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먹으러 온 노부부를 왜 '문전박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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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의 못마침표] 무심하고 불친절한 키오스크에 대한 고찰
▲Gettyimages.
일요일 점심시간이었다. 짜장면을 먹으러 아내와 백화점 중식당에 갔다. 인기 많은 가게라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대기표를 나눠주던 건 기계였다. 거기로 향했을 때 내 앞에 노부부가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걸 보니 어딘가 다녀오는 길에, 점심을 먹으러 온 것 같았다.

가만히 살피는 게 직업병이라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용감히 기계와 맞서기 시작했다.

인원수를 2명으로 누르고, 핸드폰 번호까지 무사히 입력했는데, 마지막 관문인 '신청하기' 버튼이 눌리지 않는 듯했다. 활성화돼 있지 않은 버튼을 반복해서 누르던 할아버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게 왜 안 눌러지나… 아이고 참."

언뜻 보기에 왜 그런지, 내 눈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화면을 살펴보다가 '개인정보 동의' 버튼이 눌리지 않은 걸 봤다. 찰나의 순간에 도와드릴지 말지를 고민했다. 괜한 오지랖에 할아버지를 작게 만들면 어쩌나 그런 생각에. '이젠 짜장면도 내 맘대로 못 먹는 나이가 되었군', 그리 한탄할까 싶어서.

몇 초 더 지켜보다 손을 뻗어 '동의' 버튼을 눌러 해결해드렸다. 그제야 대기 번호를 받고 안도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들이 하려던 건 젊은이들만 가능할법한 엄청난 도전 같은 게 아녔다. 일요일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으러 오는 평범한 일. 그런데 입장하기도 전에 무심하고 대답 없는 기계가 문전박대를 하는 듯 보였다.

노부부는 출입문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행여나 대기를 놓칠까 싶어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카톡에서 실시간으로 몇 번째인지 확인할 수 있는데도.

서울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맥도날드에 들어가 키오스크 앞에 섰고, 커피를 주문하려 했고, 실패했다. 그는 나와서 옆에 있는 롯데리아로 들어갔고, 기계 앞에서 또 한 번 무너졌다. 그를 따라다니면서도 돕지 않은 건, 고작 커피를 사는 일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해선 안 된단 생각에서였다.

노인은 결국 인근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샀다. 그날 먹고팠던 게 정말 그거였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해결 방안은 간단하다. 연희동에 있는 한 김밥집 키오스크에서 모범답안을 봤다. 결제까지 딱 2단계에 불과했다. 큼직한 사진과 함께 이름이 쓰여 있는 메뉴를 선택하고, 카드를 넣어 계산하고. 누구나 쉽게 하는 걸 봤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그런 키오스크가 있단 이유만으로 그 김밥집이 좋아졌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 단지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게.

지난해 10월 인터뷰한 '유니버설 디자인(성별이나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한 제약이 없도록 설계된 디자인)'의 선구자 패트리샤 무어(이하 패티). 그는 할머니가 육중한 냉장고 손잡이 때문에, 그토록 좋아하던 요리를 못하는 걸 어린 나이에 봤다.

[관련기사 : 머니투데이) 4년간 '할머니 체험'한 26살 디자이너… 모두의 존엄성을 위하여]

26살이 된 패티는 80대 할머니로 분장해 살아보는 체험을 했다. 허연 가발을 쓰고, 주름 분장을 하고, 귀는 솜으로 틀어막고, 다리는 철제 보조기로 뻣뻣하게 만들었다. 그걸 4년이나 하며 116개 도시를 돌아다녔다. 노인의 불편함을 알게 돼 '저상 버스'를 설계하고, '소리가 나는 주전자'를 만들었다.

▲ 패트리샤 무어(Patricia Moore)가 노인으로 변장한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Vignelli Center for Design Studies 갈무리
인터뷰하며 패티가 남긴 말이 인상 깊었다.

"삶에서 때론 좋은 시기가 있고, 때론 안 좋기도 해요. 디자인은 이 모든 삶에서의 가능성을 포함해 이뤄져야 합니다."

이젠 패티가 72살이 돼 운전할 수 없게 됐다. 어느 날엔가는 열차를 탔는데 이용하기가 편했단다. 알고 보니 젊었을 때 자신이 디자인한 거였다. 모두를 고려한 마음이, 시간이 흘러 다시 그에게 돌아온 거였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나무'의 '황혼의 반란'에선, 노인을 박대하다 못해 주사를 놓아서 죽이는 미래 사회가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노인은 주사를 놓은 젊은이를 쏘아보며 이리 말했다. 모두가 기억하면 좋을 말이다.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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