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돌고 돌아 또 만난 이진숙과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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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0. 오후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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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12년 MBC 민영화 밀실 추진 밝혀낸 최성진 기자  
“이진숙, 얼버무려 넘길 게 아니라 민영화 논의 경위 소상히 밝혀야”
▲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왼쪽)와 최성진 한겨레 기자. 사진=ⓒ연합뉴스, 윤수현 기자
"그러나 난 다시 말하더라도 천 번 이런 기회가 와도 천 번 보도하겠다. 그것이 기자로서 역할이다."

12년 전 이진숙 당시 MBC 기획홍보본부장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이상옥 전략기획부장 등이 MBC 민영화를 밀실에서 논의하는 내용을 통화로 듣고 보도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에 압수수색까지 당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최성진 한겨레 기자가 2013년 10월31일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 변론에서 한 말이다. 1심에서 징역 4개월에 자격정지 1년 선고 유예를 받은 뒤 항소심에서도 떳떳함을 주장한 최성진 한겨레 기자는 오히려 형량이 2개월 더 늘었다.

최 기자는 2012년 10월8일 당시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정수장학회를 취재하다 그해 초부터 인터뷰로 인연을 맺은 최필립 이사장과 통화하게 된다.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최 이사장과의 통화가 제대로 끊기지 않아 1시간가량 이뤄진 MBC 민영화 밀실논의 내용을 듣게 된다. 12년이 흐른 지금 여러 부서를 거쳐 다시 미디어 담당 기자로 돌아온 최 기자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가 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과 다시 만나게 됐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8일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가 정부과천청사 인근에 위치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출근하는 모습. 사진=김용욱 기자.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이 방통위원장 후보가 돼 돌아왔다.

"이진숙 후보가 방송통신 규제 및 정책 기구를 맡겠다고 후보 수락해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지난 4일 후보 지명 브리핑에서 당시 본인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별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다. 정수장학회 측의 요청에 따라 대화를 나눈 것뿐이었고, 지분 매각이나 민영화 관련은 구성원들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유보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갈 게 아니라 당시 본인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이유로 최필립 이사장을 만나 정수장학회 MBC 지분 처분 방안 논의를 진행했는지 그 경위에 대해 소상히 밝혀야 한다."

"당시 여권 우위 방송문화진흥회에서도 김재철 사장을 불러 왜 그걸 맘대로 진행하냐는 소리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진숙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지분 매각을 논의했을까. 2010년 국정원에서 작성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 문건을 보면 MBC 정상화 3단계가 나오는데, 정수장학회 지분 처분이 마지막 단계였다.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청와대든 국정원이든 지시받아서 했는지, 그 배경을 좀 더 소상히 밝혀야 한다."

[관련 기사 : 국정원 문건 등장 'MBC 민영화 시나리오' 재추진할까]

-2012년 10월8일 어떤 취재를 하려고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에게 전화했나.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그해 1월 한겨레는 토요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토요판 만들어지고 나서 두 번째 커버스토리 인물 2호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단독 인터뷰였다. 당시 꽤 많은 이야기를 서로 묻고 답했다. 인터뷰를 통해 인연을 맺고 주기적으로 안부 전화도 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전화했을 때 최필립 이사장이 '이제 곧 대선이 다가오니까 본인이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하겠다. 명절 전후로 보자'라고 말해서 명절이 끝나고 나서 연락을 드린 거다. 그게 전화의 시작이었다. 최 이사장이 이진숙 본부장과 이상옥 부장과 만나는 자리라 길게 통화를 못 하고 평소와 달리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는다고 끊은 게 끊기지 않았던 거다."

▲2012년 2월4일 자 한겨레 토요판. 최성진 기자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끊기지 않은 전화 내용을 들으며 어느 순간 이 통화를 들어야겠다고 결심했나.

"처음부터다. 제가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듣게 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처음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가 이진숙 본부장이었다. 이진숙 본부장과는 취재원과 기자로서 몇 번 만나기도 했고, 수시로 전화 통화도 했다. 목소리가 익숙했다. 최필립 이사장하고 이진숙 본부장이 만날 일이 사실은 없다. MBC 대주주인 방문진과 소주주인 정수장학회가 협의할 일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진숙 본부장은 MBC 관계자였다. '이거는 그냥 넘길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생각하면서 듣게 됐다."

-민영화 이야기는 언제부터 나왔나.

"통화 초기부터 나왔다. 이상옥 전략기획부장이 초반부터 최필립 이사장 앞에서 '저희가 준비한 정수장학회 문화방송 지분 매각 및 발표 방안에 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시작한다. PT가 다 끝나고 최필립 이사장과 이진숙 본부장이 대화하면서 정리하고 끝나는 1시간 남짓 들은 내용이 완결성이 있었다. 두서없이 이런 이야기한 게 아니었다."

[관련 기사 : "MBC 매각발표 사회자 MBC 아나운서 빼고…"]

-듣고 바로 기사 써야겠다고 생각했나.

"그걸 듣는 동안도 그랬고, 회의가 끝나고 전화가 끊긴 다음에도 그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거다. 누가 들려주려고 들은 게 아니라 저밖에 안 들은 거다. 이 내용을 당연히 보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이 사안의 내용 자체가 갖는 무게감을 알고 있다. 정수장학회가 가진 MBC 지분 30%를 몇몇 사람들이 공개적이고 투명한 과정 없이 자기들끼리 협의해서 매각을 확정하고 발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걸 듣게 된 순간 이걸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은 할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소상히 보도해야겠다는 판단밖에 없었다."

▲2012년 10월13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MBC가 보도 직후 곧바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최성진 기자를 고발했다. 그들은 도청을 의심했다.

"MBC는 도청의 결과물이었다는 식으로 계속 보도했다. 말도 안 되는 기사를 계속 썼다. 도청 장비를 낀 실루엣을 만들어서 첩보영화에 나오는 첩보원이 벽 너머에서 이뤄지는 비밀스러운 고위급 회담을 몰래 전문적 장비를 이용해 도청하는 듯한 장면을 썼다. 도청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의혹 보도를 내보내고, 한겨레 기사는 왜곡 보도라고 하는데 기가 막혔다. 당사자이기 이전에 MBC도 공영방송이고 언론 매체인데, 저런 식으로 왜곡 보도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지?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8일 이진숙 후보가 첫 출근길에서 방송법 1조를 읽으며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영성을 이야기하던데 당시 문화방송이 보인 태도는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이랄지 공영성 공공성과는 거리감 있는 보도였다. 당시 방심위 회의록에 따르면 MBC '뉴스데스크'에서만 도청 의혹 10건을 보도하고, MBC 라디오뉴스, 아침뉴스, 정오 뉴스 등을 합치면 40~50건을 보도했다. 제 기억에 당시 MBC 보도 태도는 방송 사유화의 전형이었다."

-검찰이 보도 한 달여 만인 11월13일 오전 7시20분 집과 핸드폰 등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압수수색 실시 여부를 전혀 알 수 없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고 있었다. 전날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변호사랑 협의해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당시 이명박 정권 시기였고, 검찰의 수사 행위에 대해 검찰의 수사 자체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기소돼서 재판받게 될 테니 법원에 가서 소상히 밝히고 유무죄 판단을 받기로 했다. 그 상태에서 기소 되겠거니 했는데, 바로 다음 날 아침 압수수색이 이뤄져서 굉장히 뜻밖이었다. 조선일보가 검찰이 최필립 이사장과 통화가 끊기지 않은 상태에서 한겨레 기자가 회의 내용을 듣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이미 보도했었다. 취재 경위가 밝혀졌는데도 압수수색해서 핸드폰 가져가고, 노트북까지 포렌식해서 가져가는 게 과잉수사라고 판단했다."

▲최성진 한겨레 기자가 지난 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윤수현 기자
-1심 최후진술에서 기사 내용을 자세히 낭독했다.

"지금 다시 보니 오글거린다. 그 상황에서 재판부 앞에 고개 숙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할 기자는 없을 거라고 본다. 그때 기억을 되짚어 보면 저의 재판에 보도가 집중됐다. 제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보도했던 건 정수장학회 MBC 지분 매각 음모였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의 '정' 육영수의 '수'를 딴 거다. 박정희 군사 정권이 폭압적으로 어떤 한 기업인의 장학회를 강제로 헌납받아 도둑질한 물건 장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정수장학회가 갖고 있는 공영방송 지분 처분은 사회적 합의와 투명한 절차를 통해 논의되어야 할 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필립 이사장과 이진숙 본부장이 모의해서 극비리에 처분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013년 1월21일 조선일보 사설.
[관련 기사 : 한겨레 기자 검찰 기소, 조선일보도 비판]

-언론과 언론현업단체들이 당시 법원의 판결을 함께 비판했다.

"이진숙 본부장과 당시 MBC를 뺀 거의 모든 언론이 해당 사안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줬다. 기자라면 마땅히 보도해야 할 사안이었다고 받아들여 줬다. 그런 언론과 언론 시민사회 단체들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 정수장학회 MBC 지분 매각 모의 등 비판의 목소리를 많이 내줬다. 꽤 오랫동안 검찰 수사도 받고, 압수수색도 받고, 재판에 끌려다니면서 싸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많은 힘이 됐다. 우리가 취재하고 기사 쓰면서 포토라인 앞에서 취재하는 입장에 서지 취재당하는 입장에 설 일은 잘 없었다. 후배 기자들이 재판을 취재하러 오면 와서 선배 힘내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응원해주던 분위기였다. 그래서 수사받고 재판받는 게 막 어렵고 힘들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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