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결합권 없지만, 이주노동자도 가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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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에 관계없이 보장받아야 할 보편적 인권,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캄보디아 여성 킴 레이 씨와 남편은 모두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와서 일했다. 한국에서는 가족결합권이 보장되지 않아 함께 살 수 없었다. (사진-우춘희)    


“임신했을 때 사장님이 해고할까 봐 걱정 많이 했어요. 다행히 임신을 하는 동안에 크게 어려움 없었어요. 아이를 캄보디아에서 낳고 싶었는데, 출산이 너무 임박해서 의사가 비행기 타지 말라고 해서 한국에서 아이를 낳았어요. 한국에서 아이 키우고 싶어요. 근데 나 일해요. 그럼 아이는 누가 키워요?”
 
쿤티에(가명, 캄보디아 30대 여성) 씨는 고용허가제로 2015년에 한국에 와서 경남 밀양의 한 깻잎 농장에서 일했다. 당시 나이 20대 중반이었다. 대구의 제조업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남성을 만나서 결혼했고 임신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임신했단 이유로 해고가 되는 현실이지만, 다행히 쿤티에 씨는 사업주가 해고하지 않았다.
 
보통 다들 그러하듯이 쿤티에 씨는 캄보디아에 가서 아이를 낳고 다시 한국에 오려고 했다. 그러나 건강상 이유로 비행기를 타지 못했고 한국에서 아이를 낳았다. 다행히도 사업주는 “무리하지 말라.”고 말했다. 쿤티에 씨는 산후조리원에서 160만 원이 들었다면서 ‘160만 원’을 힘주어 말했다.
 
쿤티에 씨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고 싶었다.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으로 구성되면 ‘다문화 가족’이라고 하여 ‘다문화가족지원법’에 의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쿤티에 씨와 남편은 모두 외국인으로 한국의 법에 따르면 ‘다문화 가족’이 아니다. 부모가 모두 외국인으로 구성된 가족에 대해서는 지원하는 제도가 거의 없다.
 

쿤티에 씨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었다. 한 달 된 아이와 남편과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고향 집에서 2주 머문 뒤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다시 한국에 왔다. 그는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몇 년 뒤, 쿤티에 씨는 다른 깻잎 농장으로 사업장을 옮겼다. 어느 날, 사업주는 쿤티에 씨 얼굴에 대고 “임신하지 마”라고 말했다. 나중에 쿤티에 씨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당시에 사장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아이를 더 낳고 싶지 않아서 상관없어요. 만약 또 임신해서 지금 사장님이 안 좋아하면 다른 데로 옮겨야 해요. 그때그때 상황 봐서 해야 해요.”라고 그는 말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는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살 권리의 부재가 이주노동자-사업주 갈등 만들어
“사업장 변경 동의해줄게” 대가로 사업주들 2~3백만 원 금품 요구하기도
 

줄무늬 옷을 입은 언니(사진 오른쪽)는 한국에 먼저 와서 4년 10개월 일했다. 특별시험에 합격해 한국에서 다시 4년 10개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 동안 잠깐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그 사이 동생(사진 왼쪽)은 고용허가제 한국어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동생이 한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두 자매가 함께 공항에 왔다. 자매가 한국에 와서 일하지만, 함께 살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사진-우춘희)    


고용허가제는 가족결합권(right to family unity)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이주노동자와 사업주 간의 갈등이 발생한다.
 
현장에서 만난 한 사업주는 기혼 근로자들이 한국으로 입국한 뒤, 가족이 있는 근처 사업장으로 가기 위해서 사업장 변경을 요청해서 난감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부인이 먼저 입국하여 경기도 안산의 사업장에 일한다면, 남편 또한 경기도 안산 근처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한국에 먼저 나와 있는 가족과 함께 살면서 일하고 싶지만, 이런 점이 고려되어 사업장 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가족이 근처에 있는 사업장으로 가기 위해서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사업장 변경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사업주가 여기에 동의하면 다른 노동자를 고용하기까지 최소 몇 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사업주와 노동자 간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해당 사업주는 이를 두고, 이주노동자가 이동을 목적으로 입국을 했기 때문에 “제도의 악용”이라고 주장했다.
 

사업주들은 나름의 방안을 갖고 있었다. 첫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를 선택할 때 여러 조건을 보고 고를 수 있는데 ‘미혼’을 선택한다. 가급적 가족이 없는 상태의 노동자를 선택해서 이동할 수 있는 확률을 낮추려고 한다. 그렇지만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올 때 비혼 상태라고 하더라도 20~30대인 이들은 한국에 와서 가족을 구성한다.
 
둘째,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에 동의를 해주는 형태로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사업주가 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 정도인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을 받고 나서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 주었다. 교육비를 포함하여 당장 인력을 고용하지 못해 발생될 손해에 대해서 비용을 지불하라는 것이 사업주의 주장이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온 뒤 20시간의 취업교육을 받는데 교육비가 1인당 약 30만 원이다.
 
이렇게 금품을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다. 근로기준법 제20조는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도 이런 비용은 사용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소용없었다.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에 동의를 해주는 대가로 요구하는 돈이 부당이익임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도 이를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가족이 있는 지역에 가서 일자리를 얻고 싶어 했다.
 
고용허가제는 가족이 함께 살 권리를 박탈하는 제도
‘정주화 방지’와 가족결합권 보장은 별개의 사안으로 다룰 수 있어
 
한국의 가족이민 제도는 비자의 종류에 따라 가족의 동반 허용 범위와 체류 기간이 다르다. 보통은 배우자나 미성년 미혼 자녀의 동반 입국은 허용된다. 주한 외국 공관원의 경우는 배우자, 자녀뿐 아니라 동성 배우자를 법적 배우자로 인정하여 체류 자격을 주었다. 방문취업비자(H-2)의 외국 국적 동포 또한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도 동반 체류 자격이 주어진다.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서 고용허가제로 출국하는 노동자들을 가족들이 배웅하고 있다. 가족들은 공항 안에 들어가지 못해서 유리창 너머로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사진-우춘희)    


고용허가제로 온 비전문취업비자(E-9)의 이주노동자에게는 가족 동반 입국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민정책연구원의 ‘국내 가족이민 연구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비전문취업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 중에서 약 3.9%만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고용허가제로 최대 9년 8개월을 한국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은 약 10년 동안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단기순환을 원칙으로 하며,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정주하는 것을 막는 ‘정주화 방지’ 원칙을 내세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족결합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단기 이주 제도인 H-2A와 H-2B의 비자의 경우도 가족 동반 및 자녀 동반 입국이 가능하다. 정주화를 방지하면서도 가족결합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한국에서 약 10년 머무르는 동안 가족이 비슷한 지역이나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우선 배치를 하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제도의 부재 때문에 임신과 출산이 사업주와 이주노동자가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갈등으로 나타난다.
 
이주민 관련 법과 보호장치가 거의 없는 상태
국제법에 명시된 대로 이주민의 가족결합권 보장해야
 
과연 이주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살 권리를 갖고자 하는 것이 “제도의 악용”인가? 가족과 함께 살 권리인 ‘가족결합권’은 인종, 성별, 국적에 관계없이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로서 국제법에 명시되어 있다.
 
김지혜(2020, 법제연구)의 연구에 따르면, 국제연합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자유권 규약)’의 23조 1항에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며 기초적인 단위이고,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나와있다. 국제연합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10조 1항은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가족의 성립을 위하여 “가능한 한 광범위한 보호와 지원이 부여”된다고 나와있다.
 
또한 국제인권법에서 가족결합권은 ‘아동의 권리’이기도 하다. 아동권리협약의 9조 1항은 “아동이 그의 의사에 반하여 부모로부터 분리되지 아니 하도록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가족이 하나의 사회적 구성단위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가족 결합에 대한 권리를 가짐이 당연히 도출된다”고 보며, 한국은 이 조약에 가입한 당사국으로 위에서 언급된 세 가지 조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헌법 36조 1항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헌법의 적용 범위가 외국인까지 확대되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김지림 변호사도 국내법의 한계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였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오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캄보디아 국기와 한국 국기가 그려진 검은색 재킷을 입고 입국한다. (사진-우춘희)    


“우리가 얘기하는 법은 다 ‘국민’을 위해서 만들어져 있어요. 외국인과 관련된 법이 있다 해도 국민에게 어떻게 하면 최대한 피해가 안 가는 방식으로 외국인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법 정도예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이주민을 국가, 인종 등의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고 ‘권고’를 하죠. 그 이외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없죠. 이주민과 관련된 법 없어요. [중략] 저희가 이주민 대리를 할 때 이주민 관련 법이 없으니까 제일 많이 쓰는 것은 국제연합의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혹은 관련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에요. 국제협약이 이주민한테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거든요. 이런 국제조약이 그냥 선언적인 게 아니라, 실제 여러 법원에서도 이를 가지고 논의해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지향성,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이다. 이는 외국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누구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은 사회적 약자의 최소한의 인권을 법으로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18년째 국회서 쳇바퀴를 돌고 있다.
 
‘불법체류’ 상태가 돼서야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역설적인 현실
 
이주노동자는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당하지 않을 권리도 가족결합권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가족을 구성하면서 살아간다. 현장에서 만난 20~30대 노동자들 상당수가 결혼을 했고, 임신을 하기도 했다. ‘다문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을 위한 제도는 없었다.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이주노동자도 있지만 이들을 위한 보육정책은 거의 없다. 가족결합권이 없기 때문에 임신한 이주노동자는 자의든 타의든 일을 그만 두고 본국으로 영구 귀국한다. 혹은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하기 위해서 아이를 본국에 계신 부모님께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쿤티에 씨는 ‘합법체류 상태’일 때는 사업장을 마음대로 옮기지도 못했고, 남편과 함께 살 수도 없었다. 2020년에 체류기간이 만료되어 그는 소위 ‘불법체류’ 상태가 되었고 언제든 불법체류 단속이 될까 봐 무서워했다. 미등록 이주민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대신에 고용허가제의 규제를 지킬 이유도 없었다. 2년 정도 깻잎농장에서 일한 뒤, 남편이 있는 대구의 한 공장에 일자리를 구했다. 공장 근처에 숙소도 구했다.
 
‘불법체류 상태’가 되고 나서야 사업주 동의 없이도 사업장을 옮겼고 남편이 일하는 곳으로 가서 함께할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합법체류일 때는 보장받지 못한 권리들이 불법체류일 때 오히려 제도 바깥에서 권리를 실행하고 있었다.
 
※이 기사는 필자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의 지원을 받아 연구한 사례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을 썼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캄보디아와 한국에서 현장 연구를 했다. 지금은 한국으로 이주한 캄보디아 이주농업노동자들에 관해서 논문을 쓰고 있다. 먹거리, 이주, 젠더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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