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지역을 취재하는 언론사 <당진시대>에는 편집국장실도, 대표이사실도 없다. '사무실에 가장 오랜시간 근무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곳에 앉아야한다'는 편집국장의 기조에 독자·광고관리를 맡아서 하고있는 총무부 직원 두 명이 가장 넓은 자리에 앉았다. 탕비실 바로 옆 제일 끝자리는 편집국장의 자리다. 편집국 사무실의 파티션은 다 낮췄고, 벽은 모두 투명하다. 구성원들간의 수평적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5층 편집국 내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당진방송> 사무실이 나온다. 주조정실, 촬영 스튜디오, 실시간으로 촬영 현장을 볼 수 있는 공간, 분장실까지 하나의 작은 방송국이 갖춰져있다. 방송에 출연하는 시민들 분장은 카메라를 잡던 PD들이 도맡아 한다. 편집국에선 편집국장이 가장 끝자리인 것처럼, 뉴미디어 사옥에선 가장 끝에 있는 작은 공간이 PD들의 사무실이다. 당진방송을 찾는 시민들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이 당진시대를 찾은 지난 8일 오전 10시는 당진시대 구성원들이 경영회의를 끝낸 직후였다. 수요일에 진행되는 경영회의에는 기자, PD들도 참여한다. 월요일 아이템 기획회의에는 총무부 직원이 참여하고, 화요일 신문평가회의에는 총무부 직원과 PD들이 참여한다. 즉 모든 직원은 회사의 모든 회의에 참여한다. 신문평가회의지만 기자들보다 PD와 총무부 직원들이 더 날카롭게 지적할 때도 있다.
당진시대에는 4명의 취재기자, 5명의 PD가 있다. 대부분 20~30대로, 취재부서에선 임아연, 한수미 기자는 근속 10년이 넘었고, 박경미 기자는 6년차, 지난해에는 20대 유수아 기자가 입사했다.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이탈하거나, 젊은 사람들은 서울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대다수 지역언론은 '일할 젊은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지만, 당진시대의 수평적인 사내 분위기는 젊은 인력을 끌어들인다. 최 국장은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점은 기자들이 일하는 게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라며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개개인의 성장을 위해 도와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구성원들의 성장과 함께하는 신문사의 성장은 탄탄한 독자 관리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기자, PD들만 취재원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총무부 직원들도 함께한다. 과거에는 지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을 취재해 온 노하우를 모두 담은 '취재원 명부'를 책자로 만들었다. 지금은 일 년에 한 번씩 다같이 모여 취재원 자료를 정리한다. 당진시대의 가장 큰 장점인 '지역 밀착 취재'를 뒷받침할 귀중한 자료들이다.
신문사에 애정을 갖고 있는 독자들은 경영자문위원회, 편집자문위원회 등과 같이 다양한 형식으로 각자의 재능에 맞게 당진시대에 참여한다. 당진시대는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당진에는 상업영화가 아니면 영화를 상영하지 않기 때문에 일 년에 몇 차례씩 극장을 빌려 독자들을 대상으로 독립영화를 무료로 보여준다. 독자들과 함께 문화탐방도 하고, 작은음악회, 미디어교육 강연도 열면서 독자와의 일상적 소통 폭을 넓혀나간다.
당진시대의 수익은 대부분 지면 광고와 구독료, 그 외 협동조합의 출판과 연구 사업들에서 창출된다. 지면광고와 구독료의 비율은 6:4 정도로, 구독료도 수익에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ABC협회가 2021년 집계한 전국 주간신문 유료부수 인증 결과에 따르면, 당진시대는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유료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진시대는 5273부를 발행하고 있으며, 78.7%에 해당되는 4149부가 유료부수로 인증받았다.
처음에는 당진시대의 독자 주주들을 대상으로 시작했지만, 한 차례 진행하자마자 주민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주민들 요청에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는 2000명의 시민들이 생중계 채팅방에 들어왔다. 현장에 있는 기자들은 개표 상황을 보며 실시간으로 채팅방에 올린다. 개표 전반의 흐름을 이야기할 수 있어 당진시대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한 시민은 기자들이 고생한다며 1500명이 있는 오픈채팅방에 치킨 기프티콘을 보낸 재밌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최 국장이 중심을 잡았다. 당진시대를 창간해 30년동안 당진시대를 이끌어오고 있는 최 국장은 '시민운동을 하다가 지역언론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고향에 돌아왔고, 1990년 읍내리에 작은 카페를 차려 소식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가자는 쪽으로 점차 목소리를 내며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당진사랑'이라는 시민모임이 탄생했다. 여러 선거를 치르면서 시민운동만으로는 지역사회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최 국장은 '당진시대'라는 신문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최 국장이 30살이던 1993년, 국민주로 시작한 당진시대가 창간됐다.
보수적인 당진 지역에서 진보 지역신문이 살아남는 것은 어려웠다. 반대 여론도 강했다. 당진시대는 이를 '지역밀착형 취재'로 극복했다. 1991년 중부권 특정 폐기물이 당진에 들어오자, 산업폐기물 관련 자료를 모두 뒤져 보도했고 범국민대책위가 생겨 지역에 문제의식을 키웠다. 결국 폐기물 반입은 취소됐고, 광역 단위로 지었던 구조가 지금처럼 공단이 지정되면 일부분을 매립지를 갖게 하는 구조로 정부 정책이 바뀌었다. 당진 지역 최초의 환경운동이었다.
2001년 '당진항'이라는 이름도 찾아왔다. 지금의 당진항은 본래 '평택항'으로 통칭되면서 모든 예산과 개발이 다 평택에 집중되어있었는데, 이를 당진시대가 처음으로 보도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항만 개발에 대한 큰 인식이 없었던 사람들도 지속적인 보도를 보며 공감하기 시작했고, 대책위를 구성해 힘을 모았다. 지역 주간지로서는 처음 당시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의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정부 차원의 입장을 들었고, 최 국장은 언론 담당자로서 해수부 담당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가 사례들을 연구했다. 결국 당진 지역은 '당진항'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엔 지역주의가 굉장히 강할 때였고, 우리는 지역주의에 반대해왔기 때문에 신문을 운영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큰 싸움들을 통해 시민들 신뢰가 쌓여왔기 때문에 지금의 당진시대를 지켜올 수 있었다." 최 국장의 말이다.
현재 기자들은 야생생물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소들섬에 한국전력이 송전탑 건설을 추진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집중해서 취재하고 있다. 소들섬에는 8만여 개체의 조류가 월동하며 멸종위기로 지정된 큰기러기 등이 서식한다. 한전은 소들섬에 송전탑을 지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설치를 추진하고 있고, 주민들은 지하 케이블 설치를 주장하지만 송전탑 문제는 10여년째 논란이다. 당진시대는 그 기간 내내 주민들 목소리를 좇아왔다.
충남미디어그룹은 2018년 당진시대가 30%를 출자해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운영하는 충남콘텐츠연구소 지음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나머지는 당진시대 직원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에 있는 상조회에서 출자했다. 이전까지는 영상을 만들어 지역 방송사에 납품하다가, 2018년 안라미 실장이 PD로 합류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자체 콘텐츠 제작이 시작됐다. 시민들의 인생 책을 소개하는 '인생책방', 다문화 여성들이 출연해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무지개 나라' 등의 팟캐스트 콘텐츠를 만들었고, 오디오로만 내보내기는 아깝다는 생각에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에 올리며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했다.
해나루시민학교에 다니면서 글을 배우는 어르신들의 영상 자서전 '학교 가는 길'은 안라미 실장이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콘텐츠다. 어르신들은 PD들에게 본인의 삶을 이야기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연신 전해왔다. 지난해 제작한 '학교 가는 길' 영상은 KBS대전 아침마당에 거의 원본에 가까운 분량이 방영되기도 했다.
아울러 "지역신문들의 내부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바지연이 자칫 대표자들끼리의 연대모임이 되면 안 된다. 취재기자들은 취재기자대로, 영상기자는 영상기자대로 모여 소통하는 형식으로 연대가 강화돼 서로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며 "이제는 바지연 자체적으로 지역신문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본인 지역의 신문을 잘 만들고 여기서 자리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국의 지역신문이 다 잘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사회가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신문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