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만으로 통일' 63년 전 기사에도 등장...왜 아직도 정착 못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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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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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서평생활] 언어감수성 수업/ 신지영 지음/ 인플루엔셜 펴냄 
▲ 윤석열 정부가 만나이로 통일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1960년대 이미 정부는 만나이를 통일을 선언한 바 있다. 사진=pixabay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만 나이 통일법'을 시행했지만 사실 만 나이 통일은 이미 60여년 전 실현됐다. 1961년 12월29일자 경향신문은 <새해부터 나이를 만으로 통일>이란 기사에서 "새해 1월1일부터 나이를 계산할 때 당년을 만으로 통일하게 되었다"며 "정부는 새해부터 서기연호를 사용함과 때를 같이하여 연령계산에 있어 지금까지 사용해오던 당연령을 폐지하고 만연령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유는 "이 조치는 당 연령 계산법과 만 연령 계산법을 혼용하고 있어서 오는 불편과 지장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언론의 논평도 인상적이다. 1962년 1월3일 조선일보는 "나이 한 살 젊어진 것이 모두 무척 즐거운 모양이니 누가 고안했는지 모르나 연령을 만으로 계산하라고 영을 내린 사람은 새해 복 많이 탈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했다.

"새해부터는 나이 연령을 만으로 셈한대서 '떡국은 먹은둥 만둥?' 그러나 과년한 여인이나 사망고개를 넘거나 바라보는 장년·노년층에게는 설을 한두번쯤 거꾸로 보낸듯하다고 즐거운 표정들"(1962년 1월3일, 동아일보), "26세 이상의 여성들만의 기쁨이랴! 젊어진 기분으로 신춘을 맞이할진져"(1961년 12월29일, 조선일보) 등 부적절한 표현들로 '만 나이 통일'을 평가하기도 했다.

▲ 1961년 12월29일자 경향신문 기사
하지만 정부의 의도와 달리 '만 나이'는 사람들이 널리 쓰지 않았다. 12년이 흐른 1974년 1월5일 조선일보 '만물상'에선 "서양에서처럼 생일기준을 만으로 따지기로 했으나 아직 잘 지켜지지 않아 일기수첩의 연령대조표는 구습대로 우리나이의 셈법(세는나이)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시 20여년 뒤인 1995년 1월에도 논쟁이 있었다. 1월9일자 조선일보 독자 의견란 <만나이가 보다 합리적>이란 글에선 "5일자 독자 의견란에 실린 '관습따른 연령계산 만나이보다 합리적'을 읽고 몇자 적는다"며 "관습연령을 일반적으로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다해도 공공성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만연령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썼다.

2022년 윤석열 정부는 만 나이 통일을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해 5월 '만 나이 통일법'이라며 민법과 행정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미 1962년 만 나이로 통일이 돼 있기 때문에 해당 법 개정안의 실질적인 변화는 없고 한자로 된 법조문을 한글로 바꾸고 만 나이 관련 설명을 법 조항에 넣었을 뿐이다.

▲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민법 개정안 신구조문 대비표
같은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내놓은 해당 민법 개정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한국식 '세는 나이' 사용의 폐지 및 '만 나이' 통일 여부의 문제는 현행 규정 외에도 국민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존재한다"며 "개정안은 민법에 나이 계산 및 표시를 보다 구체적으로 명문화해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하고 국민들 일상생활에서도 '세는 나이' 대신 '만 나이'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서 입법 취지의 타당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그렇게 정부는 2023년 6월28일 '만 나이 통일법'을 시행했다. 이번엔 만 나이를 쓸까? 조선일보는 지난해 10월14일 '만 나이법 발효 100여일'이 흐른 시점에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3분의2가 만 나이를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행 전인 2022년 9월 법제처가 여론조사를 한 결과 86.2%가 만 나이를 쓰겠다고 답했는데 왜 이번에도 만 나이를 쓰지 않는 걸까.

▲ 언어감수성 수업/ 신지영 지음/ 인플루엔셜 펴냄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지영은 최근 저서 '언어감수성 수업'에서 "법적 통일 등 제도적 장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국어만이 갖는 언어적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알수 있다"(294쪽)고 썼다. 한국어는 상대를 부를 때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만 '너', '야' 등 2인칭 대명사를 쓸 수 있는 등 나이 차이를 알아야 언어를 통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이런 가운데 만 나이를 쓰면 각자 나이를 다르게 먹기 때문에 대화가 불편해진다. 동갑이었던 사람이 생일이 먼저 지나면 '언니' '형' 등의 호칭을 써야 한다. 결국 아무리 정부나 언론에서 '만 나이'를 쓰자고 해도 "안정적인 말하기를 위해 상대와의 나이 차이는 일정하게 유지돼야"(297쪽) 하고 이를 위해 '세는 나이'를 쓰게 된다는 분석이다.

'만 나이'로 한 살 어려지는 게 좋으면서도 결국 '세는 나이'를 쓸 만큼, 연령의 위아래를 구분하는 건 중대한 문제인 걸까? 나이 차를 전제한 수직관계는 공적 영역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2021년 11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대선후보 경선 경쟁자였던 홍준표 의원(현 대구시장)에 대해 '귀엽고 화끈하다'고 하자 홍 의원은 "버릇 없다"고 했다. 홍 의원이 윤 후보보다 나이가 많다.

'말대꾸'를 한다거나 '싸가지 없다'는 등의 표현이 공적 영역에서도 많이 나온다. 저자는 이외에도 '괘씸하다', '당돌하다' '되바라지다' '버릇없다' '예의' 등의 표현을 두고 "모두 나이가 많거나 권력이 큰 사람이 나이거 어리거나 권력이 작은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며 "예의있고 공손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나이나 권력의 크기와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취해야 할 태도인데 이 태도가 한쪽에만 요구되는 성격을 갖는다면 그건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334~335쪽)라고 했다.

'언어 감수성'이란 표현을 만들어 대중에게 알린 저자는 언어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어떠한 태도와 대화법을 가져야 하는지 소개한다. 메신저에 따라, 적절한 상황에 따라 소통을 잘 하기 위한 팁, 불통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민감한 호칭 문제가 고민인 경우 등 일상에서 한번쯤 고민했지만 지나쳤던 문제를 살펴본다. 이러한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만 나이 통일' 시대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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