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존속살해’ 무기수 김신혜, 24년 만에 재심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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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5.01.06. 오후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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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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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사법 역사상 처음
2019년 재심 첫 재판 출석하는 무기수 김신혜.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47)씨가 사건 발생 2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6일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는 김씨의 존속살해 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군 완도읍에서 아버지 A씨(당시 52세)에게 수면제를 탄 양주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았다. 그는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한 A씨를 죽이기 위해 수면제를 양주에 타 ‘간에 좋은 약’이라고 속여 A씨에게 먹였다고 자백했다.

재판에서는 이러한 자백 진술을 번복하고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무기징역이 확정된 김씨는 이 사건이 재조명되자 재심을 신청하고 2015년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이는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 사례였다.

사건 발생 24년, 재심개시결정 9년여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김씨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는 ▲범행 동기 ▲자수 경위 ▲수면제 등 증거 ▲알리바이 ▲강압·불법 수사 여부 등이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재판부는 진술과 증거의 증거 능력에 대해 모두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심 재판부, 자백진술·증거·부검결과 등 쟁점에서 모두 김씨 손 들어줘

재판부는 자백 진술에 대해 김씨가 수사기관 진술을 모두 부인했고 피고인의 자백을 들었다는 친척과 경찰관의 진술도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특히 “김씨가 사건 당시 남동생이 범인으로 의심받는 상황에서 동생을 보호하려고 허위 자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의 압수 증거에 대해서는 김씨 주거지에서 발견한 노트 등 압수물은 경찰이 영장도 없이 당시 미성년자인 남동생과 동행해 확보한 것으로 적법절차와 영장주의에 반한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한다고 봤다.


존속살해 증거에 대해서도 수면제(독시라민) 30알을 피해자에게 복용시켜 사망케 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망 2시간 전 독시라민 30알을 복용했는데도 피해자 위장에 수면제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고, 30알로는 혈액에서 독시라민 13.02㎍/㎖ 통상적으로 검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양주 2잔에 수면제 30알을 타 먹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술 2잔에 수면제 30알을 타면 농도가 진해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도 지적했다.

검찰은 ‘사후 재분배’(사망 후 약물 농도가 증가) 가능성도 제시했으나 재판부는 사망 35시간 만에 사후 재분배가 발생하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혈중알코올농도 0.303%로 고도명정상태 등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어 수면제가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봤다.

살인 동기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피고인과 여동생을 성추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보험보상 범행동기도 보험설계사 자격이 있는 김씨가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금을 수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씨가 동생들에게 허위 진술을 교사하고, 진술의 일관성이 없는 점 등은 의심스럽긴 하나, 이러한 사정만으로는 유죄를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판은 김씨에게 최초 무기징역이 선고된 1심에 대한 재심으로, 무죄에 불복한 검찰이 항소하면 다시 2심, 상고심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석방된 김신혜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비극 반복되지 않길”


김씨는 이날 재판에 불출석했지만 무죄 선고 이후 곧바로 장흥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는 “아버지가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끝까지 못 지켜드려 죄송하다”며 “이런 일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잘못된 부분이 있었으면 바로 잡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25년(만 24년), 수십 년 걸려야 되는 일인가에 대해 (교도소)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며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저도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김씨를 변호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24년간 무죄를 주장해 온 당사자의 진실의 힘이 무죄의 강력한 증거”라며 “이 판결이 김씨와 그의 동생들이 삶을 회복하는 데 큰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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