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테러 본 수의사, 가운 벗을 결심…경찰 되고 또 열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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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8. 오전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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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루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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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경찰서 답십리지구대 김세민 경위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답십리지구대 순찰3팀 단체 사진. 김세민 경위(아래줄 4번째)는 한 직원이 육아시간으로 자리를 비워 사진에 나오지 못했다고 아쉬워 했다. /사진제공=동대문경찰서

"지구대 경찰관들이 출동할 현장이 워낙 많고 바빠요. 조금만 신경을 써서 '리뷰'하면 재발을 막을 수 있겠다 싶어 관내 교통 법규 위반 사례 3년 치를 분석했어요."

서울 동대문경찰서 답십리지구대 순찰3팀 부팀장 김세민 경위(46)는 이같이 말했다. 수의사 출신으로 스리랑카에서 군 복무를 마친 그는 테러가 빈번한 그곳에서 치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국내에 돌아와서 흰 가운을 벗었다. 이제는 제복 위에 무전기가 달린 조끼를 착용한다. 112신고 처리를 끝낸 뒤 숨을 돌리고 나서는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분석에 공을 들이고 있다.

김 경위는 교통사고나 교통법규 위반 사례에 비슷한 패턴이 있다고 봤다. 어린이보호구역 앞에서 들어온 112신고를 살폈다. 학교 앞 횡단보도나 특정 도로에 차가 불법으로 주정차하고 있어 아이들 시야가 가린다는 내용이었다. 잘못된 끼어들기로 사고 유발 가능성이 높은 곳도, 무단횡단이 자주 발생하는 지점도 있었다. 순찰하거나 112신고에 나설 때마다 현장에서 이런 패턴을 수시로 확인했다.

그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일대에서 교통 법규 위반으로 통고처분이 발생한 현황 3년 치를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끼어들기 39% △좌석 안전띠 미착용 18% △보행자 무단횡단 13%로 △신호 위반 12% 순으로 발생 건수가 많았다. 법규 위반이 어디서 발생하는지도 함께 파악했다.

법규 위반이 자주 발생한 지점을 특정해 경찰관도 단속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해 적발 건수는 308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131% 늘었으며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적발 건수도 지난해 동기 대비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단순히 단속 건수를 늘리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거점 순찰을 통해 큰 인명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을 차단했다. 지난해 7월 거점 도로 순찰 중 술에 취해 도로에 누워 잠든 노인을 구호하고, 같은 해 9월 전조등을 끈 채로 주행하던 차량을 발견해 음주 운전자를 적발했다. 장마철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해 7월에는 고속차량 통행이 빈번한 신답지하차도를 찾았고 그곳에서 버려진 20㎝ 길이 철재물을 수거했다.


"지구대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참 많다"…팀원들도 보람 느껴


서울 동대문경찰서 답십리지구대 순찰3팀이 거점 지역에서 야간 순찰에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동대문경찰서

지구대장과 김 경위 지난 3월 아파트 주민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주민들이 느끼는 치안 수요를 듣고 불안감을 해소해주기 위해서다.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 앞 일방통행로가 위험하다"는 의견을 냈다. 의견을 듣고는 일방통행로 역주행 차량 적발에 수시로 나서고 범칙금을 부과했다. 불법 주정차량이 많아져 행인들이 불편함을 느끼자 구청 주차행정과에도 업무 협조를 요청했다.

어린 직원들도 현장에서 적극성을 보이며 활약하고 있다. 지난 5월 같은 팀 임재명 경사는 한 성폭력 사건에 출동해 현장에서 피의자를 검거했다. 정신장애를 가진 신고자가 정신질환 약을 먹어 진술에 어려움을 겪자, 임 경사와 팀원들은 쓰레기통을 바닥까지 뒤져 성폭력 증거를 찾아내 피혐의자에게 자백을 받아냈다.

김 경위는 "지구대에서 처리할 사건이 워낙 많다 보니까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취약한 부분이 있다"며 "젊은 직원들도 동기나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해주면 보람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일하려고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구대 경찰관도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현직 답십리지구대장은 "분석 보고서를 가져오는데 색다르더라"며 "다른 곳에서 이렇게 하는 경우는 못 봤는데 우리 김 박사가 분석해줘서 보고서를 활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답십리지구대 순찰3팀이 거점 지역에서 야간 순찰에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동대문경찰서


"통역 필요하면 24시간 전화주세요"…서울 31개 경찰서 돌며 명함 뿌린 수의사



2000년대 초반 스리랑카 현지에서 수의사로 근무하던 김세민 경위의 모습. 그는 5년간 스리랑카에서 광견병통제센터를 설립하고 조류인플루엔자 대비책을 수립했다. /사진제공=본인
15년 전만 해도 김 경위는 수의사였다. 대학 때 수의학을 전공하고 병원에서 일하다가 군 생활로 해외 파견을 택했다. 2003년 6월부터 3년간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 국제협력요원으로 근무했고 2006~2008년에는 정부파견 수의사로 스리랑카에서 활동했다. 20대 후반의 그는 현지에서 지도가 바뀔 정도로 강한 쓰나미를 경험했다. 대형 쓰나미가 오면 직접 사체 인양에도 나섰다. 정부군과 타밀 반군 전쟁 탓에 폭탄 테러를 목격하기도 했다. 사람과 동물이 죽어 나갔다.

그는 스리랑카 광견병통제센터 설립과 조류인플루엔자 대비책 수립, 쓰나미 복구 공로를 인정받아 스리랑카 보건부·농축산부·대통령실 보좌관으로까지 임명됐다. 그는 "참혹한 장면을 보면서 나도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느꼈다"며 "한국에 돌아가서는 내가 이 사회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경찰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적극성 DNA'는 그를 경찰로 만들었다. 2009년 여름 행정 인턴으로 동대문경찰서 당시 외사계에 지원했다. 심사자는 "수의학 박사 선생이 왜 경찰서에 지원하냐"고 묻기도 했다. 인턴에 합격한 그는 영어, 일어와 스리랑카 2개 언어인 싱할라어, 타밀어를 할 수 있다며 통역요원을 자처했다.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에 명함을 뿌리고 다녔다. 특수어인 스리랑카어 통역이 필요하면 24시간 언제든 연락만 달라고 적극성을 보였다.

2009년 가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스리랑카 국적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단에서 일하며 상습적으로 마약을 흡연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서울경찰청 외사과를 도와 스리랑카 노동자들 진술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들은 "고된 업무로 누적된 피로를 풀고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려고 대마초를 피웠다"고 했다. 특수어인 스리랑카어 통역인을 찾기 어려워 인턴이었던 김 경위가 재판 단계까지 가 통역을 도운 사건도 있었다.

김 경위는 "스리랑카에서 나는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꼈다"며 "지역 경찰로서도 적극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게 참 많다고 느낄 때, 우리 팀원들이 하나라도 더 적극적으로 발견해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스리랑카 현지에서 수의사로 근무하던 김세민 경위의 모습. 그는 5년간 스리랑카에서 광견병통제센터를 설립하고 조류인플루엔자 대비책을 수립했다. /사진제공=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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