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 내디딘 신입/새내기를 타깃 삼는 성폭력 가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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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게 할 것인가?
학교나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새내기, 조직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경험이 부족하고 인적 네트워크가 취약한 이들에게, 성폭력 가해자들은 선의와 도움을 가장하여 다가오거나 권위를 내세워 손쉽게 접근한다. [사진=Pixabay]    


개나리, 진달래와 철쭉 그 사이로 연두빛 꽃봉오리가 돋는다. 곧이어 뒷산에 새하얀 벚꽃이 눈마냥 흩날린다. 짧은 벚꽃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이팝나무와 라일락 향기가 그 자리를 메운다. 강으로 산으로 꽃과 자연을 즐기러 가는 여행객 소식을 접한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 봄이다.
나에겐 봄에 대한 다른 감각이 있다. 누군가에게 찬란한 봄인데, 누군가에는 잔인한 봄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게 나에겐 봄이다.

새로운 공간에 진학과 취업을 한 신입, 새내기들
신입이라는 취약성, 정보와 경험이 부족한 그들에게 접근하는 사람들
 
자연이 봄이라는 시작을 맞아 분주하듯 인생의 각 자리에서 출발한 사람들도 있다. 대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들,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신입 사원들.
‘대학만 가봐라’, ‘취업만 해봐라. 나도…’ 삶과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 때면 흩어지는 마음을 잡고 노력해서 새로운 공간과 시간에 도달한 사람들. 수많은 계절을 보내고 나서야 그들에겐 봄이 왔다. 그렇게 찾아온 진학과 취업이다.
 
시작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미숙하고 여리기 마련이다. 아직은 사람이나 조직을 잘 모르기 때문에 관계망이 단단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권력 관계에서나 여러 면에서 취약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새로운 곳에 가면 그 조직을 알아가기 위한 시간이 꼭 필요하다. 매뉴얼도 필요하지만 사람의 도움이 필수다. 그리고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도와주는 사람을 경계하기보다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 쉽다. 그리고 처음 들어간 곳에서 할말을 다 하기란 매우 어렵다.
 
나는 얼마 전까지 여성단체에서 활동했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고 의료지원과 법률지원 등 인권지원을 하는 곳에서 15년 남짓 여성인권운동가로 살았다.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참 많은 여성들을 만났다.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사건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여성들을 조력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매년 비슷한 시기, 이른 봄을 지나 봄이 한창일 시기에 우리 단체 상담소를 찾아오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른 봄에 입학했던 신입생들과 그리고 회사에 입사했던 새내기 사원들. 
 
“학교생활 어떠냐?”며 물어오던 교수
일상이 다 무너져버린 신입생, 앞으로 학교와 미래는?

매년 비슷한 시기, 봄꽃이 한창일 때 우리 단체 상담소를 찾아와 비슷한 피해 경험을 말하는 여성들이 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기가 시작된 신입생들, 그리고 새내기 사원들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출처: 필자 제공)    


 
신입생 환영회와 오리엔테이션, 엊그제 입학한 것 같은데 어느새 중간고사를 치르고 대학교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A씨가 속해있는 동아리는 축제 한편에서 먹을거리를 팔고 있었다. 학생들은 옆 학교 축제에 다녀간 연예인과 비교하며, 학교 축제에 대한 기대와 불만을 늘어놓고 있다. 다들 행복한 것 같다. 그런 학생들 틈에서 아무렇지 않고 싶은데 A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도서관에 숨어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무엇이 잘못된 건지, “얼마 전 여성혐오 관련 뉴스를 그냥 지나친 게 잘못이 되어 돌아온 것 같다.”는 말이 되지 않은 말들을 하며, 며칠을 퉁퉁 울고 난 뒤 A는 상담소에 찾아왔다.

늦은 봄 상담소의 오후는 더웠다. 작은 상담실에 에어컨이 있을 리 없고, 틀어놓은 선풍기의 모터는 이미 뜨거운 바람을 순환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보통은 더위를 식히라고 현미 티백에 얼음 두어 개를 띄워주는데, 그녀는 따뜻한 물을 달라고 했다. 뜨거운 컵에 두 손을 녹였다. 떨리는 몸이 조금 안정이 되었는지 얼굴을 떨군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루에 3시간, 4시간 자면서 주말도 휴일도 없이 정말 죽도록 공부만 해서 들어간 학교였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열심인 그녀는 조별 과제를 하느라 며칠 동안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그날은 조별발표를 마치고 교수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 교수는 젊고 유능한 외래교수로 수업 후, 학생들과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다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교수님은 A에게 학교생활이 어떤지 물었고, 수업 관련해서 연락을 할 수 있다면서 연락처를 물었다. 다른 학생들 연락처는 다 받았다는 교수님의 말에 계속 거절하기도 어렵고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교수로부터 문자와 메일이 왔다. 대부분 수업과 관련된 내용이었지만 늦은 밤 오는 연락이 불편했다. 교수님의 연락에 답을 안 할 수도 없어서 두 번에 한번은 답을 했다. 몇 번이나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자리를 피했지만 몇 번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날은 교수가 학교생활에 어려움은 없는지 물으며 어깨에 손을 올렸다. 몸을 돌려 피했지만 뒤에서 기습적으로 안았다. 이번엔 허리에 손을 올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너무 놀라서 도망쳤다. 달려가면서 내가 왜 도망치고 있는지 한심했다.
 
며칠 밤을 꼴딱 새고, 두 친구에게 말했다. 한 친구는 “그 교수는 스킨십이 많은 편인데, 남학생들에게도 그런다”고 했다. 교수님께 인정받은 것 아니냐며, 유난 떨지 말라고 했다.
다른 한 친구가 “인정과 성추행도 구별 못하냐”며 버럭 화를 내줬다. 그리고 교내 성폭력상담센터가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교내 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성희롱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전공과목 교수인지라 학기 중간에 수업을 중단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다만 피해 학생이 이 과목을 철회해도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학교 측의 답변을 전달받았다. 전공과목은 선택과목과 달리 이수가 필수다. 이 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불이익이다. 가해자가 교수로 재직하는 한 어디에서 마주칠지 알 수 없다. 무서웠다.
 
봄이 막바지인 그때 더운 상담소 실내에서 손을 부들부들 떨며 전한 대학생 새내기의 엉망이 되어버린 학교생활. 그리고 그 갓 입학한 새내기에게 “학교생활 어떠냐?”며 물어오던 교수.
 

많은 신입들이 새로운 곳에서 적응을 하는 동안 선배, 교수, 상사와 동료로부터 성희롱·성폭력을 겪고 있다. 사회적, 인적 자원이 없는 피해자들은 성폭력에 취약할 뿐 아니라, 그 사실을 주변에 이야기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거나 신고하기도 어려운 위치에 놓인다. (이미지 출처_StartupStockPhotos)    


상담을 하다 보면, 성폭력 가해자들도 이 교수처럼 조직 생활에서 필요한 정보와 경험이 부족하고 주변 관계나 인적 네트워크가 취약한 피해자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처음엔 선의와 도움을 줄 것 같이 접근하고, 그리고 조금씩 수위를 높여 자신의 목적과 폭력성을 드러낸다는 것이 공통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도움을 받는 입장에선 도와주는 사람을 경계하기보다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고,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자신의 위치와 지위의 취약성 때문에 처음부터 소신 있게 ‘No’하며 거절하고 곧바로 자신의 피해에 대해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 수 있는 몇몇의 사람과 어떤 위치가 있을 뿐이다.
 
새로운 직장, 동료관계나 멘토를 채 형성하지 못한 신입사원들
조직에서 신입 편을 들거나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5월 첫 공휴일, B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친구와 부산에 있어야 했다. B의 입사를 축하하며 맛있는 것도 먹고 해운대를 걸으며 새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었다.

얼마 전, 1년 넘게 취업이 되지 않아서 고민을 하고 있는 B에게 형부는 자신의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를 소개해줬다. 연봉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B는 회사에서 직원들의 처우에 관심을 갖고 있고, 운동비와 학원비를 지원하고 있다는 말에 좋은 회사일 거라는 기대를 했다. 형부 친구란 말에 믿음도 갔다.
 
B는 입사 후 일주일이 지나고, 신입직원 환영회와 전체 직원 회식이 있어 참석했다. 사람들을 알아가고 회사일을 배워가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다. 환영식이 고맙지만 마음은 빨리 집에 들어가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신입이 그럴 수는 없었다.
회식이 시작되었다. 회사에 오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좋아하는 운동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직원들의 물음에 대답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장님은 사람들 앞에서 신입직원이 친구의 처제라면서 이렇게 실력 있는 직원이 회사에 들어와서 고맙다고 했다.
 
식사와 술이 곁든 회식이 끝났다. 집에 가려는데 사장님은 같은 방향이니까 차에 타라고 했다. 부담스럽고 싫었다. 낙하산이라는 오해를 받는 것도 싫고, 사장님과 한차에 나란히 타는 건 더더욱 싫었다. 운전기사는 차 문을 열어주며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사장님이 차에 타야 오늘의 회식이 끝나는지 사람들도 B에게 눈짓을 했다.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B는 차에 탔다.
 
사장님은 형부와 자신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집에 거의 도착할 즈음이 되었다. 사장님은 “친구의 처제는 나의 처제”라고 하면서 은근슬쩍 다리에 손을 올렸다. 몇 분간 성추행이 일어났다. 너무 놀라서 “기사님! 세워주세요. 저 여기에서 내릴게요” 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장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게 실화인가. 형부의 친구라는 사람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언니에게 전화가 해서 소리 지르고 싶었다. 자신도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을 자신이 먼저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지옥 같은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도저히 출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회사는 가지 못했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못했다. 일주일만에 환영식을 하고, 환영을 받고 무단결근한 무책임한 신입 직원이 되어버렸다.
언니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지. 형부는 무슨 생각으로 그 회사를 소개시켜 준 걸까. 친구라는 사람이 쓰레기인 걸 몰랐던 걸까. 언니도 형부도 미웠다. 더 미운 건 자신이었다. 그 차에 탔던, 회식에 참여했던, 그 회사에 입사했던, 그동안 취직이 어려웠던 시간들, 세상에 태어난 자신이 미웠다.

2018년 7월 서울여성플라자 1층 봄에서 진행된 〈전시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주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주관: 한국여성단체연합) 모습. 그 위로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 큰 현수막이 걸려있다. (필자 제공)    


 
B는 친구와 부산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친구와 함께 우리 단체 상담소를 찾아왔다.
 
성폭력 피해와 고통을 언어화하기 어려운 이유-
주위에선 가해자를 옹호, 경찰에 신고해도 ‘내 말을 믿어줄까?’
 
성폭력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사회 문제다. 하지만 사회마다 성적인 것의 의미와 폭력적인 것의 의미가 다르다. 일상화 된 성폭력도 각기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폭력을 특수한 상황에 놓인 특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본다.
 
많은 신입들이 새로운 곳에서 적응을 하는 동안 교수뿐 아니라 선배, 상사와 동료로부터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피해자들 대부분은 자신에게 일어난 피해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도 쉽지 않은 위치에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피해자 스스로 인지하는 동안 주변의 소문은 무성하다. 가해자가 신뢰받는 위치에 있거나 평판이 좋은 경우, 주변 사람들은 가해자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난리다.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 동시에 피해자가 유혹했을 거라는 추측들이 난무하다.
 
피해자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억울해서, 일상이 와장창 깨지는 유리조각과도 같아서, 지금 벌어지는 상황들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상상하며 자책하게 된다. 상담하는 내가 보기엔, 차라리 가해자와 사회를 원망하는 게 사건을 제대로 보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반대로 가해자들은 성폭력 사건이 드러나고도 반성하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가 좋아서 그럴 수 있다는 궤변, 어차피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을 거란 확신, 잘 버티기만 하면 사건을 덮고 넘어갈 것이라는 앞선 사회적 경험들이 성범죄 가해자를 당당하게 하는지 모른다.

성폭력은 80% 이상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하지만 성폭력에 대한 이미지와 통념은 여전히 사실과 다르다. 성폭력이 모르는 사람, 특수한 사람에게만 일어난다는 강한 통념은 학교와 직장이라는 공간을 아예 의심하지 않게 만든다. 이런 확신은 경계심도 무뎌지게 한다. 가해자는 주변인들에게 자신을 탄원해달라며 악의적인 소문과 함께 2차 피해를 입힌다. 주변인들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좋아한다는 방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심지어 가해자를 책임지라는 말까지 하며 피해자를 괴롭힌다.
 
성폭력에 의해 일상이 와장창 깨졌는데, 피해자들은 늘 스스로를 탓한다
사법정의가 제대로 작동 않는 것,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 중 여성긴급전화 1366, 해바라기센터, 성폭력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은 2% 미만이다. 성폭력 피해자 중 사법기관에 자신의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들 역시 2% 미만으로 본다.

“모두의 내일을 위해 오늘 페미니즘” 3.8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하여 2022년 3월 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제37회 한국여성대회 현장. 참가자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상황에 분노하며, 성평등한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필자 제공)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에게 상담소와 경찰서는 문을 두드리기 쉽지 않은 곳이다. 물론 상담소와 경찰서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95% 넘는 피해자는 어디에 있을까.
이 수치를 놓고 본다면, 우리 사회는 ‘경찰에 신고해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확신이 가득한 사회다. 피해자가 용기 내어 말했는데 학교도, 직장도, 사회도 외면한다. 사건 즉시 문제 제기하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말할 수 있냐’고 하고, 늦으면 ‘늦어서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기억을 하면 기억한다고, 못하면 기억도 못하냐고 비난한다.
 
어떤 범죄 피해자든지 자신이 입은 피해를 신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피해자 당신 탓이 아니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는 특별한, 나와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더이상 혼자 고립되지 않도록.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회, 가해자의 의도가 어떻든지 범죄에 있어서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데이트 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의 기사를 본다. 피해자는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사망했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이 일어나기 쉬운 사회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여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계속 지켜볼 순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피해자의 말보다 가해자의 말이 더 잘 들렸다. 피해자의 이야기가 잘 들린다면 어떨까. 자신의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사회.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이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과거의 피해가 현재와 미래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사회. 피해자를 신뢰하는 사회, 반성하지 않은 가해자가 설 곳은 이 땅 어디에도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다르지 않을까.
 
다른 결과를 원하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이제껏 사회정의를 다른 이들에게 맡겼다면,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우리 모두는 타자들에게 의존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 장소, 존재들과의 관계를 통해 살아간다. 그동안 피해자의 몫으로 남겨둔 그 자리에 곁을 주면 어떨까.
 
(*위 상담 사례는 내담자의 동의를 구하고 쓴 후기로서 비밀보장을 위해 신상정보 등을 각색하였음을 알립니다.)
 
[필자 소개] 조재. 여성단체에서 약 15년 활동을 했던 전직 활동가. 자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다른 문제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하며 살 것인가.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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