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아들·아내 동반 40대 가장, 팔순 여행 일가족 9명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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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12.30. 오전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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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대 40명씩… 최다 연령대
패키지 여행 광주·전남 거주자 많아
“새가 날개 끼여 착륙 못해” 문자도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유가족들이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에서 관련 뉴스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항은 사고 소식을 듣고 찾아온 유가족 500여명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무안=최현규 기자

무안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중에는 연말을 맞아 여행에 나선 가족 단위 탑승객이 많았다. 야구팀인 기아타이거즈 홍보팀 소속 고강인(43)씨도 그중 하나였다. 고씨는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지난 25일 태국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고씨의 아들은 만 3세로, 이번 희생자 중 가장 어리다.

고씨의 모친은 29일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공항을 찾았다. 코로나19 때 결혼한 고씨는 이번 여행이 사실상 신혼여행이었다. 고씨 모친은 “손자의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다”며 “매주 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는데, 그게 내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씨 부부는 애초 30일 한국에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하루 앞당겨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에는 승객 175명과 승무원 6명 등 181명이 타고 있었다. 탑승객 가운데 태국인 2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국인이다. 탑승객 연령대는 50대와 60대가 40명씩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31명), 70대(23명), 30대(17명), 20대(10명), 10대(9명) 순이었다. 10세 이하 아동은 5명이었다.

탑승자 상당수는 여행사들이 전세기를 띄우는 형태로 특별기획 판매한 패키지 여행상품 고객이었다. 인천공항을 가지 않고 무안공항을 이용할 수 있어 광주·전남 거주자가 많았다. 이들은 지난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에 무안을 출발해 방콕에 도착했고, 이날 오전 1시30분 다시 방콕에서 출발해 오전 8시30분 무안공항으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가족관계로 추정되는 승객이 많았다. 전남 영광군 군남면에 거주하는 A씨(78) 일가족 9명은 A씨의 팔순을 기념해 다 함께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이 밖에 사무관 승진 동기인 전남교육청 교직원 5명도 여객기에 탑승했다. 전남 화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1, 3학년 형제와 자매 관계인 목포시 공무원 2명, 담양군의 40대 팀장급 공무원도 두 자녀와 함께 탑승했다. 화순군에서는 현직 공무원 3명, 퇴직 공무원 5명 등 8명이 동반 여행을 갔다 오는 길이었다.

세 자매 중 맏이인 오모(45)씨는 여객기에 탑승한 막냇동생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씨는 울먹이면서 “아침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는데, 내 동생이 사고 여객기에 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부모님이 가장 예뻐했던 막내딸이고, 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은 내 동생이 너무나 그립다”고 했다.

회갑을 맞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큰아주버니를 기다리던 50대 김모씨도 가족들과 한 발짝 떨어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김씨는 “아주버니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최근에 다 같이 김장하면서 ‘내년에도 또 하자’며 웃어 보였는데…”라며 “워낙 고생을 해서 이제 여행 좀 다니시나 했는데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회사 직원과 함께 태국 여행을 떠난 남동생을 기다리던 김모(33)씨는 “어젯밤만 해도 ‘태국에서 잘 놀고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게 마지막”이라며 “어머니, 이모와 함께 공항에 왔는데 경황이 하나도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무안공항 1층에 마련된 유가족 대기실에선 사망자 신원이 한 명씩 발표될 때마다 유족들의 울음소리도 커졌다. 가장 먼저 사망자 5명의 신원이 발표되자 A씨는 가족들의 품에 안겨 “이제 우리 애기들 없이 어떻게 사느냐. 여행 가지 말라고 할걸” 하면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다른 유가족 B씨는 “제발 기체에 들어가서 시신 좀 보게 해달라. 엄마는 아들 얼굴 보면 다 안다”며 “사고가 난 지 4시간이 지났는데 신원 확인이 안 됐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찾아온 유가족 500여명은 신원 확인이 지연되자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사고 직전 한 피해자와 유족이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SNS에 올라온 대화 내용에는 여객기가 착륙 직전 조류 충돌 사고를 겪은 정황이 드러나 있다. 탑승객 A씨는 오전 9시쯤 카카오톡으로 20대 자녀 B씨에게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을 못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언제부터 그랬냐”는 B씨의 물음에 A씨는 약 1분 뒤 “방금. 유언해야 하냐”고 문자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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