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뉴욕타임스(NYT)·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은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대선 유세현장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에 맞아 부상을 입은 것과 관련해 미국이 차기 대통령 결정을 앞두고 정치적 폭력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최근 유럽 주요 국가에서 중도 성향 집권당이 힘을 잃은 반면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극우', '극좌' 등 정당들이 득세하는 등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미국에서도 나타났다고 봤다.
정치인 피격 사건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다. 지난 5월 15일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지지자들과 만나던 중 정부 정책에 불만을 품은 70대 남성이 쏜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범인이 쏜 총알 5발 중 3발을 복부와 가슴에 맞은 피초 총리는 위독한 상태로 병원에 긴급 후송돼 약 5시간의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다. 범인은 '정치적 동기' 때문에 암살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7일에는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자신과 같은 사회민주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 후보 선거운동에 나섰다 괴한에게 폭행당했다. 독일에서도 지난달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에 대한 공격이 잇따랐다. 선거 포스터를 붙이던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이 괴한들에게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고, 프란치스카 기파이 베를린 경제장관은 뒤에서 날아온 가방에 머리를 맞았다.
시계를 더 거꾸로 돌리면 사망 사건도 여럿 있다. 2022년 7월에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선거 유세 중 범인이 직접 제작한 사제 총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2021년 7월에는 아이티의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사저에 침입한 괴한들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나타난 거물급 정치인 피격 사건의 기저에는 극심한 정치·사회적 분열이 있다. 장기 불황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는 불법 이민자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가자지구 전쟁 등에 따른 안보 불안 등에서 기인한 불만이 정치인에 대한 적개심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가 급등으로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 '이민자가 늘어 국가 경제를 망친다'는 정치 논리는 균열을 키운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WSJ은 이날 피격 당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스스로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겼고 결국 총격 사건의 당사자가 됐다고 짚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자 결집을 위해 충성 경쟁을 시키고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은 이번 피격 사건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총격을 입은 피초 총리 역시 강력한 반이민 정책,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등을 내세워 집권에 성공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트럼프와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