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PF 난리라는데…‘워크아웃 vs 법정관리’ 운명 갈림길 왜? [뉴스 쉽게보기]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태영건설 본사. /사진=김호영 기자
새해 초부터 부동산업계와 금융업계에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요. 얼마 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십수조원에 달하는 대출 부실 사태가 터질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전해드린 적 있는데요. 결국 연말에 시한폭탄이 터지고 만 거예요. 대형 건설회사인 태영건설이 ‘빚을 도저히 못 갚겠다’며 도움을 요청한 사건이에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정부 평가 기준으로 국내 16위의 대형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지난주 워크아웃을 신청했어요. 워크아웃은 빚이 많아서 어려움을 겪는 기업 중 살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재기할 기회를 주는 제도예요.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이 기업과 협의를 통해 일부 빚을 탕감해 주거나 빚을 갚는 기간을 늘려줘요. 일종의 기업회생 절차와 비슷하지만, 정부 대신 민간기업이 주체가 되어 과정을 주도한다는 게 차이점이에요.

태영그룹은 지상파 방송사인 SBS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인데, 그런 곳의 핵심 계열사가 무너질 위기라니 충격이 상당했죠.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이유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부동산 PF는 아파트나 상가 등을 짓기 위해 금융기관의 돈을 빌려서 자금을 조달하는 사업이에요. 돈을 먼저 빌려서 건물을 지은 뒤에, 분양권을 팔아서 빌린 돈을 갚고 차익을 남기는 방식이죠. 건물을 올리기 전에 대출부터 받기 때문에 사업의 장래성만을 보고 큰돈을 투자받는 거예요.

이번 워크아웃의 직접적인 원인은 태영건설이 480억원 규모의 보증을 섰던 서울시 성수동 오피스 사업이에요. 지난해 12월 28일까지 대출을 갚아야 했는데,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이밖에 12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빚만 4000억원 규모에 이르렀어요. 태영건설은 이 밖에도 3조 200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 PF 빚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태영건설의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부지. /사진=김호영 기자
왜 못 갚은 거야?
① 부동산 경기 침체

위에서 부동산 PF는 돈을 빌려서 건물을 지은 뒤에 건물을 팔아서 빚을 갚는 방식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문제는 지난해부터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접어들면서 다 지어놓은 건물이 팔리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는 거예요. 이런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건설업계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은 큰 손해를 볼 수도 있게 된 거죠.

② 공사비 인상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도 나쁜데, 물가 인상으로 원자재 가격도 치솟았어요. 건물을 지을 때 필요한 재료 가격과 인건비가 오르면서 부동산 개발 사업 자체가 엎어지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생겼죠. 태영건설의 경우에도 이런 이유로 대출은 받았는데 공사는 시작하지도 못한 곳이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고 해요.

③ 고금리 장기화

생각보다 길어진 고금리 상황도 영향을 미쳤어요. 고금리로 PF 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서 건설사 등이 PF 대출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상황이에요.

PF 부실 사태, 금융위기로 번질까?
이번 사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대형 건설사 하나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태영건설을 시작으로 건설 기업들이 줄도산할 경우, 심하면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거든요.

건설사들은 그동안 ‘조금만 더 있다가 갚겠다’며 대출 만기를 연장하는 것으로 버텼지만, 이제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와요. 건설 업계에선 앞으로 제2, 제3의 태영건설이 속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퍼지고 있죠.

이런 문제는 건설업계뿐만 아니라 금융업계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태영건설에 돈을 빌려준 금융사만 해도 은행, 증권사, 보험사, 제2금융권(저축은행 등) 등 수십 곳에 이르러요. 이들 전부가 빌려준 돈을 못 받지는 않겠지만, 돈을 받지 못하는 회사의 경우 피해가 막심할 전망이에요.

왜 한국만 난리야?
부동산 경기는 세계적으로 안 좋은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위기가 드러나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한국 부동산 PF는 대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기형적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어요.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부동산 개발 사업의 주체인 개발사(시행사)가 자기 돈을 어느 정도 투자하거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한 상황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시작해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시행사는 자기 돈을 거의 들이지 않은 상황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자금을 PF 대출로 마련해요. 우리나라는 부동산 개발 업체를 세우기 위한 요건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대다수의 시행사는 규모가 영세하거든요.

결국 금융기관에서 PF 대출을 심사할 때 보는 기준은 공사를 담당할 건설사가 얼마나 믿음직스럽냐예요. 우리나라에선 시행사들의 규모는 작지만, 건설사들의 규모가 비교적 커요. GS건설, 현대건설처럼 우리가 이름을 들어본 업체들은 대부분 건설사예요.

이런 이유로 시행사들이 금융권에서 PF 대출을 받을 때는 건설사들이 ‘우리 신용 보고 돈 빌려줘’라며 보증을 서곤 해요. 그래서 만약 사업에 차질이 생겨 시행사가 빚을 감당하지 못하면 건설사가 그 빚을 대신 갚아야 하죠. 태영건설의 경우도 보증을 잘못 서서 떠안게 된 빚 규모가 상당하고요.

미국이나 일본은 시행사가 대부분 대기업이에요. 건설사는 공사만 잘하면 되기에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을 질 일이 적죠. 반면 우리나라는 시행사 규모가 작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PF 사업의 리스크를 상당 부분 부담하는 구조예요. 그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 위기를 겪는 건설사들이 급증해요. 일부 전문가들은 시행사를 만들기 까다롭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건설사에 기대는 지금의 기형적인 PF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워크아웃이 개시되려면 태영건설에 돈을 빌려준 주체들이 모인 ‘채권단’의 4분의 3 이상이 동의해야 해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 여부는 이달 11일에 결정되는데, 만약 동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돼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기업의 영업활동이 중단되기 때문에 기업이 사실상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하죠.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불발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와요. 태영건설은 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채권단 설명회를 열었어요. 설명회에는 91세 고령의 윤세영 창업회장이 직접 등장해 자구안을 설명하고 채권단에 워크아웃 승인을 요청했죠. 하지만 채권단의 반응은 냉랭했어요. ‘핵심 계열사인 SBS의 지분 매각, 오너 일가의 대규모 사재 출연 등 고강도의 추가 대책을 기대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었죠.

정부의 대응은 어때?
정부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지 하루 만에 급하게 대책을 내놨어요. 태영건설의 각종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협력업체에도 대금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돕겠다고 밝혔어요. 정부는 필요에 따라 자금도 적극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인데, 작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동산 PF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85조원 규모의 자금을 마련해 뒀다고 해요.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과 관련한 대응방안 브리핑을 하기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충우 기자
이번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부동산 PF 부실 상황은 우리 경제를 뒤흔들 만큼 심각한 문제예요. 과연 정부는 이번 사태가 경제 전반의 위기로 번지는 걸 막을 수 있을까요?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