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밀어준다는 이 종목 사볼까”…‘주가 올릴 계획 만들라’는 숙제 받았다는데 [뉴스 쉽게보기]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주가지수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주식시장은 세계 경제의 흐름과 각종 정보가 정말 빠르게 반영되는 곳이에요. 투자자들이 정보를 정말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분석하죠. 그렇게 많은 투자자들이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투자의 ‘대세’가 형성되기도 하고요. 물론 대세 또한 너무 빨리 바뀌어서 일반 투자자가 따라가기란 쉽지 않을 정도예요.

최근 몇 년간 주식시장에서 투자의 대세는 주로 고속 성장을 기대할 만한 미래 산업 분야 기업들이었어요. 주목할 만한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관련 주식들이 빠르게 가격을 높였어요.

최근 몇 달간의 트렌드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주식시장에서 대세로 떠오른 주제를 ‘테마’라고 하고, 이 주제에 밀접하게 연관된 주식들을 묶어 테마주라고 부르는데요.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이차전지(배터리) 관련 소재, 챗GPT와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이 주목받은 대표적 테마였죠.

테마주, 분위기가 변했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이런 분위기가 확 바뀌기 시작했어요. 보통 테마주로 꼽히던 ‘성장주’나 ‘기술주’가 아닌 가치주가 테마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거예요. 가치주란 현재 가치보다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큰 성장주나 미래 기술 중심의 기술주와는 정반대의 주식이에요. 미래에 성장할 가능성은 작지만, 현재 가치가 큰 기업을 뜻하죠.

이런 가치주는 ‘저평가 우량주’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그만큼 현재 주가에 비하면 실적이 좋고, 기업이 보유한 자산도 많은 우량 기업이라는 뜻이에요. 보통 은행·증권·보험, 통신, 석유화학, 철강, 건설, 자동차 등 전통적인 산업의 회사들이 대표적이에요. 이미 충분히 성장한 이런 산업이 미래에 고속 성장하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성장주나 기술주에 비하면 현재 주가는 낮게 평가(저평가)되는 편이에요.

가치주가 테마주로 변한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네 번째,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평가 우량주가 갑자기 ‘테마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정부가 ‘저평가된 기업의 주가를 집중 관리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에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겠다는 거죠. 한국 주식시장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라고 해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의 가치가 다른 주요국 시장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말해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므로 하나의 원인을 꼽기는 어렵지만,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위험, 주요국에 비해 낮은 주식시장 신뢰도, 일반 주주보다 대주주(재벌)를 중시하는 경영 문화 등이 대표적 원인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들이에요.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꽤 꽂혀 있는 것으로 보여요. 윤석열 대통령은 이 단어를 자주 언급하고 있거든요. 지난해 10월에 선언했던 ‘불법 공매도와의 전쟁’ 또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였어요. 정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으니, 투자자들은 ‘정부가 밀어주는 저평가 우량주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평가 우량주의 기준, PBR
우량한 기업인데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곳들이라니, 조금 모호하게 들리는데요. 사실은 꽤 명확한 기준이 있어요. 바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에요. 지난달 17일 윤석열 대통령은 “PBR이 낮은 기업의 몸값을 높이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다음 달 중 진행하겠다”고 말했어요. PBR이 낮은 기업을 ‘저평가된 기업’으로 보고, 주가 상승을 유도하겠다는 뜻이에요.

기업의 현재 주가가 비교적 높게 평가된 상태인지, 아니면 저평가됐는지를 판단하는 지표는 다양해요. PBR은 이런 가치 판단에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기준 중 하나예요.

PBR(Price to Book-value Ratio)이란 현재 주가를 해당 기업이 보유 중인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이에요. 순자산은 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이고요. 쉽게 말해 당장 한 기업이 보유한 자산을 모두 팔고 → 빚도 모두 갚은 다음 →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순자산)과 주식 가치를 비교해 보는 수치인 거죠. 두 값이 같다면 PBR은 1이 돼요.

정리하자면, PBR이 1보다 낮다는 건 ‘회사 자산을 다 팔아서 남는 돈보다 현재 주식 가치가 더 낮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주가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상태라고 판단할 근거가 되는 거예요. 물론 회계 장부에 적힌 숫자만으로 계산한 결과이긴 하지만요.

기대감 키우는 ‘저PBR 테마’
정부가 PBR이 낮은 기업들을 집중 관리하는 주가 부양책을 내놓겠다고 밝히자, 주식시장은 요동쳤어요. 투자자들이 저평가 우량주를 대거 사들이며 ‘저PBR’은 새로운 테마로 급부상했죠. 윤 대통령이 저PBR을 언급한 지난달 17일 이후 국내 최대 주식시장이자 가치주 비율이 높은 코스피(KOSPI)는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어요. 올해 들어 내리막을 타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죠. 같은 시장 안에서도 PBR이 낮은 종목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반면 기술주와 성장주 위주인 코스닥(KOSDAQ) 시장은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저평가된 기업들의 주가를 올리겠다는 정부 발표에 국내 증권업계와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시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고 기대하는 분위기예요. 실제로 우리나라 코스피 상장사의 평균 PBR은 0.9 정도인데, 미국의 주요 주가지수인 S&P500지수(4.6)나 일본 니케이 시장 평균(1.4)에 비하면 확실히 낮거든요. 물론 제조업 위주로 성장한 한국 기업들과 정보기술(IT) 중심의 해외 기업 PBR을 직접 비교하는 게 무리라는 지적도 존재해요.

정부의 대책 ‘밸류업 프로그램’
정부가 다음 달 하순부터 적용하겠다고 예고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주식 가치가 저평가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기업 가치를 올릴 계획을 공개하라’고 요청하는 방식이에요. 이런 요청에 따르지 않은 기업은 명단을 공개해 압박할 계획이라고 해요. 아직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저평가된 기업의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어요. ‘PBR이 1보다 작은 기업’이 유력한 기준이래요.

정부가 기업에 주가를 올릴 계획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면, 기업들이 할 수 있는 몇몇 조치들이 있어요. 자사주 매입·소각, 배당 늘리기 등을 발표할 수 있죠. 주주들에게 기업의 이익을 돌려주기 위한 대표적 방식들이에요. 보통 주식 시장에서 호재로 여겨지는 결정들이죠. 벌써 정부의 방침에 따라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 계획을 발표한 기업들도 있어요.

당장 수익을 기대하는 주식 투자자들은 당연히 반길만한 소식이지만, 정부가 주가 부양을 위해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존재해요. 정부 정책에 효율적으로 호응하기 위해선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늘리기처럼 기업의 현금이 들어가는 조치를 해야 하는데, 모든 기업이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정부의 정책에 따르려다가 미래 투자에 써야 할 자금이 부족해질 수도 있겠죠. 이런 경우 기업의 가치를 올리려던 조치가 오히려 기업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어요. 여느 테마주 열풍처럼 저PBR 주식도 투자자들의 과도한 기대로 거품을 만들어내고 ‘반짝 유행’에 그칠 수 있다는 걱정 또한 많이 나오고요.

한국 기업들이 적정 수준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정책. 구체적인 내용 공개를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모습인데요. 정부의 정책이 기대한 효과를 거두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테마주 열풍에 그치게 될지 지켜봐야겠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매일경제 ‘디그(dig)’팀이 연재하는 <뉴스 쉽게보기>는 술술 읽히는 뉴스를 지향합니다. 복잡한 이슈는 정리하고, 어려운 정보는 풀어서 쉽게 전달하겠습니다. 무료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이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디그 구독하기’를 검색하고, 정성껏 쓴 디그의 편지들을 만나보세요. 아래 주소로 접속하셔도 구독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s://www.mk.co.kr/newsletter/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