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노아는 왜 자손을 저주했나...과음에 대한 경고 [김기정의 와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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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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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벨리니가 그린 ‘술 취한 노아’. 가운데 위치한 아들 함은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웃고 있는데 이를 노여워한 노아는 함의 자손이 노예가 되라고 저주합니다. 위키아트
김기정의 와인클럽 41- 술 취한 노아


지난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에서는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다뤘습니다. 인류가 술(알코올)을 마시게 된 이유는 술 취한 조상(원숭이)이 발효된 과일을 골라 먹던 데서 시작됐다는 가설인데요. 이해가 안 된다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로버트 더들리 UC버클리대 교수의 주장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1)과거에는 먹을 게 부족했다 2)생존하려면 높은 칼로리의 음식을 섭취해야 했다 3)알코올이 함유된 발효 과일은 칼로리가 높다 4)발효 과일을 잘 찾는 원숭이가 생존에 유리했다 5)결국 발효 과일을 먹고 술 취한 원숭이가 생존했고 인간으로 진화했다 6)인간이 술을 찾는 이유는 원숭이 때의 생존본능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런 ‘가설’인데요. 최근 로버트 더들리 교수는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이 입증됐다는 새로운 논문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는 과음에 대한 ‘경고’를 다뤄 봅니다. 과음에 대한 경고의 역사도 과음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취한다’는 것은 야만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인류 최초의 와인 제조자 노아가 취한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노아의 저주’로 시작해봅니다. 노아의 ‘방주’가 아닌 노아의 ‘저주’입니다.

인류 최초의 와인 제조자 ‘노아’의 저주
#장면1: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길 원한다.”

잠에서 깬 노아는 아들 함을 향해 저주를 퍼붓습니다. 가나안은 함의 자식입니다. 노아는 자기 아들 함이 한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손자 가나안이 종이 되길 바란다고 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대홍수가 끝나자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습니다. 노아는 성경에서 포도를 재배한 첫 사람이자 와인 제조자였습니다. 하루는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자기 천막 안에 벌거벗은 채 누워 있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의 벗은 하체를 보고 다른 두 형제 셈과 아벳에게 알립니다. 셈과 아벳은 옷을 가져다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습니다. 이때 셈과 아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습니다. 함과 다른 행동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 조반니 벨리니는 심지어 아들 함이 술 취해 벌거벗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웃고 있는 것으로 그립니다.

저는 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아의 행동을 해석할 생각은 없습니다. 노아가 함의 자손을 저주할 만큼 함이 한 행동이 나쁜 짓이었는지, 혹은 노아의 저주가 왜 당사자인 함이 아니고 함의 자손 가나안으로 향했는지는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케 합니다. 다만 의인으로 칭송받은 노아조차도 술에 취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담겨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음 장면을 살펴보시죠.

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에게 와인을 따라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에선 교양인은 와인을 물에 타서 마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야만인’ 폴리페모스는 물을 타지 않은 와인을 마시고 취해버립니다.
오디세우스가 와인에 물을 타지 않은 이유
#장면2: “이렇게 맛있는 포도주를 주었으니 너는 맨 나중에 잡아먹겠다.”

외눈박이 식인괴물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하나둘씩 잡아먹으며 외칩니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 일행은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오디세우스는 꾀를 내어 폴리페모스에 와인을 권합니다.

오디세우스가 따라준 와인을 마시고 취한 폴리페모스는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오디세우스는 그 틈을 타 불에 달군 올리브 나무로 폴리페모스의 눈을 찔러 탈출합니다.

호메로스가 저술한 ‘오디세이아’에서 폴리페모스는 ‘야만인’으로 그려집니다. 당시 기준으로 폴리페모스는 와인을 마신 행동만 봐도 야만적이었는데요.

먼저 와인을 물에 타서 마시지 않고 원액으로 마셔버린 행동입니다. 오디세우스가 따른 와인은 짙고 빨갛고 감미로워 한 컵의 와인에 스무 컵의 물을 넣으면 향기가 마법 같다고 표현됩니다. 하지만 폴리페모스는 물을 타지 않고 와인을 마시는 야만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와인을 마시고 술에 취한 것 자체도 야만적인 행동입니다. 와인은 당시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갈증을 달래기 위한 음료였기 때문이죠. (고형욱, 와인의 문화사)

로드 필립스가 지은 ‘와인의 역사’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와인을 문명의 척도로 삼았습니다. 교양인은 그리스식으로 와인을 마셨는데 와인을 물에 희석해서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시는 방법이었습니다. 반면에 와인에 물을 섞지 않고 마시거나 정신을 잃을 만큼 마시는 사람은 야만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바로 폴리페모스가 와인을 마신 방법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야만인 폴리페모스가 와인은 물에 타서 마셔야 한다는 점을 모를 것으로 생각했고 이 예상이 적중한 겁니다. 이런 전통은 로마에도 이어져 교양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음주습관이 포함됐습니다.

성경의 노아나 오디세이아의 폴리페모스처럼 ‘과음’으로 인한 문제는 술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이런 지나친 음주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와인이 특별한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던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 내용은 다음 주에 계속 이어 나가겠습니다.

김기정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가 와인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풀어드립니다. 김 기자는 매일경제신문 유통팀장, 식품팀장을 역임했고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RWA), 아시아와인트로피 , 한국와인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기자페이지에서 ‘구독’을 누르면 쉽고 빠르게 와인과 관련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email protected]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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