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시대적 소명…국가 백년대계와 민주주의 위한 결단 필요”
“대선 등 정치 일정에 영향 없을 것”
정대철 헌정회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개헌을 결단하면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개헌 논의에 동참할 것을 주문했다. 정 회장은 특히 “반이재명 정서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이 대표 입장에서도 개헌을 하는 게 정치적으로 득이 될 수 있다. 개헌 논의 때문에 대선 등 정치 일정이 지연되지도 않을 것”이라며 개헌 논의가 탄핵 정국의 물타기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선을 그었다.
정 회장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회관에서 진행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개헌은 시대적 소명”이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해야 할 정치 개혁 가운데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주제”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 개헌 담론에 불이 붙으려면 제1당인 민주당과 유력 대권후보인 이 대표의 의중이 중요하지만, 민주당과 이 대표는 아직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정 회장은 “혹시 개헌 논의 때문에 대선 일정이 지연될까봐 민주당이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며 “의지만 있다면 권력구조 원 포인트 개헌은 60일에서 90일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개헌 논의가 이 대표와 민주당에게 정치적으로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개헌은 물론 국가를 위해서 하는 일이지만, 이 대표를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탄핵 정국에서 ‘이재명 정당’과 ‘윤석열 정당’의 지지율이 비슷하다는 것은 민주당이 잘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적 지지를 못 받고 있는 것”이라며 “연이은 탄핵 때문에 반이재명 정서 역시 적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개헌을 추진한다면 다시 여론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력 대권 주자로서 당장 조금의 손해를 볼 수 있더라도 국민의 기대가 큰 정치 개혁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인다면 중도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 회장은 이 대표와 면담 일정도 조율 중이다. 그는 “집권을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나 정당은 국가 백년대계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설득해보겠다”고 의지를 내보였다. 정 회장은 지난 10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도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여권이 현 시점에서 주장하는 개헌론 속에 탄핵 정국을 흔들려는 정략적 의중이 담겼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정 회장은 “일부 그런 의도가 있을 수 있겠지만 현명한 국민은 금방 알아차릴 것”이라며 “그런 세력은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출신인 나와 전직 의원 모임인 헌정회에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 있겠느냐”며 “개헌 논의의 순수성과 절박성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회장과의 일문일답.
-헌정회는 계엄 사태 이전부터 ‘선(先)개헌 후(後)대선’을 공개 제안했다.
“개헌은 시대적 소명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해야 할 정치 개혁 가운데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주제다. 1987년 이후 38년 된 헌법을 고쳐서 조금 더 민주적인 헌법과 민주적인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권 세력은 결코 개헌을 원치 않는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대선에 승리해 집권한 세력은 개헌에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권력을 잡으면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편하게 행사하려는 생각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려고 한다. 그래서 차기 대선 전에 개헌을 먼저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으로 그 일정이 더 빨라지게 됐다.”
-개헌 논의가 탄핵 정국 물타기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개헌 논의의 순수성, 필요성, 절박성을 왜곡하는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 개헌 논쟁을 제기함으로써 탄핵 정국을 지연시키고 정치 일정을 전반적으로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명한 국민은 이러한 불순한 의도를 금방 알아차릴 것이고,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헌정회는 이번 사태가 있기 전인 지난해 11월 개헌안 초안을 발표했다. 적어도 헌정회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나도 민주당 대표와 상임고문을 했던 사람인데, 악의가 있을 리가 있나.”
-탄핵 인용 시 60일 안에 대선을 치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시간이 촉박하다는 의견도 많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의지만 있다면 권력구조 원 포인트 개헌은 60일에서 90일이면 충분하다. 탄핵심판 기간 내에도 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시간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 역대 국회의장을 비롯해 개헌 논의가 상당히 축적돼 있다. 결단의 문제다. 권력 구조만 원 포인트로 한다면 한 달 안에도 여야가 협의해 속도감 있게 진행할 수 있다.”
-현 국면에서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의중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번에는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정면 돌파 의지와 결단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는 혹시 개헌 논의 때문에 대선 일정이 지연될까봐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집권을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나 정당은 국가백년대계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재명 대표와 면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이 대표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이 대표와 민주당은 개헌 논의로 정치일정이 연기돼 민주당 집권에 착오가 있을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탄핵 절차가 끝나기 전에 개헌을 마무리할 수 있다. 3개월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려고 한다. 또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이번에 개헌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고, 시대적 소명이며 절박한 정치개혁 주제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다. 물론 국가를 위해서 하는 일이지만, 당신을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말하려고 한다.
-개헌이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으로 득이 된다는 얘긴가.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이후 국민의힘 지지율이 계속 올라서 민주당과 격차가 많이 좁혀졌다. 탄핵 정국에서 ‘이재명 정당’과 ‘윤석열 정당’의 지지율이 비슷하다는 것은 민주당이 잘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적 지지를 못 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에서 탄핵안을 29번이나 발의했다. 그건 좀 과했다. 민주당이 다시 깨어나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개헌을 추진한다면 다시 여론이 돌아올 것이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개헌을 하는 게 정치적으로 득이 된다.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 개혁을 앞장서서 하게 되는 모습이다. 좋은 지도자는 조금 거추장스러운 게 있어도 극복하고 만다. 이 대표가 개헌을 결단한다면 좋은 정치 지도자가 될 것이다.”
-‘87년 체제’라고 하는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의 역할과 한계는.
“현행 헌법의 핵심은 대통령 직선제다. 전두환 쿠데타 세력은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 간접 선거방식으로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이에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났고 노태우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국민의 요구인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다. 헌법에 마련된 개정 절차에 따라 여야 합의로 이뤄낸 전면적 개헌이었다. 국민 요구에 따라 권위주의 시대를 마감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 수 있는 헌법이다.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에서 보았듯이 모든 국민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가능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쳐 참다운 민주적 권력구조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
-바람직한 개헌의 방향은.
“개인적으로는 내각제를 더 선호하지만, 국민적 선택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원집정부제에 4년 중임제로, 다음번에는 내각제로 개헌되기를 희망한다. 지난해 5~6월 헌정회원 전원 여론조사를 한 결과도 이원집정부제에 4년 중임제로 여론이 모였다. 이원집정부제는 책임총리제, 양원제(상원제 신설), 지방분권 강화로 집약됐다. 연말에 전직 총리와 국회의장, 여야 대표 등 원로들이 모였는데 모두 개헌 필요성에 공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