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서 후보로’ 대만의 오바상(아줌마) 정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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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5. 오후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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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최고 정당, 스타 정치인 필요 없어…‘아줌마 정신’을 공공영역으로
왼쪽부터 필자 이영임, 2022년 대만 신타이베이 시의원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던 오바상정당 천완위(Chen Wan-yu), 그리고 오바상정당 사무국장 체리(Ho Yu-jung) 씨. (필자 제공 사진)    


“2024년 대만 총선 가성비 최고 정당.”
내가 대만의 오바상정당(공식 명칭은 소민참정오바상연맹, 小民參政歐巴桑聯盟)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올해 1월에 치러진 대선과 총선을 참관하기 위해 대만을 방문하던 중이었다.
 

당원 90% 이상 여성, 이번 총선 10명 지역구의원 후보 출마
8500만원 선거운동 비용으로 비례대표 정당 선거에서 득표율 5위 쾌거
 
대만은 2000년에 이미 입법원(한국의 국회에 해당)의 여성 의원 비율이 20%를 넘어선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2024년 1월 치러진 총선에서 47명이 당선되어 여성 의원의 비율이 아시아에서 최고인 41.5%에 이르렀다. 입법원뿐 아니라 6개 광역시·도의회, 시/군 의회에서도 여성 의원 비율은 35% 이상이다. 이는 현재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9.2%와 10.3%밖에 되지 않는 한국, 일본과 대비된다.
 
대만은 2019년에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곳이기도 하다. 2016년 대만의 첫 여성 총통으로 선출된 차잉원 총통은 2020년 재선에 성공한 후, 임기 말까지도 40%를 넘는 국정수행 긍정 평가율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여러 여론조사는 당시 부총통이던 라이칭더(Lai Ching-te)가 총통으로, 2006년도에 동성혼 합법화 입법안을 제출하려다 저지당한 전직 다선의원이자 대만 주미 대표였던 샤오비킴(Hsiao Bi-khim)이 대만의 두 번째 여성 부총통으로 당선되는 것이 유력하다고 관측했다.
 
하지만, 영국 BBC 방송이 “여성 정치인에게 좋은 곳”(Taiwan, the place to be a woman in politics)이라고 명명한 대만은 소수 정당에게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다. 총 113석으로 이루어진 입법원은 지역구 73석, 선주민 할당 6석, 비례대표 34석으로 나뉘어 있다.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처럼 유권자들은 입법위원 선거일에 자신의 지역구 의원 후보를 한 명 선택하고, 비례의석 배분을 위한 정당 투표를 한다.
 
그러나 한 지역구에서 한 명의 의원을 뽑는 소선거구 제도는 소수정당 후보들에게 불리하다. 올해 1월 선거 이후, 국민당은 52석, 민진당은 51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직 타이페이 시장 커원저(Ko Won-je)를 당대표로 하는 포퓰리즘 정당인 대만민중당은8석을 차지하고 있다. 무소속 의원은 단 두 명인데, 그 중 한 명은 뇌물수수로 국민당 당적이 박탈된 의원이다.
 
오바상정당은 올해 총선에서 10명의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를 냈고, 한국 돈으로 8500만 원 정도의 비용만 지출하고서도 비례대표 정당 선거에서 0.93% 득표율로 5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소수정당에게 불리한 대만의 정치 지형에서, 독특한 이름과 마스코트를 내세운 오바상정당에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비록 당선된 후보는 없었지만, “엄마에서 후보로”(대만 언론 Focus Taiwan 기사 제목에서 인용 https://focustaiwan.tw/politics/202402030008) 가는 이들의 여정이 궁금했다.
 
“오바상(아줌마) 정신을 공공영역으로 가져와 대만을 좋은 곳으로”
 
나는 5월 17일, 오바상정당 사무국장인 체리(Ho Yu-jung) 씨와 2022년 신타이베이 시의원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던 천완위(Chen Wan-yu) 씨를 타이페이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대만국립대학교 정치학과 석사과정생 천관지에(Chen Guan-Jie) 씨의 통역 도움을 받아 중국어와 영어로 진행되었다.

오바상정당은 돈이 들지 않는 선거운동으로 유명하다. 사진 속에서 후보들은 낡은 청바지를 재활용하여 손수 만든 선거 캠페인 조끼를 입고 있다. 현수막도 종이나 상자를 재활용하여 제작하고, 엄청난 유인물과 굿즈를 나눠주는 대규모 유세 대신, 중고 옷 교환 행사를 열었다. (사진 출처: 오바상정당 페이스북 (https://facebook.com/LifeOBS38)    


 

오바상정당의 발기인들 대부분은 2012년 설립된 ‘대만 부모-자녀 공동학습교육 촉진회’(社團法人台灣親子共學濛育促進會) 회원들이었다. 민주주의, 정의, 차이의 존중, 생태계 보호 등 다양한 이슈에 관심을 갖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공부하는 새로운 공동교육 모델을 추구하는 단체이다.
 
이들은 2016년 중순부터 3개월마다 ‘정치 워크샵’을 주최하여 시대역량, 녹색당, 사회민주당 등 대만의 진보적인 소수정당을 초청하여 정당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행기정의(Transitional Justice, 한국에서는 ‘과거사 피해 진상규명’ 등으로 불린다), 사형제 폐지, 반핵 운동, 성평등 운동, 동성혼 등의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공부해 왔다.
 
그 중 21명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비록 당선된 사람은 없었지만 한 후보는 6.72%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4% 이상 득표한 후보가 5명이었으며, 후보 중 70%가 기부금을 돌려받을 정도의 득표를 기록했다.
 
이러한 선거 결과에 고무되어 2019년 10월 30일, 풀뿌리 민주주의, 아동권, 부모-아동 친화적인 사회, 환경정의, 성평등, 동물권, 대만 주권, 노동권 등 여덟 가지 핵심 가치를 추구하며, 여성과 어린이 인권을 전면에 내세우는 오바상정당을 공식 출범시켰다.
 
남성들도 당원이 되고 후보가 되기는 했지만, 당원 90% 이상은 전업주부, 장애인, 한부모 가정의 어머니, 교사, 박사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성들이다. 한국에서 창당을 하려면 중앙당과 5개 이상의 법정 시도당이 등록되어야 하지만, 대만은 중앙당과 시도당의 구분 없이 최소한 100인의 서명과 50명 이상이 창당 발기인 대회에 참석하는 것이 정당 설립의 요건 중 하나이다.
 
대만에서 ‘오바상’이라는 단어는 중년 여성을 지칭하는 일본어 차용어이다. 체리 씨는 한국어로 ‘아줌마’라는 단어를 쓰면서, 두 단어의 어감이 비슷하다고 했다. 정당 초기 발기인들이 대부분 엄마들이었던 점도 ‘오바상’이라는 이름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오바상은 아름답지 않고, 젊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단어입니다. 성적 매력도, 욕구도 없는 존재로 여겨지지요. 하지만 우리 오바상들은 사회 문제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공공 영역에서 ‘오바상 정신’을 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어떤 아이가 맞았거나 여성이 폭력을 당한 것을 목격하면 범인을 밝히고 싸우는 오바상처럼, 우리는 오바상 정신을 사적인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공공 영역으로 가져와서, 대만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존 정당에 가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떤 이유로 새로 정당을 창립하기로 결정했을까?
 

오바상정당의 마스코트 모양으로 구운 계란빵 (사진 출처: 오바상정당 페이스북 https://facebook.com/LifeOBS38)    


이에 대해 정당 설립 이전, 시대역량(New Power Party) 정당 관계자와 이뤄진 회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2014년 ‘해바라기 운동’(대만의 대학생-시민들이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졸속 체결에 반대하며 의회를 점거하고 벌인 시위)의 성공을 바탕으로, 헤비메탈 뮤지션 프레디 림(Freddy Lim)을 비롯한 저명한 대만 독립, 인권운동가, 환경운동가 등이 모여 창립한 ‘시대역량’은 2016년 입법위원 선거에서 5석을 획득하는 성과를 낸 바 있다.
 
체리 씨는 "(시대역량은) 정당원이 되고 후보가 되면, 어떻게 이미지 관리를 하고, 어떻게 공적인 자리에서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간판스타가 이끄는 정당이 아니라) ‘모두가 스타’인 수평적인 정당을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오바상정당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 보통 엄마들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했다. 천완위 씨는 당장 표를 얻기 쉬운 이슈나 즉각적으로 주목 받을 만한 사안에 관심을 갖는 다른 정당들과 달리, 오바상정당은 아이들과 관련된 장기적이고 사회적으로 중요하지만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만큼, 새로운 정당을 창립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언급했다.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어떻게 선거운동을 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오바상정당은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선거 캠페인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의식한다고 답했다.
 
정당으로 공식 등록하기 전에 치른 2018년 선거에서는 대만의 선거 후보들이 흔히 입는 후보의 이름과 번호가 쓰인 조끼 대신, 낡은 청바지를 모아서 직접 바느질해 제작한 조끼를 입었다고 한다. 유인물은 최소한으로만 인쇄한 후,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나눠주었다. 또한 합성섬유 재질의 현수막 대신 직접 종이나 상자를 재활용하여 현수막을 만들었다. 대만의 각 주요 정당들은 선거 전야에 수만 명이 모이는 거리 유세 집회를 연다. 이때 엄청난 유인물과 정당의 굿즈를 나눠주는데, 오바상정당은 유세 집회 대신 중고 옷 교환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정당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 부스나 길거리에서 오바상정당의 마스코트 모양으로 계란빵을 구워 판매하거나, 각종 명절에는 오바상정당 마스코트 모양의 떡이나 쿠키를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입을 얻는다. 천완위 씨는 인터뷰 막판에 인터뷰 장소 바로 옆에서 오바상 계란빵을 만들어 팔 시간이라며 30분 먼저 자리를 뜨기도 했다.
 

‘모두가 스타’인 수평적 정당, 아이들도 정당 활동에 참여
정당 운영 위한 ‘돈’과 정당원들의 활동에 대한 ‘가족의 지지’ 필요
 
아동의 권리를 표방하는 정당의 가치에 걸맞게, 아이들도 정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오바상정당의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는 정당의 행사나 선거 캠페인에서 아이들이 팻말을 들고 참여하는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다. 2024년 선거를 앞두고 타이중 등 여러 지역에서는 오바상정당 소속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의 후보들도 초청하여, 어린이들과 가족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정책 발표회’를 열었다.
 
오바상정당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천완위 씨와 체리 씨는 ‘돈’과 ‘가족의 지지’를 꼽았다. 대만의 경우, 직전의 입법위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최소 3%를 득표한 정당을 대상으로 매년 한 표 당 50 대만달러(한국 돈으로 약 2100원)으로 계산하여 정당보조금을 지급한다. 오바상정당은 비록 정당득표 5위를 차지했지만, 보조금을 받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오바상 계란빵을 만들 준비물을 운반하는 카트 (사진 출처: 이영임)    


뿐만 아니라 후보 기탁금은 오바상정당과 같은 소수정당이 후보를 내는 데 큰 장애물이 된다. 지역구 국회의원, 비례대표 국회의원, 그리고 특별시의회 의원선거의 후보 기탁금은 한국 돈으로 약 850만 원에 해당한다. 기탁금 반환 기준도 높아, 소수정당의 후보들의 대부분은 기탁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현재 오바상정당은 득표율이 아닌 득표수로 기탁금 반환 기준을 변경하기 위한 법정 투쟁 중이다.
 
어려운 재정 상황으로 인해 무급 자원봉사에 의존해서 정당을 운영해왔는데, 이에 대해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체리 씨는 “오바상정당이 다섯 번째로 많은 득표를 했다고 하니, 유권자들은 우리 정당이 더욱 많은 이슈에 대해 활발히 활동하고 목소리를 내기를 기대하지만,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기에 활동에 제약이 있습니다. 이는 대다수가 여성인 자원활동가들의 헌신과 무급노동에 의존하는 우리의 정당 운영방식이 여성의 노동을 가치절하하고 공정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사회의 차별적인 관행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당내 성찰로 이어졌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당 운영방식을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정당원들의 정치활동에 대한 가족의 지지를 받는 것도 큰 어려움이다. 천완위 씨는 “돈도 안 되는 일을 하고 다닌다”는 비난부터,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인한 극심한 갈등, 심지어 이혼을 겪는 정당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돈 드는 선거문화에 도전한 것…큰 성과 
딸, 엄마, 아내, 며느리에 국한되지 않는 ‘정치적 효능감’ 얻어
 
오바상정당이 이뤄낸 가장 큰 성과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체리 씨와 천완위 씨 모두 돈 드는 선거문화에 도전한 것, 그리고 어머니, 아내, 딸이라는 가족 내 관계와 위치에 국한되지 않은 개인의 정체성과 정치적 효능감 형성을 꼽았다. 오바상정당이 직면한 두 가지 가장 큰 어려움이 역설적으로 그들이 이뤄낸 가장 큰 성과라는 것이다.
 
“단지 누군가의 딸, 며느리, 엄마, 아내가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 우리 정당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많은 돈을 써야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정당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천완위)
 
“우리 정당이 선거 비용을 적게 들였다는 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적 자원과 조직적 자원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자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성으로서 함께 일하고 서로 지지해주며 때로는 함께 울기도 했습니다. 또한 함께 선거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체리)
 
천완위 씨는 2026년 시의원 선거에 출마할 결심을 이미 굳혔다. 젠더 정의, 아동권, 기후 정의를 위한 ‘아줌마 파워’를 발휘하고 있는 오바상정당의 다음 여정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필자 소개] 이영임. 현재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에서 젠더정치와 동아시아정치에 대해 가르치고 글을 쓰고 있다. 특히 박근혜의 탄핵이 여성 정치 세력화와 박정희 향수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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