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런던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로 뮤지엄이란 콘셉트 공간을 꾸미고 그 안에서 베이글을 판매했다. 너도나도 '유니언잭'이 그려진 포장지를 들고나오면서 매장 일대가 종로구 런던동이라고 불렸다. 물론 스타 마케팅도 있었다. 하지만 일반 스타 마케팅과 반대로 연예인들은 런던베이글뮤지엄에 갔다는 걸 자신의 이미지에 입혔다. '나는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즐긴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했다. 런던베이글에선 10만원 이상 샀다는 구매후기가 많다. 일반 베이글 판매장보다 객단가가 높다. 라이프스타일을 팔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한국에 온 철학자 에마누엘레 코치아가 리움미술관에서 '뮤지엄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뮤지엄은 내일 이후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통상 '내일'은 '오늘'에 기반한다. 하지만 그 이후는 오늘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상상이 어렵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설립자들이 기자의 해석에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상업 공간으로 런던베이글뮤지엄을 일반 베이글 상점과 전통 뮤지엄의 사이, 그 어딘가에 만든 것 같다. 예술을 담은 뮤지엄은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한다. 하지만 상업 공간은 익숙함에 기반한 새로움이어야 한다. '익숙한 새로움', 그게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성공 비결이란 생각이 든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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