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이 일상화되고 있다.
지난해 전남에서는 4월 저온현상에 서리가 내려 양파 2367㏊와 배 2091㏊ 등 7067㏊의 피해가 났다. 비가 잘 내리지 않는 5월에는 갑작스러운 호우로 수확을 앞둔 보리(2682㏊)와 밀(1298㏊), 감자(362㏊) 등의 피해가 컸다. 6월에도 우박이 쏟아져 과수원 등이 피해를 입었고 집중호우로 인해 벼( 1307㏊), 콩(266㏊), 파(176㏊) 등이 물에 잠겼다.
7월에는 두 차례의 집중호우로 피해가 가장 컸다. 7월 9일부터 19일까지 비가 이어지면서 벼(8868㏊)와 콩(1048㏊), 고추(299㏊) 등 1만668㏊가 물에 잠겼다. 7월 23일부터 24일까지 또다시 이어진 비로 파(2318㏊), 참깨(324㏊) 등 5623㏊의 농경지가 피해를 봤다.
올해도 어김없이 7월 8일부터 7월 10일에 걸쳐 쏟아진 비는 전북 익산, 충남 논산, 부여 등 논과 밭, 하우스가 있던 자리는 거대한 강으로 변했다. 하우스에는 수확을 하거나 수확 중인 멜론, 수확을 해서 넣어둔 감자, 콩을 심기 위해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하고 작물을 심기 위해 장만을 한 논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특히 이 지역은 작년에도 똑같이 수해를 입은 지역이다.
2년에 걸쳐 수해를 당하다 보니 더 이상 농업에 종사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한 상황이다.
관절염, 협착증에 ‘기후재난병’까지 앓게 된 여성농민들
수해가 난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수해로 인한 우리 농민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못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생각이 나고 수해를 입은 하우스, 작물들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하는 것이다.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나을 법 하지만 그래도 쓰린 마음을 다잡으며 논, 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여성농민들이다.
이렇듯 여성농민들은 가격이 좋던 안 좋던 우선 농산물 작황이 좋아야 마음이 놓인다.
새벽부터 논. 밭을 다니며 일궈놓은 농작물이 한순간에 무너졌을 때, 뒷일은 고사하고 마음이 먼저 무너져 내린다. 다 키워놓은 농작물이 눈에 아른거려 애써 잊어버리려 하지만 한번 멍든 가슴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농민들은 가슴에 마음의 병, 일명 화병이라고도 하는 돌덩이들을 하나씩 안고 산다.
여성농민들은 남성농민과 달리 하루종일 논밭에서 호미로, 괭이로 일방석을 장비 삼아 오로지 손으로 다리로 서서 앉아서 구부려서 농사 일을 한다. 남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트랙터 등은 에어컨이 나와서 그나마 작업환경이 좋은 편이다. 오로지 자신의 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여성들은 나이가 적건 많건 비가 오고 바쁜 농사일이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나면 여기 저기 안아픈 여성농민들이 없다. 특히 류마티스관절염, 어깨 수술, 무릎 수술, 허리 협착증 등은 여성농민들이라면 거의 하나 이상은 달고 사는 병명이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가 더 생겼다. 일상적으로 오는 기후재난으로 인한 질병, 바로 기후재난병이 아닐까 싶다.
작년에도 그러했지만 올해도 6월 말부터 시작된 장마로 7월 한 달은 거의 햇빛이 나지 않을 정도로 무더우면서도 비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새벽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고, 오후에 잠시 쉬었다가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습도가 높은 날에는 온갖 벌레들이 창궐하여 피부병까지 생기기 십상이다.
비가 잦다 보니 크는 것은 풀밖에 없고, 더해만 가는 각종 병해충에 농약값도 무시할 수 없다. 친환경 농약값은 더 비싸고, 농자재비도 엄청나게 들어가고 있다. 거기에 들어가는 여성농민들의 노동력은 말해 무엇하랴...
품은 훨씬 더 드는데, 생산비도 안 나오는 농산물 가격
농촌에 들어와서 농사를 지은 지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처음 농사를 지은 품목은 버섯이다. 30년 전 버섯 농사를 지을 때는 그래도 농촌에는 이웃과 이야기 나눌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힘들었지만 함께 제사밥도 나눠먹고 서로서로 도와가며 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산골짜기인 우리 지역에도 하우스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하우스 재배는 여성의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한다. 수확하고, 선별하고, 포장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노동력은 필수적이다.
그동안 지은 농사 품목을 세어보니 버섯 농사로 시작해서 밤, 벼, 고구마, 묘목, 표고, 고추, 콩, 팥, 양파, 마늘, 그리고 소 키우기까지 참으로 많다. 그런데 다 수익이 제대로 안 남다 보니 계속 품목을 바꾸다 여차여차해서 이제는 마늘 농사를 7,000평 이상 짓고 있다. 거기에 벼농사 조금, 한우를 몇 마리 키우고 있다.
남편과 함께 짓고 있는 농사는 특히 기후 위기 시대에 짓기 힘들다는 노지 농사이다. 지난해 마늘 농사는 수확의 기쁨보다 정말 악몽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본격적인 수확기에 접어든 5월 말, 트랙터에 부착된 마늘 수확기로 비닐째 수확을 하였다. 그런데 5월 29일, 약 100㎜의 폭우가 내렸다. 습한 땅과 높은 기온 속에 고온 피해를 막으려 비닐피복을 벗겨내고 수확을 서둘렀으나, 사흘 뒤 6월 1일과 2일에 약 40㎜의 비가 더 내리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의 2차 피해를 안겼다. 일은 두 배, 세 배로 늘어났다.
기계를 사용할려고 해도, 땅이 마르지 않으니 기계가 들어가지 못했다. 호미를 들고 수작업으로 마늘 수확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 싸움에, 인력이 달려 인건비는 치솟았고, 작업효율은 60~70%로 떨어졌고, 마늘 품질은 치명타를 입었다. 노지이다 보니 논에서 마늘을 수확해 놓고도 쏟아지는 비에 뜨거운 폭염에 논에서 썩어가는 마늘을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비가 그치고 마늘을 마저 수확했지만, 손으로 썩은 마늘을 도려내고 벌어진 마늘을 가려내고 흙천지인 마늘을 일일이 손으로 틀어내야 했기에 노동력과 생산비는 2배~3배로 늘어났다. 그런데 최소 4,000원 이상은 받아야 할 마늘 가격은 2,000원-3,000원대로 생산비도 안 나오는 가격이었다.
폭우 뒤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마늘이 익으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새벽 5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100미터가 넘는 논을 다니며, 뜨거운 햇볕에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몸도 마음도 고단한 시기였다. 마늘을 수확하는 시기는 햇빛이 뜨거운 6월이다 보니 온 얼굴이 붉게 타고 손과 무뤂, 허리에 굉장히 무리가 와도 단기간에 일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라, 끝나고 나면 안 아픈 곳이 없다.
그래도 ‘내년에는 괜찮겠지’ 하는 희망으로 견뎠던 거 같다. 들어간 노동력과 생산비에 비하면 낮은 가격 때문에 속은 상하지만,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마다 ‘올해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늘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는 마늘이 자라는 시기 잦은 비와 고온, 저온을 오가는 날씨로 인해 다 키운 마늘에서 다시 싹이 나면서 벌마늘이 많아져 상품성이 떨어진 것이다.
그나마 수확할 때 날씨가 좋아서 일찍 논에서 들어내 건조장에서 마늘이 잘 말랐다. 그런데 수확량이 30%나 줄어들었는데도 가격은 농민들의 1년 내내 피땀 어린 노동과는 상관없이 4,000원 근처에서 왔다 갔다 했다. 마음은 쓰리지만 작년보다는 그래도 나은 가격이라며 속상한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갈수록 더해지는 기후위기에, 나도 주위의 농민들도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수입과일 늘어선 마트…소비자는 농부의 마음 알까?
2023년 지난 겨울 이상고온, 2024년 올해 초부터 시작된 긴 봄장마(54일간), 작물 생육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일조량, 큰 일교차 등으로 논밭 노지 월동작물과 시설하우스 작물들이 온갖 병해충과 생육 불량 등의 피해를 입었다. 특히 생육이 끝난 마늘에서 다시 싹이 나는 2차 생장과 양파 등 각종 병충해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매실, 사과, 배 등 과수작물들은 냉해, 낙과 피해가 반복되어 병해충 증가로 약 치는 횟수가 두 배 이상 증가하면서 여성농민의 노동력은 그만큼 늘어났다.
안 그래도 속상한데 낮은 생산성과 품질 저하로 소비자가 외면하는 시대에, 대형마트들에서는 수입과일로 가득 차 있었다.
올해는 특히 매실도 꽃이 피는 시기에 냉해로 제대로 수정이 안 되어 피해를 주더니, 수확기인 6월에 30도가 넘는 갑작스런 고온으로 인한 열상 피해로 한꺼번에 매실 열매가 너무 일찍 와르르 떨어져 예년에 비해 수확이 20여 일 빨리 끝났다고 한다. 대부분 농가가 예년 수확량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으며, 어떤 농민은 4그루에서 28개를 땄다고 말한다.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오밤중까지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된다. 농산물은 품질이 안 좋으면 노동시간이 그만큼 길어진다. 선별도 이전보다는 더 꼼꼼히 하여 판매를 했지만, 농사를 잘 모르는 소비자들은 선별이 조금만 불량하여도 클레임을 거는 탓에, 갈수록 기후재난은 농민들에게 이중삼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하늘이 짓는 농사이다. 햇빛, 비, 기온, 바람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요즘은 하늘이 원망스럽만 하다. 이 모든 게 사람이 저지른 대가를 받는 것이겠지만. 결국 하늘을 거스르는 농사가 아닌 하늘과 함께하는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농법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농법으로 전환’ 지원해달라
한 여성농민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특히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농법으로 생산하는 농산물을 먹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여성농민들의 뼈를 갈아서 생산한 농산물이라는 것을 소비자들은 알까?’
나를 비롯하여 내 주위에 있는 여성농민들은 20대에 농촌에 들어와서 어느덧 50대 후반을 넘기고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허리를 굽히고 무뤂을 끌면서 어깨로, 손으로 밭농사, 하우스 농사 등을 짓다 보니 어느새 허리가 굽어있고 무뤂, 어깨는 수술 안 한 사람이 드물고, 손가락 마디마디는 관절로 부어있고, 몸은 망가져 있었다. 농사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작업이라서 바쁘게 일하다 보면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게 된다. 링거라는 단기 극약처방을 받거나 참고 참다가 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병원을 가는 여성농민들이 많다. 거기에 일상화된 기후재난으로 더 강도 높은 노동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여성농민은 ‘갈수록 일은 많아지고 돈은 안 되고 빚은 늘어나니,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노동을 하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도 빚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잦아지는 기후재난에 올해 작황은 괜찮을지, 가격은 괜찮을지, 앞이 안보이는 현실에 언제까지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안생긴다고 하였다.
그래서 요즘 주위에 보면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여성농민이 드물다. 나도 직장 일과 농업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다들 농사를 지어도 돈이 안 되고 빚만 점점 늘어가니 농사가 아닌 다른 곳에 눈을 돌려 요양보호사 등 겸업을 하는 여성농민들이 많다. 내가 사는 곳에도 나를 포함하여 5명도 안 되게 전업농을 하고 있고, 대부분은 겸업을 하고 있다.
남편도 얼마나 답답하면 내게 농사보다 직장을 다니면 어떻겠냐고 말하지만, 나는 오늘도 꿋꿋이 농사 일을 하고 있다. 30년이나 농사일을 했음에도 남들보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농사는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내가 직접 키우고 먹을 수 있는 기쁨을 주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며, 나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힘이라 했다. 기후재난이 일상화된 지금, 언젠가는 활짝 웃으며 농사짓는 여성농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그리고 이런 여성농민들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가 오기를 꿈꾼다.
어떤 기후재난이 닥칠지라도, 오늘도 우리 여성농민들은 들녘으로 나간다.
[필자 소개]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농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도시처녀가 농촌에 들어온 지 어느덧 30년. 농민들이 농사만 짓고도 잘 살 수 있는 사회 변화를 바라며 오늘도 땅을 일구는 여성농민입니다.”
-‘기후위기 체감하는 여성 농부들의 메시지’ 기록은 아름다운재단(beautifulfund.org) 지원으로 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